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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를담다 Jan 13. 2024

글쓰기 비법을 묻다

문득 글쓰기가 어려워질 때


너는 숙련된 세탁소 사장님처럼 글을 쓴다고. 혹은 사부작사부작 장사하는 국숫집 사장님처럼 글을 쓴다고. 나에게 그것은 재능이 있다는 말보다 더 황홀한 칭찬이다.

<부지런한 사랑/ 이슬아/ 문학동네>



이슬아 작가님의 책을 참 좋아한다. 작가님의 글은 꾸밈없이 솔직하고 섬세하며 자유롭다. 단조로운 일상을 그에 알맞게 표현된 단어로 고급스럽게 풀어낼 때면 나도 평소에는 표현하기 힘들었던 내 안의 소심한 감정들을 고백할 수 있는 작은 용기가 생기기도 한다. 작가님의 글들은 내 몫의 부끄러움을 대신 감당해 주는 것 같아 한시름 덜어지기도 하고 시크한 자유로움에는 묘한 호기심이, 또렷하지만 대쪽 같지는 않은 자기 주관을 내세울 때는 독자로서 참 반가운 마음이 든다. (딸이 누드모델을 한다고 했을 때 고급스러운 가운을 선물해 준 복희 씨에 대해 더 알고만 싶어 진다.) 이슬아 작가는 일상 적이라 그냥 스쳐버릴 만한 일들을 하나의 의미 있는 스토리로 만드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 이 궁금증에 대한 답은 "재능보다는 꾸준함, 오로지 꾸준히 글을 쓰는 것"만이 비법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류시화 시인도 책에서 이와 같은 말을 했다. 인도여행 중에는 매일 같은 시간에 꾸준히 글을 쓰거나 시간이 없을 때는 그 어느 곳에서라도 글을 쓴다고 했다. 커피숍에서 글을 쓸 때에는 자신을 알아보는 독자에게 '류시화는 인도에 있습니다'라며 글쓰기에 집중을 했다고. 주변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심지어 집중력마저 바닥인 나로서는 앉은자리에서 고개를 저을 뿐이다.

'하.. 정녕 나는 글을 쓸만한 사람이 아닌 것인가'


복잡한 머릿속을 헤집어 풀어놓다 보면 장문의 글밖에 쓸 줄 모르는 내가 된다. 브런치의 분위기와는 정말 어울리지 않은 것 같다.(나도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재작년 연말부터는 컴퓨터를 켜는 것이 일하는 것 마냥 마음이 무거워지는 상황에 이르렀다.(맙소사) 우여곡절 끝에 켠 컴퓨터 모니터에 뜬 마우스의 화살표는 시작부터 갈 곳을 잃었고 유튜브와 네이버창만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용도로만 사용되기 시작했다. 공부가 하기 싫어 책상정리 필통정리 가방정리까지 다 해놓고 책을 펴놓고 엎드려 자기 바빴던 학창 시절처럼(이렇게나 한결같다니) 글쓰기만 쏙 빼놓고 빙빙 돌다가 브런치의 하얀 바탕이 무서워 후다닥 컴퓨터를 종료하는 날이 많아졌다.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들은 이렇게나 많은데도 글을 쓰며 적절한 단어를 표현해 내는 것이 갑작스레 무척이나 어렵게 느껴졌고(처음엔 즐거웠다) 꾸준히 써야 한다는 압박감과 퇴고의 시간이 길어지자 지쳐버리는 날도 덩달아 많아졌다.(글밥을 줄일 수는 없는 것인가..)


