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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Apr 23. 2024

내 주변엔 다 부자(?)

어쩌면 내 주변엔 재테크로 돈 번 사람만 있을까?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났던 회사 사람 A는 보자마자 말했다. 이번에 강남으로 이사했다고.


 "와이프가 재테크를 잘해서 벌써 집이 세 채에요. 거기다 이번에 이사한 집은 대치동이고, 첫째는 이사한 동네 오자마자 갑자기 공부를 하고, 셋째는 너무 예쁘고..."


 랩처럼 신들린 듯, 집안의 행운을 말했다. A는 거기다 와이프는 요새 사업을 준비 중이고 최근 만나는 지인은 열 채나 보유한 건물주라고 말했다. 와이프가 아파트 투자에서 상가 투자로 진출하는지, 전담 변호사와 세무사까지 생겼다는 말도 덧붙여서.


 분명 난 묻지 않았다. A와는 나는 아주 어색한 사이였고, 오랜만에 어쩌다 마주친 사이였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한나절을 함께 근무해야 하는 그런 날이었다. (A는 나에 대한 험담뿐만 아니라 지방 발령까지 영향을 미친 인물이었다)


 그런 어색함을 깨기 위해서 던진 것이라고 하기에 A의 재정 상태는 엄청났다. 곧 G라는 다른 직원이 옆에 왔다. 리액션이 좋은 G의 반응에 A는 더 신나서 말했다.


 "난 애들이 특별하게 자라는 건 기대하지 않고, 그저 와이프가 물려주는 일이나 잘 받았으면 좋겠어. 회사 생활 길어야 십 년인데, 난 퇴사하고 와이프한테 묻어가려고. 이 모든 일은 하나님께 매일 기도 열심히 하고 감사해서 받은 것이다"


 부의 결과보다는 재테크 방법이 더 궁금했지만 그는 '난 모른다, 이 모든 것은 와이프가 알아서 한다, 유튜브는 보지 않고, 책도 많이 있고, 가계부를 쓴다. 그리고 주변에 알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 반복해서 말했다. 다시 하나님께 기도하는 삶의 중요성과 번 돈의 일부로 후원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출귀몰한 재테크 방법은 무엇일까? 나랑 같은 나이에 한 사람이 외벌이로 벌어서 사립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집이 세 채가 되고, 거기다 상가까지 진출한다는 것은 가능한 이야기일까?


 A의 이야기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코딩 암호처럼 내 머릿속에서 엉켜버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의 말속에 빈 틈이 보였다는 것이다.


 회사 생활 별 거 없다고는 말하던 A의 실제 모습은? 사내 정치, 한 축에 끼고자 아등바등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 내 앞에서 여유로운 미소를 장착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처럼 말하지만 방금 나의 작은 행운(남편 만난 이야기)을 말했을 때,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얼음이 돼버렸다.


 재테크 성공, 공부 잘하는 아이, 가정적인 남편임을 쉴 새 없이 자랑하는 그였지만 누군가의 작은 행운에도 부르르 떨리는 입술은... 길고 긴 자랑보다 오히려 정직했다.


 돈 버는 비법은 비밀인데, 돈 번 결과는 자랑하는 그 남자, A의 마음은 무엇일까?


 더 궁금한 건 A의 마음보다 재테크 비법이 궁금했다. 유일한 단서는 2016년에 추가로 집을 구매했다는 것, 전세 준 집의 전세가 쑥 올라서, 오른 돈으로 다시 한 채를 더 사면서 부를 쌓아 올렸다는 것이 유일한 단서였다.


 또한 시세차익과 임대수익이라는 것은 둘 다 선택이 불가능한데, 본인은 시세차익을 노렸다는 것이다. 또 궁금했다. 시세가 오른 집을 팔지도 않고, 어떻게 대치동 집으로 이사올 수 있을까?


 이래서 나라는 사람은 재테크에 담쌓고 살면서 하루하루 일개미로 살고 있는 것인가?


 A를 만난 몇 시간 후부터는 갑자기 머리가 아파왔다. 다행히 중간에 온 G와 얼마 전 다녀온 여행 얘기를 시작하면서 A의 이야기는 흐름이 끊겼다. 그리고 그렇게 대화의 주인공이었던 A는 갑자기 조용해졌고, 근무 시간이 끝나기도 전에 화난 사람처럼 쌩하고~가버렸다.


 A가 얼마나 부자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미혼일 때나 아이 셋 아빠가 되어서나 그 말투와 행동은 변함이 없었다. 지나치게 흥분하거나 째려보거나, 쉬지 않고 말하거나.


A 뿐만 아니라 한때 가까웠던 친구도 흔히 말하는 '영끌'로 재테크 대박을 이루었다. 물론 과정과 방법은 비밀이었다. 모든 걸 다 이루고 나서, 부동산 가격이 절정으로 올랐던 시기에 본인의 재테크 결과, 성공만을 말했다.


 요새 하루에도 몇 번씩 돈 되는 방법이라며 스팸 메시지가 날아오고, SNS에는 유명인을 사칭한 재테크 광고가 넘쳐난다. 모르는 사람과 매체는 그렇게 쉽게 비법을 알려준다고 말한다. 하지만 주변에 돈 번 사람들의 특징은 첫째도, 둘째도 돈 번 과정과 방법은 비밀이었다.

 세상의 이치는 그렇다. 진짜 좋은 건 나만 아는 것일 뿐, 누군가와 공유하지 않는다. 비밀이 새어나가는 순간, 돈도 새어나간다.


 또한 돈 번 사람은 말을 하지만 돈을 잃은 사람은 좀처럼 말이 없다. 주식으로 한창 수익을 맛보던 지인도 크게 잃고 나서는 말이 없어졌다. 주변에 돈 번 사람은 목소리를 높이고, 돈을 잃은 사람들은 묵언수행에 들어갔다. 그러니 내 주변에 돈 번 사람들만 보이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일개미로서 하루를 마감했다. 카카오뱅크에 한 달 적금에 69만 원을 넣었더니 1,500원 이자가 들어왔다. 나의 것은 어쩌면 이렇게 모래알 같은지, 오늘따라 더 작아 보였다.


 그러다 아산병원 정희원 노년내과 교수님의 강의를 한 편 보았다. 지금 건강을 모으면 20억을 적금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현금 20억을 모으지는 못해도 20억을 저축한 것과 같은 것이라니, 눈이 반짝거렸다.


 20억을 몸에 저축한다는 마음으로 갑자기 운동을 검색하고, 나름 건강식으로 오늘 하루를 장식했다. 어쩌면 더 소중한 걸 놓치고 살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마음과 함께. 오늘도 일개미는 단잠을 청한다.


 오늘 나는 건강했고, 가족들도 모두 평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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