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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미해 Jan 18. 2023

'쓰는 직업'을 가지려면

우선 어떻게 써야 하는 것인가?

나에 대한 치열한 탐구의 1차적인 결과로 도출된 것은 '쓰는 직업'을 해야겠다는 것이다. 글의 주제, 쓰는 기술 등등에 따라 직업이 세부적으로 나뉘지 않을까 싶은데 우선 나이가 들 때까지 쓰고 싶다. 굳이 쓰는 일을 '업'으로 삼지 않고 별개의 일상 중 하나로 생각해도 될테지만 내가 자신있고 즐길 수 있는게 '쓰는 일'인지라 그것을 살리고 싶다. 


근데 정말 자신있나? 문득 내가 막힘없이 써온 글을 검토해봤다. 대부분 나를 향한 글이다. 자아 성찰이나 자아 탐구에 대한 결론이기에 그 누구보다 잘, 통찰력있게, 깊이 적을 수 있던게 아니었나 싶다. 실제로 매거진 동아리에 들어가서 에디터로서 페이지를 채워야 할 때에 굉장히 힘들었다. 나를 긁어내는 글이 아닌 경우엔 이렇게 자신이 없다는 것을 그때서야 조금 알았던 것 같다. 근데 그것보다 더 힘든 것은 무언가 평가하거나 고찰하는 글을 잘 적지 못한다는 것이다. 서평이나 영화 비평을 시도해봤지만 정말 어려웠다. 나를 어렵게 만든 존재는 다름 아닌 내 정보에 대한 '의심'이었다. 내가 무언가에 대해 평가를 하고 의견을 내면서도 그 근거가 충분한지 잘 모르겠더라. 내 성격상 모든 것에 대해 가능성을 열어두려는 편이기에 평가하는 글을 쓰게 되면 너무나도 열려있는 맺음이 되버려서 흐지부지한 글이 되곤 했다. 그렇다면 모든 평론가들은 지식의 양이 절대적인 차원에서도, 상대적인 차원에서도 완전하기에 글을 쓰나? 그건 아닐테다. 글을 쓰기에 적절한 시기라는게, 글을 써도 충분한 지식의 양이라는게 존재하는지 궁금하다. 




삶의 어떤 순간에만 쓸 수 있는 글이라는 게 있다. 설익어 어설플지라도 여백이 있어 매력적인 글. 이미 정교함을 획득해 버린 노회한 저술가는 구사 불가능한 미학이 그런 글에는 있다. 무턱대고 내지를 수 있는 치기 덕에 빛나는 통찰, 날것이라 푸른 물 뚝뚝 듣는 문장, 눈치 보지 않는 솔직함이 빚어내는 감동. 

이 모든 건 '처음'의 특권이자 판을 잘 모르는 신인의 특권, 젊음의 특권이기도 하다. 


책 <공부의 위로> 67p


이 구절은 책 <아무튼, 피아노>에서도 언급되었던 '아마추어의 미학'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라고 느낀다. 이 구절을 충분히 이해하긴 한다. 한창 글을 쓰던 21년 하반기의 글을 보면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느껴질 정도다. 지금보다 더 무겁고 다소 도발적인 글을 썼다. 왜 이렇게까지 생각하나 싶을 정로도 깊은 사유가 느껴지는 글이기도 했고. 좋게 말하면 어딘가로 깊이 파고드는 힘이며, 사실적으로 말하면 다소 폐쇄적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컸다. 글은 한 시점을 굉장히 다양하게 함축할 수 있는 도구이기에 단순히 기록의 기능을 넘어서 과거의 나와 만날 수 있게 해주기도 하는 것 같다. 무튼, 이런 차원에서는 조금 어설프게 느껴지더라도 글을 쓰는게 좋고 이 또한 타인에게 불쾌감보다는 색다로운 자극을 안겨줄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번엔 교수님과의 대화를 꺼내보겠다. 얼마 전에 기자 출신인 교수님과 상담을 하면서 기자라는 직업이 지녀야 할 여러 능력 중에 대학생 때에 기를 수 있는 능력이 무엇이 있을지 여쭤보았다. 내가 예시로 든 능력은 취재에 탁월한 능력, 아이템을 발굴하는 능력, 끈기 등등이었다. (지금 내 질문을 다시 바라보니 특정 경험으로 손쉽게 얻어질 거란 오만함이 보여 조금 부끄러워진다.) 교수님은 그러한 능력들은 어떤 활동으로 바로 취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여러 경험들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유추해볼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하셨다. 다만, 대학생들이 조심해야 할 부분이 사회 현안에 대해 깊이 관심이 있지도 않고 그 현안에 대해 자기가 가진 단편적인 지식으로 단정지어 버린다는 것이라고 하셨다. 논술 시험을 보면 이 사람이 문제를 꿰뚫어 보는 힘이 있는지 단번에 보인다고 그러셨다. 하긴 그럴만도 한게 논술 시험은 글을 '잘' 쓰는지 평가하기보단 얼마나 '논리'적인지 판단하는게 아닌가. 이 대화를 듣고선 역시 지금 내가 글을 쓰기엔 서툴다, 라는 결론이 나온다. 




정반대를 향하는 듯한 책과 교수님의 조언은 내 고민이 다소 모호한 부분이 있음을 꼬집어준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의 형식이 다양한데 그 중 무언가를 평가하거나 주장하는 글에는 교수님의 조언이 적용되고 지금처럼 에세이 형식으로 쓰는 글에는 책의 말이 적용되지 않나 싶다. 즉, 단순히 글이라는 큰 범주에 바로 적용해볼 것이 아니라 쓰려는 글이 '어떤 글'인지 나누지 않은 채 덥석 고민을 품은 것이다. 사실 되게 명쾌하게 정리된 경과처럼 보일지 몰라도 정말 오래 나를 힘들게 한 고민이었다. 평가하거나 주장하는 글을 잘 못 쓰기에 아예 쓰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하나 싶기도 했고 현재 글을 게시하는 여러 창구를 다 없애야 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물론 여러 조언대로 글의 종류에 따라 다르게 글의 성숙을 위해 노력한다해도 그 과정 속에서 고민은 또 생길 것이다. 왜냐하면 결국 글은 계속 쓰기도 하며, 계속 공부하기도 해야 하는 존재같은데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생산할수록 더 나은 조언을 마주할수도 있으니까. 학문적 공부가 될 수도 있고, 인생 공부가 될 수도 있고, 사람 공부가 될 수도 있을 공부를 하고 계속 글을 쓰며 이번 겨울을 보내야겠다. 겨울이 끝나갈 즈음엔 어떤 글을 쓰고 있을지, 어떤 조언을 받아들이고 있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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