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SOO Oct 30. 2024

열심을 말하는 건 아마추어 ①

20대 후반에 대치동에서 수험생 대상으로 과외 사업을 했습니다. 

강남에서 내로라하는 강사들을 포함해 인턴 등 소속 인원이 14명 정도 되었죠. 소위 일타그룹으로 보통은 팀으로 학생을 맡는 구조였습니다. 어느 날 중계동 쪽 수험생 수업을 맡게 되었어요. 외고를 포함해 중계동 학원가도 꽤나 과열되었을 때라 나름 신규 시장을 튼다 했었죠. 그렇게 맡은 수험생은 이전부터 수학 과외를 받고 있었는데, 제 얘길 듣고 저희 팀에 들어오고 싶어 한다며 어머님을 통해 연락해 왔습니다. 그분은 중학생부터 고3까지 두루 하는 동네 과외 강사였습니다. 


학생이 그 강사를 무척 좋아하고 사적으로도 매우 친밀한 관계였어요. 


그분이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얼마나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애정 있는지, 얼마나 성실한지, 아이들의 성적을 올렸는지 이야기했습니다. 수업료 차이만도 몇 배였으니 본인을 어필하며 팀에 들어오고 싶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어요.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왜 아닌지를 아래와 같이 피드백해드렸어요.


1. 당신이 얼마나 열심인지에 관심이 없다.
    성실은 당연한 거고 열심은 다르다.

2. 당신이 학생에게 얼마나 애정이 있는지에 관심이 없다.
    얼마나 책임감 가지고 아웃풋을 내느냐만 관심이 있다.

3. 막연히 성적을 올려왔다에 관심 없다.
    그래서 얼마나 올려 어느 대학에 보냈느냐에 관심 있다. 

4. 당신이 수업을 얼마나 많이 하고 있는지 관심 없다.
    몇 시간, 몇 회에 얼마 받고 있느냐에 관심 있다.

5. 당신이 학생들에게 열정적이라 몇 시간씩 더 해주고 있는 거에 관심 없다.
    오히려 매우 부정적이다. 고3인데 수학만 공부시킬 거냐.
    정해진 시간 내에 목표했던 진도를 제대로 나가도록 잘 가르쳐야 하고
    다른 시간엔 다른 과목 공부도 하게 해줘야 한다. 당신은 아이의 시간을 뺏고 있다.


전 명문대 출신도 아니고, 당시는 요즘과 달라 대치동에서 주요 교과에 20대 여강사는 희소할 때였어요. 유학파보다 그 과목을 제대로 잘 가르치면 학벌도 크게 개의치 않던 부모님이 많던 시절이었기에 제가 그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초반 진입이 결코 쉽지 않았음에도 수업을 맡게 되고 사업화할 수 있던 비결이 뭐였을까. 

생각해 보면 비결 같은 건 없었어요. 


신입생 시절 수능이 200점 만점일 때 47점인가 맞았던 옆집 재수생을 맡게 되었어요. 첫 만남에서 몇 점 맞냐 물었을 때 40 얼마라길래 "그래, 그럼 다른 과목은?"이라고 되물었던 기억이 나요. (^^)


자기 위안을 위해 뭐라도 시키고 싶어 했던 어머님이 제게 요청해 시작된 수업이었죠. 그땐 참 열심히 하긴 했습니다. 대학입학 후 내 손으로 돈을 번다는 게 설렜고, 딱 내가 잘하던 과목을 가르치면 되었으니 신나기도 했습니다. 언어와 영어를 가르쳤는데 워낙 백지라 간섭 없이 지도할 수도 있었고 어느 순간 이 학생이 문제를 푼다는 느낌을 즐기게 되며 (그전까진 그냥 찍었다고) 공부에 재미를 붙이더군요. 저도 의욕이 넘쳐 서너 시간씩 붙들고 가르쳤고요. 결정적으로 대학에 간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그녀가 캠퍼스커플이 되었단 소식 이후로 독기를 가지고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재수 초기엔 누구도 상상 못 했던 서울 4년제에 합격하는 기적을 보여주었어요.


이 학생의 실연이 결정적인 동기였겠지만 덕분에 어머님 지인들이 절 찾기 시작했고 그렇게 얼떨결에 수험생 전문 과외강사가 되었습니다. 수업은 많아졌고 학생 알바로는 꽤 큰 돈이었지만 아르바이트가 아닌 가계 상황으로 생계수단이 되어 버리며 수업료를 높이고 싶었어요. 잘 가르친다고 담당 학부모님들이 소개하고 있었지만 수업료는 아무래도 제자리였으니까요. 하지만 지인 추천 수업이 많았고 대학생이 하는 동네 과외였기에 가격을 높이는 데에 한계가 있었죠. 내 실력을 보여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걸 했어요. 바로, 담당했던 모든 학생의 매월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아 개별 노트로 만들고 이전달 뭘 틀렸는지 체크한 후 다음 달 그 유형의 문제를 또 틀렸는지 등을 기재해 나갔습니다. 

이 노트가 8권쯤 쌓일 즈음 드디어 대치동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이후 이 방식을 알려주며 동네 과외 강사 몇을 성장시키기도 했습니다. 


가장 유명하다는 논술 강사의 팀에 들어갔는데, 동네에서 좀 한다 자만했던 자신감이 산산조각 나는 경험을 했습니다. 저만큼 치밀하게 학생 성적을 관리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저보다 훨씬 적은 수업 시간과 훨씬 높은 수업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전 제 담당 과목을 훤히 뚫고 있었지만 그분들은 입시 정책부터 대학별 전형을 훤히 보고 있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어느어느 대학 외엔 관심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우린 어디 이하로 안 보낸다, 무조건 여길 보낸다였죠. 가장 충격적인 건 분명 수업료를 받고 선택받는 을입장인데 갑의 입장으로 일하던 모습이었습니다. 수업을 받고 싶어 하는 학부모가 줄을 서 있었지만 정확히 타깃이 아니거나 핏이 맞지 않으면 거절했습니다. 바닥인 성적이어도 보낼 수 있다 하는가 하면 이미 성적이 괜찮아도 안 받기도 하는 등 자기 학생을 선택하더라는 거였죠. 또 하나 배운 건 정해진 시간에 목표한 성적을 내고 그 대학에 보내는 게 레퍼런스가 된다는 걸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려면 본인 수업은 당연하고 그 학생이 어느 대학에 가기 위해 보강해야 하는 과목에 최고 강사를 붙이는 것까지 하고 있었어요. 그게 과외 그룹화의 배경이었죠. 


그리고 몇 년 후 제가 직접 그룹을 만들어 활동하며 어깨너머로 배운 것들을 대표 입장에서 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글 초반 수학 강사에게 했던 피드백입니다. 


제가 동네 과외 강사일 때를 포함해 비슷한 분들 VS. 전문 일타 강사 그룹 양쪽을 경험하고 관찰하며 결정적인 차이가 뭐였냐 하나만 꼽는다면 바로 열심과 성실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 말이죠. 


열심이나 성실이나 그게 그거 아니야라 할 수도 있는데 굳이 구분하는 건 분명 차이가 있어서입니다. 사전적 의미도 있겠지만 제 정의를 더 얹어서 구분하고 있거든요. 그럼 대체 뭐가 다른 걸까요?


2편 보기







매거진의 이전글 혁신의 bottleneck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