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들과 면담하면 하나 같이 일 잘한다, 어떻게든 해낸다는 평가를 받는 A가 있었습니다. 성과를 내기 위해 밀어붙이다 보니 팀원들이 힘들어하고 불만이 많다는 코멘트도 있었지만 상사들은 일을 하다 보면 불가피한 게 아니냐며 별로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죠. 하지만 실제 팀의 분위기는 꽤나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A의 고과는 주니어 시절을 제외하면 과/차장급 내내 S가 대부분이었고 A가 가끔 있는 (고과만 보면) 핵심인재였습니다.
그런데 동료 평가는 완전히 반대였습니다. 팀장은 리더로서의 자질이 턱없이 부족하고 A와 B라는 다른 팀원과만 이야기한다더군요. 문고리 삼인방이란 별칭으로까지 공공연하게 불리던 상황이었습니다.
회사의 메인 비즈니스, 핵심 부서, 핵심 인재인 임원과 리더십은 부족하지만 해당 분야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인 팀장, 그 팀의 핵심인재라 불리는 A. 그러나 최악의 리더십과 조직분위기. A는 정말 좋은 인재일까? 그는 좋은 리더가 될 수 있는가? 리더는 A를 어떻게 성장시키고 조직 차원에서는 어떤 결정을 해야 했을까.
이 팀의 리더십과 조직문화 문제는 꽤 오래 지속되었고 이미 팀장 리더십 문제가 크게 불거져 조사가 진행된 후였습니다. 특히 A에 대한 불만은 극에 달해 있었어요. 팀장과 임원에게 잘 보이는 데에만 집중하고 팀원은 수단으로만 본다는 거였습니다. 심지어 팀원의 성과를 가로채거나 가스라이팅, 모욕적이고 인간적으로 어떤 관심도 보이지 않는 언행을 서슴없이 한다고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실제로도 나서지 않는 팀장 대신 팀의 리더처럼 행동하는 그였습니다. (물론 좋은 리더십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평가와 진급을 담당하던 때입니다.
이 즈음 A는 부장진급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진급심의를 앞두고 고민이 많았죠. 핵심인재 업무도 담당하고 있었는데 이 부문으로 발령받은 초반부터 A를 자세히 알고 있던 건 초반 몇 달간 A의 팀장이 모든 핵심인재 관련한 내용에 A를 추천했기 때문입니다. 교육부터 세미나, 경영진과의 미팅, 팀장 석세서 등 전방위였어요. 그래서 대체 A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하면서 주시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를 진급시키는 게 맞느냐.
파악한 결과 A는 진급은 물론 리더 선임도 안 된다는 결론이었고 이 상황에 대한 팀장, 임원의 리더십에까지 의문을 던지던 중이었어요. 하지만 아무리 역량이니 리더십이니 해도 실제 조직에서 진급을 시킬 때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성과와 고과였죠. 심지어 A의 평균고과는 전사적으로 봐도 승진을 떠나 발탁 승진도 무리 없을 정도였습니다. 다른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죠. 그동안 A를 고평가 한 팀장과 임원의 리더십, 평가의 타당성에도 문제를 제기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해당 임원은 인사와도 매우 호의적인 관계, 저와도 편하게 오랜 기간 보아온 분이었습니다. 그 조직 자체가 회사의 핵심 기술 부서였고 임원도 주목받고 인정받고 계셨죠. 조직 내 미묘한 관계를 포함한 여러 상황이 쉽게 A의 진급 누락을 결정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었어요.
결과적으로 A는 그해 부장 진급에서 누락되었습니다. 일개 인사담당자의 의견으로 판을 바꾼 건 아니에요. 팀장, 임원과 논의가 계속되었고 문제인식은 이미 된 후라 가능했습니다.
그의 진급 소식은 예상보다 더 충격을 주었습니다. 부정적이긴 했어도 그만큼 A의 존재감이 컸고 아무리 불만이 지속되어도 늘 최고 평가를 받아왔기에 팀원들도 놀라워했었죠. 이틀 후 A가 저를 찾아보고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하루 사이에 수척해진 얼굴과 분노, 억울함이 역력한 표정으로요.
