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 ◯◯◯인데요. 오늘 못 갈 것 같아요. 어제 아버지께 일이 좀 생겼거든요.”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 어떤 일이신지 이야기해 주실 수 있나요?”
“..........”
“많이 불편하신 일이신가 봐요.”
“아버지가 어제 ◯◯을 시도하셔서 응급실에 계세요.”
“..........”
어떤 이야기도 나누기 힘든 상황이다. 곧이어 깊은 한숨과 안정되면 만나자는 이야기로 통화가 끝났다.
더 길게 이야기 나누기에는 서로에게 남겨진 암묵적인 죄책감으로 더는 통화를 이어가기 힘들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가정방문을 다녀오자마자 업무전화가 울렸다.
“안녕하세요. ◯◯시청 아동보호팀인데요. 복숭아선생님 계세요?”
“네, 본인인데요.”
“다름 아니라 ◯◯이 알고 계시죠? 사례관리를 맡고 계신다 하여 연락드리게 되었습니다.”
“네, 올해 1월까지 진행했던 사례인데 무슨 일이시죠?”
“네, ◯◯가 지난주에 ◯◯을 했어요.”
“네?!”
고요한 사무실에 격앙되고 커지는 “네”, “네”, “네”가 반복되고 있었다.
사례관리를 맡게 되는 아이들 중 유달리08년생들이 많은데 ◯◯도 그중 하나였다. ◯◯는 이제 겨우 16살이다.
죽음이라는 명제에 당황스럽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 특히 그 대상과 가족을 위해 라포를 형성하며 밀접함을 가지고 있던 사회복지사는 순식간에 무기력에 빠지고 만다.
특히 그 청소년은 10개월을 만났던 가족구성원이었다. 보통 6개월 정도가 지나면 어지간히 거리를 두던 아이들도 고개를 들고 가끔 눈을 마주쳤지만 ◯◯의 정면 얼굴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자 고개는 들었지만 정면이 아니라 측면만을 바라봐야 했다. 쌍꺼풀 없는 아기얼굴을 가진 그 아이는 어깨까지 찰랑거리던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다.
이 가족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 무려 11개월 전이다. 기간에 미술치료도 투입하고 별도 외부 상담도 진행했다.
그러나 가족을 대표하는 엄마가 사례관리와 상담을 거부했다. 연락을 거부하는데 억지로 상담을 진행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죽음은 온전히 가족들만의 몫이라 생각하지만 사회복지사 혹은 상담사로 그 가족들의 세밀한 마음까지 알고자 노력했던 사례관리자는 그 죽음이 견디기 힘들다. 티 낼 수 없는 마음의 울분과 불편함이 울컥 올라오기 시작한다.
특히 사례관리자로선 “종결하지 말고 연락이 되든 안되든 끌고 갔더라면... 그 아이는 안 죽었을까?”, “사례자 가족인 어르신을 직접 만나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상담을 진행했더라면...” 이라며 죄책감 섞인 생각이 한꺼번에 올라온다.
그리고 그 마음을 안고 정해진 스케줄대로 사람들을 만나러 상담실과 가정을 오고 간다.
그 과정에서 동갑인 24년도에 고등학교 1학년이되는 08년생 아이의 교복을 위해 교복 나눔 장터에 함께 가는 약속을 잡으며 죽은 아이 생각을 잠시 내려놓는다.
그렇게 마음의 균열을 대충 봉합하고 늘 그래왔듯이 사회복지사로서 지역주민들을 위해 나의 하루를 온전하게 쓰게 된다.
"어떤 생각을 하며 하루를 보내고 계신가요?"
어제는 추운 바람과 첫만남 이후 9개월의 시간을 뒤로하고아이가 4명인 32살 아기 엄마를 만났다.
늘 경계하며 한 문장 한 문장 책을 읽듯 기계적인 대답과 사회복지서비스에 대해 늘 의구심을 품어오던 분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종결을 고민하며 오로지 나의 역할은 충분한 듣기로 준비를 무장한 체 만났다.
평소와 똑같은 "◯◯님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라는 나의 질문을 그녀는 몇 번이나 곱씹었다.
그리고 그 질문을 왜 만날 때마다 하냐고 반문했다.
다른 사람들은 단순한 질문과 대답만을 주고받기에 질문에 대한 적응이 힘들었다고 혼잣말을 했다.
1시간이 넘는 대화가 오고 가며 아이들이나 남편 혹은 가족이 아닌 본인만의 안부를 묻는 질문을 처음 받아보는데 본인은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진심 어린 질문이 가장 인간적이며 따뜻한 관심임을 다시 한번 통찰한다.
늘 좋은 질문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있다. 그리고 꾹꾹 눌러 담은 눈물을 보는 순간 더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삶을 환기시키고 긍정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해답은 좋은 질문 속에서 나온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