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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크 Oct 07. 2020

요즘 듣는 음악 이야기

윤종신 'Spare' (Feat. 염따)

세상에는, 그리고 우리 주위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의외로 제법 어울리는 것들이 종종 있다. 치킨과 밥, 파인애플과 피자(개인적으로 선호하지 않는다..), 비와 태진아, 유재석과 박명수, 주변에 하나씩 있을 법한 전혀 다른 성향의 베스트 프렌드가 대표적인 예시일 것이다. 너무 어울리지 않아 무모해 보였다면 다른 이야기가 나왔겠지만 윤종신과 염따의 조합은 '오..? 뭐지..? 빠끄..?'라는 기대와 설렘을 같이 주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쓰는 '요즘 듣는 음악 이야기'는 절대 뻔할 수 없는 윤종신과 염따의 'Spare'의 힘을 빌려보려고 한다.




2020 월간 윤종신 1월 호 - Spare(Feat. 염따)


음식은 먼저 눈으로 먹는 거라는 요리사들의 말처럼, 자켓 이미지를 유심히 잘 살펴보면 눈으로 음악을 먼저 들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누구나 한 번쯤 달려보고 싶은 끝이 없이 광활한 도로. 차 한 대를 제외하고는 시원하게 비어있는 2차선. 적당한 온도일 것 같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멀리서 보면 규칙적인 지루함을 보여주면서도 가까이서 보면 불규칙한 재미를 주는 풍경. 그리고 '1'은 이 도로를 앞서 달리는 듯 그려져 있다. 국내에서의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음악과 인생을 위해 잠시 떠난 윤종신의 '이방인 프로젝트'. 그 시작을 알리며 염따와 함께한 곡 'Spare'를 조금 더 살펴 들어보자. 




미국 텍사스의 사막 도로를 찾아갈 계획이 있다면 다른 영상을 찾기보다 이 뮤직비디오를 봐도 좋을 만큼, 쭉 뻗은 사막 도로를 원 없이 비춰준다. 중간중간 차 내부와 윤종신을 보여주는 영상은 옛날 뮤직비디오 앵글 같은 약간의 촌스러움이 있는데,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지루함과 권태를 느끼는 사람들이라면 이 촌스러움마저 부러울만하다. 사실 나도 그렇고. 아마 이방인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많은 응원도 받았겠지만 숱한 걱정도 받았을 윤종신은 영상을 통해 오직 달리는 것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윤종신이 하고 싶었던 가장 쿨한 대답 아닐까? 





'윤종신이랑 염따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웬 넷플릭스 드라마 표지?' 싶겠지만 'Spare' 곡의 모티브가 되어 준 드라마로 깊은 연관이 있다. 염따와 윤종신의 조합을 성사시켜 준 효자기도 한 빌어먹을 세상 따위 시즌 2의 4화 중 히치하이커 '보니'를 태운 '제임스'의 차가 얼마 못 가서 퍼지는 장면. 스페어가 있느냐는 '보니'의 질문("Do you have a spare?")에 '제임스'는 그게 바로 스페어였다고 대답("That is the spare.")하는 장면을 보고 윤종신은 우리네 인생을 생각했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 스페어를 하나씩 갖고 태어나는 걸지도 모른다는, 그 스페어를 언제 어떻게 갈아 끼우느냐에 따라 삶의 양상이 달라지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사에 담았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윤종신이 쓴 산문집 '계절은 너에게 배웠어'를 구매해서 몇 번이고 완독을 했었는데, 그중 '작사가는 어느 찰나의 한순간을 4분 내외의 음악으로 만들어 내는 사람'이라는 책 구절이 가장 알맞게 느껴지는 설명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제목인 스페어를 처음 소리 내어 읽을 때 볼링핀을 먼저 떠올렸던 나는 작사는 힘들겠다는 생각 역시 동시에 들었다. 