"제가 왜 진급되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이 질문에 대한 제 주요 답변은 이랬습니다.
그동안 뛰어난 고과를 받았고, 열심히 해오셨다는 것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그러나 부장이란 언제든 팀장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말은 이제 팀원들을 데리고 성과를 내야 한다는 거고 그러기 위해서는 리더십과 팀원의 리스펙이 매우 중요하다는 거다. 당신은 지금까지 상사들과의 커뮤니케이션만 해왔고 그들의 니즈에만 집중했다. 그 사이 팀원들의 원성이나 불만, 어려움은 외면해 왔다. 그간의 성과를 내는 방식도 팀원들과 함께 일했지만 사실상 개인플레이에 가까웠다. 고과는 성과만으로 커버할 수 있지만 진급은 역량이라는 게 중요하다. 부장의 역량, 부장 진급의 의미를 감안한 결과다.
"조직이란 성과를 내야 하는 곳이고, 성과를 내야 하기에 그 과정에서 악역을 해야 한다. 팀원의 불만이나 어려움을 모르진 않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성과 아닌가. 그게 잘못인가?"
아무리 나쁜 평가를 받는 사람도 한 명은 소위 말하는 심복이 있기 마련이다. 같이 욕을 먹어도 누군가 한 명은 따르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앞선 선임자들의 진급을 수없이 봐왔을 거고 어째서 당신에게만 가혹한가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신과 일하겠다는 그 단 한 명의 팀원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찾지 못했다. 그럼 당신을 진급시켜야 하는가. 일을 하는 과정에서 마냥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모든 부분에 완벽할 수도 없다. 그렇다 해서 성과라는 명목으로 선임사원으로서 프로젝트 리더로서 해야 할 다른 역할을 회피하는 걸 합리화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 그렇게 일해 잘한다 인정받아 왔기에 강화되었고, 지금 이 순간 그래 놓고 그게 문제라 안 된다 하는 걸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당신에게 리더십과 팀이라는 부분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이후 해당 팀장과 임원에게도 피드백을 드렸습니다.
자, 그래서 팀워크가 좋아지고 분위기가 쇄신되었다는 해피엔딩이냐고요?
아니요, 그 이후로도 오랜 기간 팀은 혼란이었어요.
A는 완전히 동기를 잃었고, 그 이후 이전의 추진력을 보이지 못했어요. 스스로 변하기도 어려웠겠지만 이미 뿌리 깊게 박힌 팀원과의 갈등을 극복하기 어려웠죠. 진급 누락으로 "고소하다!" 같은 정서도 있었습니다. 팀장은 매우 뛰어난 스페셜리스트였지만 그것만으로 팀장이 되었다가 실패했죠. 다음 레터에서 다루어지겠지만 성과나 특정 기술만으로 리더에 선임시키는 것의 부작용을 그대로 겪어야 했습니다. 면직 후 전문가로 일하면 되는 거 아니냐 할 수 있지만 그 역시 동기 저하로 2~3년은 뛰어난 능력마저 발휘하지 못했어요. 면직에 대한 불만으로 신규 팀장이나 다른 팀원들에게 협조적이지 않아 한동안 문제가 되기도 했죠.
임원도 리더십에 일정 부분 타격을 받았습니다. 과감하게 결단해 진급시키지 않고 팀장도 면직했다가 아니라 그들을 그렇게 끌어올리고 문제가 되니 지켜주지도 않았단 비판을 들어야 했습니다.
다만 아무리 승승장구해도, 아무리 고과를 잘 받아도 리더십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 진급하지 못할 수도 있다란 사례가 되긴 했어요. 그렇다고 이후에 리더십 이슈가 있는 사람이 진급 못했냐, 아니요. 그래서 HR이나 리더에게 피드백이 달라지고 신뢰가 높아졌냐, 아니요!
한 번 돌아선 마음은 되돌리기 너무나 어렵습니다. 한 번 깨진 신뢰도 마찬가지. 더구나 조직에선 훨씬 어렵습니다. 책이나 강의에서처럼 어떻게 하면 된다가 현실에서 그대로 적용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랬다면 워딩만 조금씩 달라질 뿐 핵심 메시지는 별 차이 없는 리더십이니 피드백 같은 글이 오랜 기간 반복되진 않았을 거예요.
