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생활 연대기
북경에서 생활한 지 어느덧 7년 차. 시간이 다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버렸는지 모르겠다.
현재 월세로 살고 있는 아파트는 1년 단위로 재계약을 하는데, 얼마 전 5번째 재계약을 마쳤다. 5번째 재계약이라니! 시집도 안 간 서울 처자가 독립 5년 차라니! 대학원 유학생활 2년까지 합치면 벌써 7년 차다.
시간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빠르게 흘러가버렸으나, 사실 7년이라는 시간에 걸맞게 그동안 아주 많은 일이 있었다. 2년 간의 유학생활, 그리고 2번의 이직... 학업과 직업 상에는 여러 변동이 있었으나 나는 여전히 하이뎬의 작은 아파트에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있다. 참, 다음 주 화요일부터 새로 다니게 될 새로운 직장은 저 멀리 순이구에 있지만, 하이뎬구를 드디어 벗어난다는 생각에 새롭고 설렌다.
내가 어쩌다가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지, 어쩌다가 이곳에 남게 되었는지, 왜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았다. 처음 이곳으로 오기로 결정한 것은 당시 중국어에 대한 막연한 로망 때문이었던 것 같다. 대학 시절 영어 말고 다른 새로운 것을 잘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결정한 것이 중국어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당시에는 중국어 붐이 살짝 일었다. '중국어나 베트남어를 잘하면 취업할 때 유리하다'라는 카더라 통신이 돌기도 했었고, 결정적으로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이 중국과도 긴밀히 연계가 되어 있는 일이기도 했기에, 중국어와 중국이라는 나라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당시 아버지께서도 지원을 아끼시지 않으셨다.
2013년, 맨 처음 중국어 공부를 시작하면서는 항상 즐거운 일만 한가득이었다.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새벽 7시까지 강남 파고다 중국어학원에 도착해서 2시간 동안 회화 수업을 듣고, 오전에 집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고 다시 공부할 것을 챙겨서 구립 도서관으로 가서 예습과 복습을 했다. 중국어 학원에서 기초 과정을 끝낸 후 아버지께서 1년간 북경으로 어학연수를 보내주셨는데, 막상 어학연수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이게 장난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2015년, 드디어 한국에서 4년 간의 학사 과정을 마치고 북경에서 석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때 당시엔 2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죽어라 공부해서 나름 중국 학생들과 동일한 정규 석사 과정에 합격했다는 모종의 자부심도 있었고, 뭔가 유학생이라는 새로운 신분이 나를 들뜨게 했다. 곁을 지켜주는 든든한 친구들 덕분에 공부도 타지 생활도 열심히 할 수 있었다.
2017년, 즐거움에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선택이라는 시간이 다가왔다. 막상 한국에 돌아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가 중국어를 잘 하긴 하는 건지, 스스로에 대한 수만 가지 질문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한국에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때의 나에게 왜 중국에 남기로 결정한 것이냐고 묻느냐면, 나는 '두려웠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2017년 7월, 석사 과정 졸업 후 한국에 돌아가기 1-2주일을 앞두고, 한 잡지 회사의 한국어 편집팀에서 연락이 왔다. 바로 나의 첫 번째 직장이다. 첫 몇 개월은 나름 재밌게 잘 다녔다. 학교를 다닐 때 알던 친구들도 몇 명은 아직 베이징에 남아 있었고, 새로운 업무가 나에게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일종의 희망고문을 하며 이상하도록 한가로운 회사에 적응하고 있었다.
무언가 배우기 위해 베이징에 남았지만, 이 회사에서 새롭게 배우는 직업 스킬이라고는 영상 편집과 사진 보정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업무 언어도 중국어보다는 한국어를 주로 사용했기 때문에 중국어는 늘고 있다기보다는 퇴화되고 있었다. 한국에 그냥 바로 돌아갈까도 생각해봤지만, 이왕 시작한 것 지금 그냥 돌아가기에는 억울했다.
2020년, 이직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직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한국인/외국인을 구하는 자리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서류를 보내도 답이 없는 곳도 있었고, 면접 기회를 겨우 얻은 곳에서도 세 번 정도 떨어졌다. 그러다 9월의 어느 날 드디어 기회가 왔다. 한국 기업 한 곳과 중국 기업 한 곳에서 각각 오퍼를 받았다. 고민 끝에, 중국 기업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이왕 중국에 남은 것, 중국 기업에서 일하자.
회사 내 유일한 외국인 직원으로 힘든 일도 많았지만, 그만큼 성장하고 중국 로컬 회사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일들도 많았다. 비록 나는 이번 주까지만 이곳에서 일을 하고 새로운 기업으로 또 이직을 하지만, 이곳에서 일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 후회는 하지 않는다. 배울만큼 배웠고, 경험할 만큼 경험했고, 앞으로 나아갈 때라고 생각이 들어 옮기기로 결정했다.
어쩌다 보니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중국에서의 체류 기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이곳에서 이미 흘러간 시간,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을 통해 더 큰 내가 되어 있길 기대하며 악착같이 조금 더 버텨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