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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숭아 Sep 29. 2022

'감정 쓰레기통'보다 힘든 '감정 수발'

"◯◯◯ 딸인데 전화 주세요"    

  

어제 가족들에게 연락을 거절당하는 A아저씨가 찾아왔다. 그나마 연락을 받아주는 아들에게 합의이혼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지 알아봐 달라며 짜증과 푸념을 잔뜩 뿌려놓고 갔다.    

  

그를 위해 봄부터 온 동네를 사방팔방 뛰어다녀 두 달 전부터 공적부조를 받게 됐다. 그런데 그 와중에 A아저씨, 이제는 고시원비가 너무 많다며 LH 전세임대주택에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한다.


문의 결과 소득기준으로 입주가 진행하는 LH 전세임대주택에 들어가려면 부인 소득도 합산이 되어 들어감에 따라 입주조건이 맞지 않은 상태임을 전달한 터였다.


아들에게 사정을 이야기한 이후 딸에게 문자가 왔다.


이제 17살 된 딸의 입장에서는 이혼하자고 할 때는 없는사람으로 취급당한 불쌍한 엄마와 버티듯 살아온 본인들에게 필요할 때 연락한 아버지라는 사람이 얼마나 원망스러울까.


병들고 살 곳 없다며 이혼을 요구하는 아버지가 사람으로 느껴질까.      

딸은 어린이 목소리를 가진 청소년이었다.


내가 그 아버지가 되어 10분이라는 시간 내내 빈정, 비웃음, 분노를 아기 목소리로 들으며 급기야는 “감정 수발”을 들고 있다는 생각에 참다못해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가 튀어나왔다.     


오후에는 회의가 있었다.

회의 중 질의하는 과정에서 사회자의 낮은 공감과 수용력에 울컥하고 분노감이 올라왔다. “그럴 수 있지”라며 넘기는 성격임에도 몇 년 만에 외나무에서 원수를 만난 것 같은 갑자기 올라오는 민감한 감정에 나는 더 이상의 질문을 멈추고 마스크 뒤로 숨었다.


그리고 남은 회의시간은 당황한 마음을 내리누르며 “왜” 화가 나는지에 대한 생각을 했다.  

   

퇴근 후 결국 두통약을 먹고 잠을 잤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사례대상자는 모두 15명 정도다. 일주일 평균 통화는 평균 25~30통, 대면 상담은 평균 4~5명. 그들 모두 눈물, 짜증, 분노, 고통, 가난, 생계에 대한 복잡한 감정들을 쏟아내고 간다.


그 감정들을 매일 듣고 문제 해결 과정에 개입하는 동시에 상시적으로 작성해도 차고도 넘치는 행정문서들과 기록들이 기다리고 있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다. '자연인'같은 사람을 제외하고 대다수 사람들은 모두 그물망 같은 관계와 상황에 놓여있다.


삼하게 엉켜있는 관계와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들을 위한 개입 즉, 뭉쳐있는 실타래를 풀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복지 영역이 사례관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 실타래를 풀기 위해 투자되는 사회복지사의 에너지와 감정 소실들에 대한 보상 및 보충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은 찾기 어렵다. 그만큼 퇴사율도 높을 수밖에 없다.      


과연 사례관리 담당 사회복지사로서 스트레스에 탁월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지만 결국 이 업무를 계속하는 한 스트레스는 해소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소연이 계속된다면 함께 일하는 동료나 가족들에게 ‘감정 수발’을 재생산하게 되는 상황만 벌어질 것이다.      


‘당사자 회복을 돕는 사례관리자’에서 ‘당사자로서 스스로의 회복을 만들어가는 사례관리자’  

    

그러나 지금은 실적 입력을 위해 9월 과정 기록지를 1분에 500타로 정리 중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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