때문에 가장 좋은 방법은 미리미리 주의하고 조심하는 것뿐이에요. 내가 불편한 걸 대신 처리해 주는 팀원이 있는지, 그에게 조직의 불안과 불만을 회피하며 떠맡기고 있지는 않은지, 어느새 권력이 된 팀원은 없는지, 그걸 방치하고 있지는 않은지, 구성원의 불만은 질투인지 상처인지, 현재의 갈등은 개선 가능한지, 변화가 필요하다면 그 방법이 개선인지 혁신인지, 프로세스인지 사람인지 등을 면밀히 나누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적어도 사람과 감정이 엮인 관계 측면에서 볼 때엔 그 출발점엔 '회피'가 있더군요.
몰라서 못하겠냐 하실 수 있어요.
맞아요. 회피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불편한 걸 참기 어려워 회피하게 되는걸요. 나 대신 내가 불편하지만 하고 싶은 걸 처리해 주면 편한 걸요. 결과적으로 일이 되는 게 제일 중요한 걸요. 저의 편향되고 제한된 경험이지만 회피형이 자신을 극복하는 사례를 본 적이 별로 없어요.
다만 내가 회피형이라는 걸 직면하는 것마저 회피해 버리면 답이 없더군요. 그래서 주변에서 상호 솔직한 피드백을 주는 게 중요한 것이고, 자기 인식이 모든 문제의 출발점인 것 같습니다. 상기 사례는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회피했던 크고 작은 이슈들이 모여 결론적으로 모두가 상처 입은 상황이었어요. 팀원과의 갈등을 알지만 일을 해내니 묵인했던 리더, 진정한 A의 성장을 위해 따끔한 피드백과 과감한 챌린지 대신 고과로 보상한 리더, 팀원들이 자길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잘 다독이지 못하는 걸 성과로 합리화하며 다른 의무를 회피했던 A, 팀원들과의 갈등을 상사의 인정으로 덮었던 A, 불만 가득하지만 말해봐야 소용없다, 괜히 말해서 찍히기 싫다로 침묵했던 팀원들, 알고는 있지만 미묘한 관계라며 지나갔던 HR 등.
스스로도 만족스럽지 않은 나의 모습을 직면해 인정하는 것이야 말로 용기가 필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작은 팁이라면 '사람'이 아닌 '문제'로 주어를 바꾸는 걸 작은 실천으로 추천드려 봅니다. 그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뭘 해야 하는가에만 집중하는 연습을 해보시면 어떨까요. 결국 사람으로 귀결되는 일이 흔하지만 그래도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방안에만 집중하려는 의도적 노력이 그나마 가장 해볼 만한 시도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감정으로 흐른 상황은 결국 특정인으로 귀결되곤 합니다.
이때 최소한의 상황 환기 화법은 이런 거죠.
"그렇게 생각하면(특정인) 의미가 없어요. 이 문제를 푸는 데에 뭐가 필요하고 뭐가 필요 없는 지만 우선 이야기해봅시다!"
이 역시 크게 효과가 있냐 하면 그렇진 않습니다. 경험상 아무리 문제해결에 진심이어도 이미 어긋난 감정엔 별 의미가 없더군요. 이때엔 솔직히 떠나거나 떠나보내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안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최대한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무엇이 최선일까. 예방이 최선이라지만 이미 곪을 대로 곪은 갈등의 상황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Q1. 오늘 에피소드의 상황에 여러분은 어떤 솔루션을 제안해 주실 수 있을까요?
Q2. 비슷한 상황을 경험해 보셨다면 솔루션이 아니어도 됩니다, 정답은 없으니까요. 함께 고민할 수 있게 레터 댓글에 공유해 주세요.
Q3. 내가 경험한 조직 내 회피는 어떤 게 있을까요? 그 결과는요? 그 극복 혹은 극복을 위한 노력과 결과는 어떠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