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가도 직업을 말하지 않는다. 직업을 말하는 순간 나는 없어지고 양쪽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려있는 한 마리 천사 놈으로 페르소나 되어 자유롭게 행동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봉사’ 영역이 그렇다. “당신 일이 봉사자를 모으는 것인데 스스로 봉사활동을 찾다니 진정 사회복지사군요.” 부담이 천배로 불어나는 순간이다.
나에게 있어 ‘타인을 위한 이타적무임금 활동’ 시작을 위한 계기는직업정신 혹은 착한 마음이 아니라 시동이 걸릴 수 있는 결정적 원인과 기회다.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충북 음성에 위치한 꽃동네에 함께 갈 학생들을 모집했다. 그때 계기는 서울 울타리를 벗어난 적 없었기에 마치 미국에 있는 도시처럼 느껴졌다. 망설임 없이 명단에 이름을 썼다. 대학 때 도시락 배달을 했다. 그때계기는 그저 취업에 유리할 것 같았다. 주니어 사회복지사 때의 계기는 ‘허세’였다. 사회생활하며 배운 사회복지기술들을 필요한 곳에서 넓게 펼쳐보고 싶다는 필요 이상의 의협심이었다.
금번 계기는 ‘이별’이다. 결별의 말은 정말 헤어질 때 해야 한다 생각했던 소신을 펼치고 나니 남는 건 일상을 더 잘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다.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았고 간혹 올라오는 생각들도 잘 정리되는 중이다. 이별 여운도 일주일, 이주일..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고 나니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상을 더 잘 지낼 수 있는 방법들을 생각하다 소모임 앱을 깔았다. 사교와 인맥 등 다양한 종류의 앱들이 많았지만 유독 눈길이 가는 모임이 있었다. 인천 계양산에 있는 아크 보호소라는 곳이다.
2020년 계양산 개농장에서 160마리의 개들을 구조하여 보호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대형견 160마리가 있다. 그리고 조나단이라는 고운 이름을 가진 성인 남자 키만 한 돼지도 있다.
일요일 오전 10시까지 도착하여 방진복 및 장화 착용, 사육장 청소, 사료 및 물급여, 밥그릇 세척, 배변 치우기, 사료 이동을 하고 나서 점심을 먹는다. 그 후 오후 4시까지 식수 급여, 배변 치우기, 산책, 목욕 등을 진행하고 나면 종료다.
이 일목요연한 활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개 사육장 특유 냄새와 땀과 범벅이 된 개털이 온몸에 남아있다. 솔직히 보람찬 기분보다는 높은 강도의 노동으로 인한 손목 통증과 근육통이 생겨 힘들다. ‘너무 몸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활동을 했구나’ 후회도 된다.
그러나 기왕 이렇게 이별을 한 것을 핑계로 봉사활동을 하나 더 늘려보기로 한다. 인생 이야기 듣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삶만큼 중요한 것은 죽음이라는 생각이 늘 있다.
이런 과정에서 모든 사람이 존엄하게 생을 마감할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사회적 공영장례를 통해 무의탁 저소득 시민들을 지원하고 있는 ‘나눔과 나눔’이라는 시민단체에 연락했다. 제일 잘할 수 있는 건 ‘사람 삶에 대한 기록 정리’이기에 사례 기록 관리로 지원했다.
일상을 공유하던 사람이 없어지면 당연히 힘들고 허전하다. 그러나 나는 그저 이별을 했을 뿐이다.
그리고 과정 속에서 생긴 빈 공간들을 나를 위한 활동들로 채워 넣고 있는 중이다. 단어를 잘 사용하여 상대방을 존중하는 문장을 쓰고 싶고, 이타심만으로 꽉 채워진 개 보호소 활동들을 잘 유지하고 싶다. 공영장례가 필요한 이들의 기록들을 잘 정리하여 그분들의 삶도 존중과 관심을 받고 있으니 좋은 곳에 가셨기를 기도드리고 싶다. 그리고 좋은 사람을 만나 성실하고 진심인 연애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