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신동엽, 성시경이 출연한 넷플릭스 예능 시리즈 [성인물 / 네덜란드+독일 편]을 보게 되었다. 대한민국과는 너무나 다른 그들의 성문화를 보며, 문득 젠더 갈등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유럽이 아시아권 나라들보다 개방적인 성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정작 놀라웠던 건 유럽인들의 '성'을 대하는 자세였다.
아마도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대한민국 남성들은 매력적인 여성의 누드(벌거벗은 상태)를 보면 자연스레 성적인 충동이 생길 것이다. 난 지금껏 그것을 당연한 것이라 생각해 왔다. 하지만 누드와 섹스는 별개의 영역이라 말하는 독일의 젊은이들을 보며, 어쩌면 그 말속에 젠더 갈등을 해결할 가장 근본적인 해답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독일의 목욕탕은 대부분 남녀혼탕이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남자와 여자를 굳이 구별하지 않는다. 친구사이인 남자와 여자가 자연스럽게 나체 상태로 목욕을 즐기며 대화하고, 그들 앞으로 지나가는 사람들과도 정답게 인사를 주고받는다. 혹여 친한 친구의 어머니를 만나더라도 달려가 반갑게 포옹하고 안부를 묻는다.
남녀노소가 어떠한 구속도 없이 자유로운 모습이다. 그 속에서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결코 하지 않는다. 타인의 자유를 존중하고 배려해야 나의 자유 또한 존중받을 수 있음을 알고 실천하는 듯하다. 나체의 그 원초적이고 원시적인 모습에서 오히려 평등하고 동등한 인간사회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쩌면 유럽인들은 어린 시절부터 이런 자유분방한 성문화를 통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함으로써 젠더 갈등의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이에 반해 폐쇄적인 우리의 성문화는 어떠한가?
특별한 이유 없이 남탕과 여탕을 구분하여 만 5세가 되면 더 이상 혼욕을 할 수 없게 한다. 비단 목욕 문화만이 아니다. 과거 잘못된 유교적 관습으로 인해 '남녀칠세부동석'이라 하며 7세가 되면 남자와 여자를 엄격하게 구별했다. 현재까지도 '성'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어렸을 때부터 남녀 상호 간 '성'을 감추고 숨기려 하는 문화가 당연시되는 환경 속에서 남자가 여자를 이해하고, 여자가 남자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리 만무하다.
TV나 유튜브 채널에서 젠더 갈등을 주제로 토론하는 영상들을 보면 남녀 상호 간 얼마나 이해가 부족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남성의 성적 메커니즘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여성이 과연 얼마나 될까? 반대로 여성의 성적 메커니즘을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 남성들 또한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나조차도 결혼 10년 차가 되어서야 여성의 성적 메커니즘을 조금 알게 되었을 뿐이다. 이 조차도 아내를 통한 것이 아닌 우연히 보게 된 산부인과 의사의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서였다. 대한민국의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얼마나 모르고, 또 알려고 하지 않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남녀 상호 간 이해가 바탕이 되지 않는 한 젠더갈등을 피할 수 없으며, 그 해답 또한 찾을 수 없다.
사실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남녀의 차별이 심했다. 그 이유 또한 명확하다.
과거 국가의 가장 중요한 산업이 농업이었기 때문이다. 농사를 짓기 위해선 신체적인 능력이 제일 중요했고, 때문에 신체적 능력이 우위에 있는 남성이 여성보다 높은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국가 전체의 운명을 좌우하던 전쟁의 양상도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다. 말을 타고, 활을 쏘고, 칼을 휘둘러야 하는 전쟁터에서 여성이 설 자리는 없었다.
지배층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 일반 백성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도입한 유교 또한 여성이 차별받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더 이상 농업과 같이 신체적 능력을 필요로 하는 산업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산업이 아닐뿐더러 그조차도 다양한 기술과 장비 등의 도입으로 신체적 능력이 크게 중요해지지 않았다.
전쟁도 마찬가지다. 버튼 하나로 미사일을 지구 반대편으로 보내는 세상이니 더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과거 유교적 관습도 시간이 지나면서 시나브로 사라져 가고 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과거의 여성보다 현재 여성의 지위가 시나브로 높아져 왔던 것이다. 인위적인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다. 사회 전반에 걸친 변화를 통해 가장 효율적이고 이상적인 남성과 여성의 권력 비율을 만들어 낸 것이다.
지금 남성과 여성의 물리적 지위가 동등하지 않다면, 그건 대한민국의 전반적인 사회 구조가 아직은 남성의 능력을 더 필요로 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일부 페미니스트나 여성 단체들이 주장하듯 [당장의 역차별을 통해서라도 절대적 평등을 이루겠다]는 생각이 과연 젠더 갈등을 해소하고 대한민국을 가장 이상적인 나라로 만드는 방법인가에 대해선 많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인위적인 방법을 이용하여 억지로 만드는 남녀평등은 반드시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 낼 것이니 말이다.
대한민국은 끊임없이 발전과 퇴보를 거듭하며 변화하고 있다. 그에 따라 남녀 간 힘의 비중 또한 변화할 것이 분명하다. 그리하여 멀리 않은 미래에 분명 여성의 지위가 남성보다 높아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대체 가능한 분야는 분명 남성들의 영역에서 더 많이 존재할 테니 말이다.
이제는 젠더 갈등을 멈추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어린 시절부터 이성 간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성문화를 통해 점진적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환경과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 하며, 남녀 간 사회적 지위의 차이는 남성 또는 여성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 아닌 사회 전반에 걸친 시스템이 만든다는 것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엔 남녀 간 갈등이 아니라 인간과 AI 간 갈등이 시작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를 위해 이제는 남녀가 한 팀이 되어주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