평범한 이들보다 연민피로도가 높다고 자부하는 나로서는 글을 쓸 때마다 억울함과 우울함, 괴로운 감정들이 치솟았다. 더불어 그걸 견뎌낼 자신감도 함께 사라져 버리는 날들이 잦았다.(내 글은 왜 모두 좋지 않은 일뿐인지) 답답한 마음에 신랑을 붙들어 내 불편한 마음을 풀었더니 '글을 거창하게 말고 가볍게 써봐'라는 알고 있지만 되지 않는(?) 답이 돌아왔다.(자네가 써보게나) 아마도 마음 편하게 쓰라는 뜻이었을 텐데 조언도 훈수같이 들리는 모난 마음까지 창피해졌다. 흉기를 든 것도, 위협을 하며 겁을 준 것도 아닌데 가슴이 답답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해져 그저 툴툴거리며 심통을 냈다. 이것을 감당하는 것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이유가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글을 쓸 때에는 해소된 것만 같았던 감정들이 글쓰기를 마친 일상에서 다시 마주하게 되었을 때, 쓰기 전의 감정으로 되돌아가버리게 되는 상황이 꽤나 자주 반복된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와 벌이는 전쟁이 싫어졌다고나 할까. 묵은 감정을 해결하는 데에는 꽤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시간에 쫓기는 육아와 함께 하는 눈앞의 현실 속에서는 제자리걸음 혹은 뒷걸음치는 과정만이 반복되자 성과도 나지 않은 글쓰기에 긴 시간을 들이는 게 허탈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글을 쓰려면 당연히 겪어야 할 일인데도 말이다. 글을 쓰거나 쓰지 않거나 어차피 마음속에 담겨있는 감정은 그 어떤 방식으로라도 일상에서 표현되기 마련이었을 텐데 무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애꿎은 신랑만 여러모로 피해자로 남았다.(얄밉지만 가해자는 아니다) 미안하다.




때마침 도서관에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의 황보름작가님의 북토크가 열린다고 했다. 그렇게 신랑과 도서관으로 향했다. 인생 처음으로 경험한 북토 크였다. 지인과 함께 독서모임을 시작한 터라 모임에 도움이 되는 경험을 하고 싶은 마음과 더불어 브런치에서도 종종 소개되었던 베스트셀러 작가님을 만난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들떠있었던 그런날이었다. 북토크를 진행하시는 진행자 분의 질문의 리스트는 놀라울 정도로 다양했다. 간디학교의 도서관 사서 선생님이시라고 들었는데 황보름 작가님도 당황할만한 신선한 질문들로 인해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예를 들면 "이 책에는 악역이 없다. 유일한 악역이라면 책은 사지 않은 채 같은 시간에 같은 책만 보고 가는 부동산 사장님이신 것 같은데 그분은 어떻게 살고 계시나요?"와 같은) 웃고 공감하며 넋을 놓고 있다 보니 '질문하실 분?'이라는 말이 들려왔다. 순간 2시간이 훌쩍 지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워낙 유명하신 작가님이라 질문의 기회가 나에게 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미처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왔는데 '어쩌지 나는 이미 답답하고 질문을 하자니 무서운데...'


누군가에게는 코웃음 칠 일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나에겐 여러 가지 단점 중 가장 고치기 어려운 치명적인 단점 두 가지가 있다. 그건 마이크 공포증과 수도꼭지병이다.(나는 내 이야기만 하면 운다) 일상생활에서는 유쾌하고 즐겁고 장난기도 많지만 이목이 집중되는 순간부터는 말이 잘 나오지 않고 글을 읽지 못할 정도로 턱이 떨리기 시작한다. 내 이야기에 내가 눈물을 쏙 빼버리니 보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도 어찌할 바를 모를 상황이 연출된다. 하지만 '어쩌지' 하며 고민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나는 진심으로 올해는 꼭 글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작가님. 제가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데요. 컴퓨터에 앉으면 압박감 같은 것이 밀려와서 겁이 나 컴퓨터를 켜기가 너무 어려워요. 조금은 가볍게 꾸준히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마이크 공포증과 수도꼭지병이 이번엔 더 심했다. 나 정말 진지했나 보다.)


