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을 돌아보며 'K콘텐츠 전성시대'라는 말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동영상 플랫폼(OTT)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K콘텐츠가 전세계 시청자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습니다.
또 전세계가 BTS를 필두로 한 K팝에 열광했습니다. 기생충에 이어 영화 미나리는 한국 영화의 자존심을 세워줬습니다. 그야말로 지구촌이 K콘텐츠로 들썩인 한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콘텐츠를 통해 한국을 접한 사람들은 한국의 문화, 한국의 제품 등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가 K콘텐츠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K콘텐츠가 전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요원할 것만 같았던 '콘텐츠 제값받기'에 대한 논의가 탄력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비정상적이었지만, 아무도 목소리 높이지 못했던 '선공급 후계약' 이라는 이상한 콘텐츠 정산방법을 '선계약 후공급'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동안 콘텐츠 제작사들은 자신들이 공급하는 콘텐츠의 대가를 알지 못한채 IPTV와 같은 유료방송사업자들에게 콘텐츠를 먼저 공급했습니다. '선공급'입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후 이미 공급한 콘텐츠에 대한 대가를 정하는 '후계약'을 했죠.
분명 이상한 관행이지만 이런 관행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오랜 시간 고착화된 콘텐츠 선공급 후계약 관행은 콘텐츠에 대한 적절한 대가를 받지 못하게 만든다"며 "계약없이 우선 콘텐츠를 공급해야 하는 고질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제작사들은 이 관행이 정상화돼야 콘텐츠에 대한 투자도 확대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읍니다. 콘텐츠 산업은 소위 위험이 큰 산업입니다. 콘텐츠를 공개하기 전까지 이 콘텐츠가 '대박'일지 '쪽박'일지 가늠하기 힘듭니다. 지금처럼 계약없이 콘텐츠를 먼저 공급하면 대규모 투자 계획을 세울 수 없습니다.
콘텐츠 제작사들은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투자를 하고, 방송사업자들은 좋은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해야 합니다. 이런 선순환 경쟁이 만들어져야 K콘텐츠도 더 성장할 수 있습니다. 불합리한 관행은 개선하고, 사업자간 경쟁은 부추켜야 소비자들의 후생도 올라갑니다.
공영방송은 몰라도, 적어도 민영방송들은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도록 해줘야 합니다. 넷플릭스에서 디즈니 콘텐츠가 빠졌다고 나무라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민영방송에서도 사업자간 계약에 따라 특정 채널이 빠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않을까요? 언제까지 투자하지 않는 제작사들까지 끌어안고 가야 할까요? 어쩌면 지금 당장 실시간 방송 채널 몇개가 사라져서 소비자들이 불편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런 선순환 경쟁구조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행인 것은 정부가 각계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선계약 후공급' 원칙을 확정하기로 했다는 점입니다. 원칙을 세웠으니, 빠르게 후속조치에 들어가야 합니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머뭇거릴 이유가 없습니다. 사업자간 자율계약이라는 대원칙 아래, 선계약 후공급을 통해 K콘텐츠에 날개를 달아줘야 합니다. 그래야 K콘텐츠가 우리를 먹여살릴 '제2의 반도체'가 될 수 있을테니까요.
허준 기자 joon@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