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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일구 Nov 22. 2024

절규와 침묵 사이, 뮌헨의 소리(2/2)

24. 11. 21 조성진, 사이먼 래틀 &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브루크너 9번은 도움(구원)을 청하는 외침이다.(Bruckners neunte ist ein Hilfeschrei)"
-사이먼 래틀(Simon Rattle)-


첫날 들었던 브람스의 음악이 잊히기도 전에, 더 강력한 음악이 밀려들어왔다. 오늘은 안톤 베베른의 6개의 소품,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2번, 그리고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을 들었다.


안톤 베베른의 소품들

안톤 베베른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6개의 소품은 지휘자 래틀과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BRSO)의 음향과 음색을 즐기기에 좋은 곡이었다. 베베른에게도 이 곡은 음향과 음색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각 곡의 길이와 구성은 아주 짧고 간결하지만, 밀도가 높고 깊이가 깊었다. 악상의 대비나 오케스트라가 낼 수 있는 색채감을 편하게 들어볼 수 있었다. 베베른의 6개의 소품은 이날 연주된 브루크너 교향곡 9번으로부터 20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나온 작품이다. 쇤베르크를 비롯한 빈의 작곡가들이 짧은 시간에 얼마나 큰 변화를 맞이했는지도 느낄 수 있었다.


젊은 베토벤과 젊은 피아니스트

출판 순서상 두 번째가 되었지만, 베토벤이 처음 구상하고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이 2번이다. 젊은 베토벤의 순수함, 열망, 고민 등이 담겨 있어서 특히 좋아하는 작품이다. 이 당시에 베토벤은 자신이 음악 역사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칠지 알지 못했다. 그런 베토벤을 음악을 통해 만나는 것도 귀한 경험이다. 3, 4, 5번 피아노 협주곡과 비교해 보면 2번은 특히 소박하다.

이 협주곡은 같은 음이 자주 반복되고, 또 그 음형이 자주 반복되는 편이다.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음악은 BRSO의 연주가 시작되면서 바로 생기를 띄었다. 지휘자와 연주자들이 악보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은 크고 작은 헤어핀(<>, *작은 크레셴도와 작은 디미누엔도가 합쳐진 기호)을 적절히 사용해 프레이징을 했다. 그리고 통통 튀는 리듬과 노래하는 부분의 음색, 악상 대비가 강조되어 잠시도 지루하지 않게 들렸다. 오히려 점점 피아노 연주를 향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빈 필하모닉 연주 때도 그랬지만, 이런 초일류 악단들은 협주곡의 전주만 들어도 좋다.

조성진의 연주는 불과 1년 전과 비교해 보아도 많은 부분에서 발전했다. 그 발전이라는 것이 어떤 테크닉적인 측면이 아니라, 오케스트라와의 여유로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돋보였다. 1악장부터 오케스트라의 다채로운 음색을 그대로 이어받아 연주하고, 다시 새로운 아이디어를 오케스트라에 던져주기도 했다. 베토벤의 고백처럼 들리는 2악장 역시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연주를 주고받을 때마다 감동적으로 피어났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극도로 작은 피아니시모로 대화하는 부분은 압권이었다. 이때 조성진이 낸 피아노의 음색은 아주 맑은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듯했고, 오케스트라 현악기의 음색은 물방울 옆으로 퍼져나가는 물결처럼 들렸다. 3악장의 템포는 어떤 연주자보다 빠르지만 결코 급하게 들리지 않았다. 또렷한 아티큘레이션으로 연주하여 모든 소리가 명확하게 들렸다. 중간중간 루바토 몇 번이 유머러스하게 돋보였고, 반복되는 음형에서는 꾸밈음을 넣기도 했다. 재치 있는 당김음 연주는 과하게 드러내지 않고도 분명하게 전달되었다. 음악과 연주자가 그야말로 찰떡이었다.


조성진의 앙코르

어제는 깊은 감정과 복잡한 구조를 지닌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뒤에 가장 소박한 곡인 슈만의 ‘고독한 꽃’을 연주했다. 마치 얽혀 있던 감정을 살짝 풀어주는 듯 했다. 반대로 오늘은 소박하고 간결한 구조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뒤에 가장 복잡한 감정을 담고 있는 슈만의 ‘왜?’를 선택했다.

슈만의 ‘왜?’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음악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의문을 더 깊고 복잡하게 만들며 곡을 마무리한다. 똑 떨어지게 끝나는 듯했던 1부는 이 슈만의 심오한 질문으로 마무리되었고, 이는 복합미가 넘치는 브루크너 교향곡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절규와 침묵 사이

리뷰 처음에 언급한 이야기는 11월 13일 뮌헨에서 이루어진 인터뷰에서 사이먼 래틀이 한 말이다. 래틀에 의하면 브루크너 교향곡의 3악장에서는 12개의 반음 중 10개가 동시에 울린다고 한다. 래틀은 이 극도의 불협화음을 '절규'라고 보고 있다. 인생의 마지막에 다다른 브루크너가 도움 또는 구원을 향해 외치는 것이다.