알고 있다는 듯한 공감의 표정과 함께 '음' 하며 말을 고르는 작가님의 짧은 침묵에 내 마음이 요동을 쳤다. 진지한 공감의 마음이 내가 앉아 있는 자리에 까지 느껴졌다. 곧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렇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어떤 작가는 글에 집중을 못하는 자신을 의자에 몸을 꽁꽁 묶어두고 글을 쓰는 경우도 있다는 말과 더불어 글을 쓰는 작가들이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종종 겪는 일이라고 했다.(다행이었다) 그리곤 눈앞에 있는 하늘보리 물병을 들어 보이며 '하늘보리 라는 한 가지 주제를 계속해서 생각해 보세요. 이쪽으로 보고 저쪽으로 보고 다양한 방식으로 생각을 해보세요. 하나에만 집중해 보세요.'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그 말을 듣고 있는 도중 문득 머릿속에 반짝하고 생각이 스쳤다.


엄마. 엄마였다. '엄마라는 무거운 주제를 생각하고 쓰려고 해서 그런가 봐요' 나도 모르게 작가님께 고백하듯 이야기했다. 내가 묻고 내가 답을 얻는 상황이 또다시 연출되었다. 아. 타인에게 고민을 이야기하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은 이렇게나 닮아 있었다. 스스로 고백하고 스스로 답을 찾는다는 것. 공감하며 이해해 주고 진심으로 들어주는 관객만 있다면 그 어떤 해결도 생각보다 쉽게 할 수 있다는 것. 이제껏 주변에서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진심으로 마음을 열어 나의 고민에 대해 이해해 주고 진지하게 들어줄만한 사람은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나 자신'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그러는 나는? 나도 '나 자신'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그러니 이렇게 어긋날 수밖에. "내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가시나무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그렇게 이해와 공감 그리고 오롯이 들어주기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한번 더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내 질문에 대해 작가님이 전해준 친절한 답변은 "천천히 어렵지 않은 주제로 시작해 보라는 것"이었다. 사소하지만 그 어떤 답변보다 명쾌했다. 글은 아무나 쓸 수 있지만 책은 아무나 낼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올해 지녀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서 또 한 번 배울 수 있는 순간이 있다니. 기뻤다. 나만 생각하는 내가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려면 한 가지 방향이 아닌 다양한 방향의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주변은 협소하고 한정적이니까,


장르도, 작가도, 소재도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을 만큼 다양하게. 편협한 시각에서만 맴돌다가 외딴섬에 뚝 떨어져 세상과 단절하며 살지 않도록 스스로가 자신을 잘 이끌어갈 수 있도록 자주 되돌아봐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내가 내 마음을 잘 알지 못할 때, 내가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 답답해질 때, 나와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할 때 수많은 책만큼 좋은 스승은 없다는 것을 안다.(바깥세상에 나가 사람들과 부딪히는 것도 꼭 필요하다. 책을 읽고 바깥으로 나가자) 이럴 땐 내 마음을 읽어줄 수 있는 도서관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감사하다. 그래서 오늘도 읽는다. 읽고 또 읽는다. 그리고 쓸 것이다.


나의 책과 필사 노트


책을 읽으면 세상 보는 눈이 밝아진다고 하잖아요. 밝아진 눈으로 세상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요 세상을 이해하게 되면 강해져요. 바로 이 강해지는 면과 성공을 연결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강해질 뿐만 아니라 고통스러워지기도 하거든요. 책 속에는 내 좁은 경험으론 결코 보지 못하던 세상의 고통이 가득해요. 예전엔 못 보던 고통이 이제는 보이는 거죠.


 누군가의 고통이 너무 크게 느껴지는데 내 성공, 내 행복만을 추구하기가 쉽지 않아 지는 거예요. 그래서 책을 읽으면 오히려 흔히 말하는 성공에서는 멀어지게 된다고 생각해요. 책이 우리를 다른 사람들 앞이나 위에 서게 해주지 않는 거죠. 대신, 곁에 서게 도와주는 것 같아요.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황보름/ 클레이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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