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꼬마마녀 Jan 26. 2021

가장 정직한 깍두기

아삭아삭 깍두기


  시계의 시침과 분침은 맞물려 돌아가며, 매 시간마다 초, 분, 시 단위로 시간을 축적한다. 김치의 단면에는 어떤 시간이 축적되어 있을까?     


   “엄마, 깍두기 얼마나 절이면 돼? 절이는 시간 알려줘”라며, 신혼 시절 엄마에게 맛김치와 깍두기를 할 때 전화를 했다. 결혼 전, 친정에서 엄마랑 같이 김장을 해봐서, 김치를 하는 순서, 들어가는 양념을 알고 있지만, 배추나 무의 양에 따라 소금에 절이는 시간, 양념 배합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결혼 후 시댁에서 김치를 가져다 먹었지만, 마법 가루라 불리는 미*을 듬뿍 뿌린 시어머니의 김치는 그림의 떡이었고, 이미 살짝 익은 상태로 오는 경우도 있어서 생김치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익은 김치의 잔반 처리는 매번 밀려오는 숙제 같았다. 그 후 평상시는 나만의 김치를 조금씩 담가 먹었고, 김장은 매해 100포기씩 하는 시댁 행사에 참여해서 2통의 김치를 갖다 먹었다. 몇 년 전부터 신랑의 5형제 김장은 각자도생을 시작했으나, 가끔은 형제끼리 모여서 하는 경우도 있었다. 작년에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며, 이제는 진정한 각자도생의 길로 들어섰다. 식사 후 마시는 커피 한잔의 여유처럼, 오로지 나만의 개인 취향을 존중한 김치를 하며, 지금은 마음껏 My Way를 외치곤 한다.     


   다른 요리를 잘하는 사람도 김치에 쉽게 접근 못할 수도 있다. 다른 음식에 비해 여러 변수를 고려해야 김치는 높은 레벨의 음식이다. 그런데도 어머니가 김치하는 모습을 보면,  소금도 대충, 양념도 대충 하는 듯한데,  어머니의 손맛까지 어려서 어디서 흉내 낼 수 없는 시그니처가 되곤 한다. 어머니의 오랜 손맛 김치와 요린이(요리 어린이)의 김치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어떤 차이가 있어서 김치는 쉽게 접근 못하는 미지의 영역이 되는 것일까? 김치의 변수 첫 번째는 절여지는 시간과 짠맛의 상관관계이며, 두 번째는 섞인 양념의 비율의 조합에 따라 달라진다. 이는 과학자의 연구와 유사하다. 과학자가 어떤 연구에 대한 기초를 다지고, 변수에 따른 여러 가설을 세우고 그에 따른 단계별 연구를 하며 하나씩 결론을 내는 것과 같다. 어머니의 손맛에는 고춧가루의 종류와 양, 재료 상태, 사용하는 젓갈의 종류와 양, 들어가는 부재료를 잘 버무려 시간에 단면을 제공하였고, 어머니도 오래전 요린이로부터 조금씩 벗어나며 어머니 손맛이라는 데이터를  구축하였다.     


  이제 김치의 변수를 하나하나 살펴보자. 가끔 김치를 하다 보면, 평상시와 달라진 것은 없는데, 김치가 물러지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소금이나 배추·무 상태 때문이다. 염전에서 구매한 소금도 간수를 빼주는 것이 좋으며, 좋은 소금을 사용하는 것이 1차로 김치 맛을 좌우한다.  2번째는 김치를 담글 때 각 재료의 상태와 조합에 따라 달라진다. 아무 때나 살 수 있는 배추·무도 계절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고, 고춧가루의 보관 방법, 상태, 기간에 따라 약간 다른 맛이나 명도가 나며, 밀가루 풀이나 찹쌀풀의 사용 유무에 따라서 김치 맛도 조금씩 달라진다. 그 외에도 쪽파나 대파의 사용, 액젓의 종류에 따라서도 김치 맛은 미묘하게 달라진다. 새우젓은 대체로 시원한 맛, 멸치나 까나리 액젓은 약간은 담백한 맛이 난다. 이런 변수의 조합이기에, 김치는 가끔 미지의 영역이 되곤 한다. 현재 나의 김치 사전에는 이런 데이터가 저장되어 있고, 그때마다 필요한 자료만 뽑아 조합을 한다.


  이제 아삭아삭하는 깍두기를 담가보자. 아직은 겨울 무가 단맛을 품고 있고, 겨울 무의 단맛에 뉴슈가를 이용하면, 아삭 거리는 깍두기를 담글 수 있어서 설렁탕 집의 깍두기 맛이 부럽지 않다.      


아삭 거리는 깍두기      

무 1과 2/3 개 이상, 굵은소금 3숟가락, 뉴슈거 1숟가락, 간 마늘 3숟가락, 고춧가루 9숟가락, 새우젓 2숟가락, 까나리 액젓 6숟가락, 대파 1, 5개(쪽파로 대체 가능), 밀가루 1숟가락, 양파 1개, 홍고추 3개


1) 무 껍질을 벗겨, 깍두기 모양으로 썰어주세요. 이때 무는 가로, 세로 1.5cm 정도로 고르게 썰어주세요. 균일하게 썰어놓으면, 간이 고르게 스며들어요.