2012년 발표했던 래틀과 베를린 필하모닉의 브루크너 9번의 연주와 음반은 오랜만에 브루크네리안들을 자극했었다. 실연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내가 들은 브루크너 9번 중 최고였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1, 2, 3악장의 해석은 물론 4악장까지 완성했던 이 연주와 음반은 좋든 싫든 역사에 계속해서 남아있을 것이다.

10년을 더 묵힌 래틀의 해석, 세계적인 단원 개개인의 엄청난 능력, 마리스 얀손스가 만들어놓은 BRSO의 사운드가 롯데콘서트홀 중앙 어딘가에서 만난 것이 이날의 연주였다. 나는 이럴 때는 개개인의 호불호는 잠시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단은 내 머릿속의 음악을 깨끗이 지우고 현장에서 울리는 음악을 온전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무대 위에서 몸을 아끼지 않고 음악을 만들고 있는 음악가들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도 이롭다.

먼저 BRSO 단원들의 에티튜드가 놀라웠다. 베베른, 베토벤에서도 모든 음에 주의를 기울였다. 시종일관 내 소리는 물론 다른 악기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앙상블을 해나갔다. 현악기들은 수시로 활과 현을 면밀히 체크했고, 관악기 주자들은 피스, 리드를 수시로 들어다 봤으며, 팀파니는 음정체크를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했다. 다시 말해, 모두가 연주를 하거나 다음 연주를 준비했다. 이런 준비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는 대단했다. 음색의 가짓수가 끝이 없었다. 악상도 분명했고 표현도 다채로웠다. 전체적으로는 모나지 않고 따뜻하고 풍성한 소리를 냈다.

1악장에서부터 종교적인 경건함과 브루크너의 논리정연함보다는 브루크너의 절절한 마음이 많이 느껴졌다. 각 악기 소리마다 배음이 풍부했다. 특히 저음 현악기와 호른의 사운드는 명불허전이었다. 전체가 어우러질 때는 내성을 풍부하게 연주하면서 복잡한 심리상태나 불협화음이 더 잘 드러났다. 래틀의 기존 해석보다 조금은 더 여유 있는 템포로 느껴졌다. 2악장 스케르초는 공포심을 자극하기보다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현악기의 피치카토와 여린 소리들이 들릴 때마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모두가 기다리는 포르티시모 부분. 현악기가 단체로 힘을 모아 다운보우 폭탄을 떨어뜨릴 때 브루크너의 고통이 너무나 잘 표현됐다. 이 파트는 반복될 때마다 조금씩은 무게감을 더해갔다. 그러나 필요 이상으로 음을 짓누르거나 무겁게 하지는 않았다. 자연스러운 곡의 일부처럼 처리했다. 극도의 피아니시모를 낼 줄 아는 악단이기에 이걸로 충분했다.

3악장은 어떻게 보면 전체가 브루크너라는 작곡가의 마지막 일기를 들춰보는 것 같은 곡이다. '삶과의 이별'이라는 주제가 가슴 깊이 들어왔다. 유독 현악기의 상승 선율들이 멘델스존이나 바그너의 드레스덴 아멘처럼 들려오면서 기도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다. 바그너 튜바는 너무나 수준 높은 사운드로 연주되어 3악장 전체에 깊이를 더했다. 곡은 점차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고 마침내 5분의 4 지점에 다다르면 사이먼 래틀이 언급한 '절규'가 등장한다. 모든 악기가 서로 부딪히면서 불협화음을 냈다. 이후에 이어지는 침묵. 관객들은 이 침묵을 지켜주었다. 현악기의 트렘몰로, 밝은 음색의 목관악기, 웅장한 금관악기의 음색이 다시 한번 합쳐지고 음악은 마치 하늘로 올라가 버리듯 마무리되었다. 박수가 터지지 않고, 긴 침묵이 이어졌다. 사이먼 래틀은 뮌헨 연주에서보다 최소한 2배는 길게 여운을 즐겼고, 관객들은 함께 그 공기를 누렸다. 앙코르는 없었다. 없어야 했다.


래틀과 BRSO 조합

이 조합을 꼭 라이브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정말 특별하고 대단한 연주였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신뢰하고 있다는 것은 거의 매 순간 느껴졌다. 래틀은 오랜 시간 마리스 얀손스가 가꾸어 놓은 이들의 음악을 최대한 계승하고 배려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섞는 것 같았다. BRSO는 얀손스를 떠나보낸 후, 새로운 리더를 찾는 동안 약 3년 정도의 공백기를 겪었다. 수많은 지휘자와 협업했지만 묵묵히 기다렸고, 결국 선택한 지휘자가 사이먼 래틀이다. 영국의 런던에서 커리어를 마무리할 것 같았던 래틀은 또다시 독일의 최고 악단으로 돌아왔다. 보통 지휘자의 전성기를 70세로 보기도 한다. 실제 역사 속 지휘자들이 그랬던 경우가 많았다. 내년에 70세를 맞는 사이먼 래틀은 BRSO와 뮌헨에서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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