떠나보니 그냥 여기까지 왔어 Navigation이 가란 대로 그냥 갈 뿐이지 

뭘 더 바래 이번 달에 갈 수 있는 만큼 갔던 게 나였잖아 

하나뿐인 Spare 너만 남았어 쓸 만큼 써버린 낡은 건 보내줘야지 

아낌 뭘 해 닳고 닳아 거친 갈 길을 버틸 수가 없을 거야 


Spare 

Spare 


언젠가 더 갈 길 없을 때까지 그때까지 잘 버텨주기만을 바랄게 

뜨거워도 타들어 가도 난 어차피 너만을 믿고 갈 수밖에 

마찰력에 네가 문드러져도 Navigation이 가란 데까지 못 가더라도 

달렸잖아 팔자잖아 이렇게 가다 혹시 날아오를지 몰라 


Spare 

Spare 


낡은 캐딜락을 타고 나는 달려 

좀 삐걱거려도 상관 안 하지 

큰 다이아몬드를 사 외제 외제차 

연장전은 너무 치열하잖아 

달력이 시를 써 난 가난에는 프로야 

돌아가고 싶지 않아 다시는 

염따로 살다가 염따로 죽어야지 

루이비통에다가 나를 묻어줘


- Spare 中


윤종신을 참 좋아하는 이유 중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바로 가사다. 가사가 담백하고 솔직하면서 가끔 찌질하기까지도 하다. 대한민국의 많은 남자들의 속마음을 대변해주는 듯한 곡들이 많다. 이번 곡 'Spare'에서는 생활 친밀형 가사가 등장한 것은 아니지만, 노래를 듣는 사람들에게 마치 인생에 대한 열린 태도와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듯한 가사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후반부에 등장하는 염따의 랩은 강렬하고 효과적이면서도 곡과 잘 어우러졌다. 윤종신이 설명하기를, 통화한 뒤 정확히 8시간 뒤에 작업이 끝났으며, 여태까지 작업해본 뮤지션 중에 가장 쿨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재고 따지는 게 없는, 흔히들 말하는 '백스윙'이 없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염따의 랩과 가사를 들으며 이런 설명을 들으면 '염따는 역시 염따지'하며 끄덕거리게 된다. 이 형은 세상에 있는 쿨한 곡이란 쿨한 곡에는 모조리 다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다. 




사실 윤종신과 래퍼의 작업은 염따와의 작업이 처음은 아니다. 개코, 지코, 한해, 키디비, 타블로, 타이거 JK, 빈지노, 스윙스 등 정말 다양한 래퍼와 곡 작업을 이미 해왔으며 특히, 스윙스와는 우리가 모두 따라 부를 수 있는 '본능적으로', 같은 이름의 모바일 게임 컬래버레이션 곡 '회색도시', 스윙스의 솔직한 이야기 'Lonely', 'Pool Party' 총 4곡을 작업했다. 참 다양한 도전과 시도를 하는 사람이구나라는 걸 느낄 수 있고, 넓디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에 감탄만 나온다. 많은 래퍼들과 다양한 곡들 중, 내가 듣기에 인상 깊었던 두 곡은 위에 가져온 Lonely와 The Color이다. 허투루 만들어졌다는 느낌을 찾기 어렵고, 스윙스와 빈지노, 그리고 윤종신 각각의 색깔 또한 진하게 묻어나는 곡들이라고 생각한다. 윤종신과 염따의 합작품 'Spare'만큼 신선한 것을 경험해보고 싶다면 위의 두 곡 또한 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소에 스트리밍을 이용하지 않아서 새로운 노래를 접하게 될 기회가 많이 없다 보니, 이따금씩 노래가 듣고 싶을 때가 생기면 그때그때 생각나는 노래를 검색해 반복으로 찾아 듣고는 한다. 그리고 그 노래들 중 윤종신 노래는 나에게 있어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한다. 위의 내용에서 얘기한 가사도, 디테일이나 분위기, 전달하려는 메시지도 참 와닿는 부분이 많다고 느낀다. 옛날에는 윤종신의 노래라고 하면 '아~ 뭔가 옛날 노래 느낌?' 싶었는데 군대부터 시작해 나이를 먹을수록 스며드는 무언가가 있어 더 찾아 듣고 부르게 되는 것 같다. 발라드를 좋아하고 자주 부르다 보니 '좋니'와 같은 발라드를 자연스럽게 기대하게 됐고, 이방인 프로젝트의 첫 곡이 염따와의 콜라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땐 사실 걱정이 조금 앞섰던 나의 모습을 이 글을 써 내려가면서 깊이 반성하게 됐다. 염따의 인기는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에는 염따의 음악이 있었다. 다양한 음악, 특히 힙합에 대해서 찾아 듣고 공부하고 있었던 이 시점에서 이 둘의 콜라보 곡은 내게 신선한 환기가 되었고, 더 음악을 열심히 좋아해야겠다는 기분 좋은 다짐이 되었다. 운전면허가 없어 스페어의 뜻을 찾기에 헤맸던 기억은 뒤로 하고, 내게 주어진 타이어와 스페어를 잘 찾아 적절히 사용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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