왼쪽은 깍두기 모양으로 썬 무, 오른쪽은 굵은소금 한 스푼



2) 잘게 썬 무에 굵은소금 3숟가락, 뉴슈거 1숟가락을 잘 섞어주세요. 이때 뉴슈거 1숟가락, 굵은소금 2숟가락을 먼저 넣고, 굵은소금 1숟가락 부분은 가감을 해주세요. 이때 굵은소금은 간수가 얼마나 빠졌나에 따라 소금의 짠맛이 달라져요.(굵은소금 맛을 보시고, 짠맛이 많으면 굵은소금 2숟가락만 사용해 주세요. 무의 소금 간을 싱겁게 했을 경우, 양념 버무릴 시 굵은소금을 추가해서 간을 맞출 수도 있어요.)

3) 굵은소금과 뉴슈거에 절인 무는 1시간 정도 절여주세요. 휴대전화로 30분 타이머를 맞추어 놓고, 30분 지나면 위·아래를 바꾸고, 다시 30분 동안 절여 주세요. 소금에 절였던 무가 잘 절여졌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네모반듯한 정육면체 모양이 아닌 무를 휘어봤을 때 휘어지면 잘 절인 것이라고 보시면 돼요.    

 

* 깍두기 할 때 중요한 것은 처음 무를 소금에 절일 때 소금 간을 잘 맞추어야 하고, 두 번째는 양념할 때 간을 잘 맞추어야 해요.      


밀가루 풀 쑤기



4) 깍두기가 소금에 절여질 동안, 깍두기 국물을 맛있게 하기 위해서 물 200mL에 밀가루 1숟가락 정도를 풀은 후 덩어리 지지 않게 잘 저어주며 끓여주세요. 어느 정도 밀가루 풀이 다 됐으면 식혀주세요.

5) 무를 절인 지 1시간이 지났으면, 물에 잘 씻어 바구니에 건진 후 30분 정도 물기를 빼주세요.

6) 무에서 소금물을 빠지는 동안, 양념을 잘 섞어주세요. 식힌 밀가루 풀과 고춧가루 4숟가락, 잘게 썬 파, 새우젓 한 숟가락, 간 마늘 3숟가락, 까나리 액젓 3숟가락 정도를 잘 섞어주세요


밀가루 풀에 양념을 섞을 때는 깍두기에 필요한 양념의 반만 섞어주세요. 김치 레시피를 따라 할 때는 해당 레시피의 반 정도를 따라 한 후, 조금씩 간을 보며 양념을 추가하세요. 집마다 원하는 간 맛이 다르고, 사용하는 양념에 따라 짠맛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7) 이제 소금물을 뺀 무를 양념에 섞어주세요. 김치에는 쪽파를 사용하는 것이 더 맛있는데, 쪽파 대신 대파를 사용하셔도 돼요. 쪽파가 있으신 분은 쪽파로 하세요.

8) 양파 한 개와 홍고추 3개를 믹서기에 갈아서 깍두기 양념에 잘 섞어주세요. 양파는 단맛을 내고, 홍고추는 약간의 매콤함을 줘요.

10) 새우젓과 까나리 액젓을 잘 섞어주세요. 새우젓은 김치 맛을 시원하게 해 주고, 까나리 액젓은 구수한 맛을 내요. 까나리 액젓 대신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멸치 액젓도 있어요.      


예전에는 김치 할 때 멸치 액젓이나 까나리 액젓만 사용했는데, 새우젓이 김치가 시원하게 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되어, 지금은 섞어 사용하고 있어요.      


이제 깍두기 색깔을 볼까요?      

맛나게 잘 된 것 같아요. 거실 한쪽에 두면, 2일 정도 되면, 맛나게 익어요. 2일 정도 지난 뒤 깍두기는 어떻게 됐을까요?


아삭 거리는 깍두기



 아삭아삭 맛있는 깍두기가 되었어요.

   아삭아삭

        아삭아삭

             아삭아삭


아삭 아삭이 입에 내려요~


  하늘에서 별빛이 내려오는 것처럼, 아삭아삭 깍두기와 따듯한 국만 있으면, 겨우내 마실 나갔던 입맛도 다시 돌아와요. 깍두기를 아삭하게 즐기다가, 깍두기가 많이 익어지면 청국장에 응용해서 색다른 맛의 청국장도 즐기세요. 청국장을 좋아하는 신랑은 청국장 해먹을 생각에 깍두기를 작은 통에 담아 일부러 더 익히기도 해요. 오늘은 신랑이 더 익힌 깍두기로 청국장을 끓여주기도 했어요. 온 집안 가득 푹 익은 깍두기와 청국장 냄새가 아련히 퍼졌어요.     


  라듐을 발견한 퀴리 부인의 노벨상에만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노벨상에 축적된 측면도 봐야 한다. 퀴리 부인의 라듐처럼 엄마의 손맛에도 시간은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있고, 거기에 ‘엄마의 사랑’이라는 마법 가루도 살포시 토핑 되어 있기에, 우린 때론 엄마의 손맛에 시린 가슴도 흘려보내곤 한다. 그러나 요린이가(요리 어린이) 엄마의 손맛에 주눅 들어 ‘이번 생에 요리는 글렀어’라고 단정 지으며, 맛없는 깍두기를 하는 현재의 사실에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한 번은 깍두기, 한 번은 생채, 한 번은 맛김치 순으로 시간을 잘 버무려 한 계단씩 올라가다 보면, 김치의 측면은 풍성한 볼륨을 갖게 되어서 나만의 시그니처를 형성할 수도 있다. 아삭 거리는 깍두기처럼 오늘 나 자신도 아삭거려보면 좋지 않을까?

오늘도 아삭아삭~     


마트에 무나 사러 갈까?

매거진의 이전글 단짠의 조화인 동치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