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戀愛談]을 시작하겠다는 선언문
연애. 연애란 무엇인가.
한자를 풀이하면 그리워하고 [戀], 애정하는 [愛] 행위입니다.
누군가는 연애를 그저 즐거움을 쌓는, 가벼운 행위라 말하고.
뭐, 결혼하재요? 연애만 하자구요, 연애만.
연애가 다른게 아니에요. 좋고 끌리는 사람들끼리 즐거운 시간 쌓는게 연애에요.
- 영화 <연애의 목적>
어느 누군가는 연애를 '인생의 비밀을 여는 열쇠'라 찬양하기도 합니다.
연애는 인생의 비약秘鑰이다.
연애가 있음에 인생이 있지, 연애를 빼놓는다면 인생에 무슨 낙이 있으랴!
- 기타무라 도코쿠, 염세시인과 여성, 《女學雜誌》 1892년 2월호.
연애를 하면, 날아오른다는 누군가도 있습니다.
나는 날아 날아 올라 그대와 함께 있을 때면 alright 정말 좋은 것 같아
사람 일이란 것을 이 세상 어느 누가 알겠어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겠지
우리가 이 다음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나는 다시 태어난 듯한 느낌야
- 김현철, <연애>
연애. 연애란 무엇일까요. 저는 연애를 참 좋아합니다. 사랑하는 서로가 만나 그토록 애닲더니 헤어지면 평생에 보이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정말 재미있거든요. 지난 남자 친구 중에 신촌에서 자주 데이트하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좋지 못하게 헤어지고 나서 한 2년 반 지났었던가요, 어느 겨울 친한 친구와 노래방에 갔는데 “신촌을 못 가”라는 노래가 있더군요. 시작이 이렇더랍니다.
신촌을 못 가, 한 번을 못 가, 혹시 너와 마주칠까 봐.
한 소절 나오자마자 펑펑 울었습니다. 정말 못 가고 있었거든요. 신촌에.
마주치는 게 너무 무서웠습니다. 잘 지내든 아니든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아는 척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 고민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그 친구와 만나지 말아야만 했던 결정적인 사항은 아니었어요. 그냥 마주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마주쳤을 때, 억울하게도 생생한 사거리의 포장마차, 함께 공부하던 도서관, 고시원 근처의 파전집. 그리고 그때의 너와 내가 떠오르는 것이 두려웠어요.
그렇다고 마주치고 싶지 않기만 한 건 또 아녔습니다. 마주쳤을 때의 그 휘몰아치는 감정에 휩쓸리고 싶다는 생각도 해봤어요. 영어 공부나 할 것이지 왜 베트남 출신 이민자 2세인 그녀에게 'oppa'를 가르치고 놀아야 했는지 한번 들어나 보고도 싶었습니다. 솔직히 서로의 삶에 섞여 들어가기 참 미숙했던 시절이 후회될 때도 있었기에, 조금은 더 나아진 그때 - 그래봤자...^^ - 의 나를 보여주고 싶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다시 만나면, 그것은 운명일까? 드라마 주인공을 꿈꾸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마주치고 싶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학연수 중에 바람이 난 그 친구에게, 그때와는 다를 거라며 거짓으로 위안하고 또다시 감정을 준다면 그 이후의 나는 얼마나 불안하고 답답할까. 나를 반대했다던 그 친구의 어머니에게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 그 지난한 일들은 나의 자존감을 얼마나 갉아먹게 될까. 이십대 중반 너와 나만 있으면 되었던 우리와는 달라지게 된 곧 삼십대의 우리가, 함께 한다 하던들 얼마나 행복할까. 헤어진 우리는 모두 우리가 헤어진 이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시 만났을 때 해결될 리 만무하다는 것도요.
여기까지 생각이 닿게 되면, 그러니까 다시 마주친다는 것은 다시 만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이 썩어빠진 정신 상태를 확인하고 나면. 마음이 정말 복잡해지더군요. 나는 아직도 저 친구를 못 잊은 건가 싶고. 정말 마주칠까 봐 무서운 건지, 아니면 마주쳤을 때 혼란스러울 내가 우려스러운 건지. 이쯤 되면 불쌍합니다. 2년 반이 지났는데도, 꾸준히 생각했어요. 신촌을 그래서 못 갔어요.
그래요. 이런 게 참 재미있습니다. 연애는 나를 황홀하게도, 고통스럽게도, 연민하게도 해요. 그러고 나서 그다음 주였나? 소개팅하겠다고 신촌에 결국 간 것도 코미디예요. 세상에. 꽤 마음에 들었던 훤칠한 소개남 옆에서 걸으면서, 어라? 마주쳤으면 좋겠다- 생각한 건 더 웃기지요. 괜찮았거든요. 감색 코트핏이 참 좋았던 소개남. 애프터가 없길래 용기 내어 “날씨가 춥네요. 감기 조심해요.” 문자도 먼저 했는데, 끝까지 1이 사라지지 않아 참 아련했던(?) 그와의 짧은 추억. 그것도 연애라면 연애입니다.
저는 연애를 참 좋아합니다.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더 좋아합니다. 서로에게 바닥을 내 보이는 관계, 어디 흔하나요. 인간이 맺을 수 있는 관계 중에 가장 다이내믹하고, 그렇기에 배울 점이 어마무시하게 많다고 생각합니다. 연애만이 가르쳐주는 것도 상당하고요. 그러니 연애를 이야기하는 것은 참으로 자극적일 수밖에 없고, 한때는 연애 카운슬러를 자처하며 그런 대화를 나누는 것에 중독 아닌 중독이 되기도 했더랍니다.
허나, 지금은 그러지를 못해요. 제게는 사랑하는 남편과 돌도 안된 아기가 함께 하는 안정된 삶에서의 역할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나이쯤 되니, 연애에 관해 나와 ‘조금은 새빨간’ 이야기를 나눌 친구도 찾기 어렵습니다. 다들 저처럼 가족 안에서 평안하고. 네 우리 모두 그 품의 따듯함을 알기에, 실수하지 않으려는 것이겠지요.
만.
선생님들. 저는 연애를 좋아합니다. 연애 이야기는 낭만과 저질의 활화산이고, 혐오와 애틋함의 생동함이며, 환희와 지루함, 관습적이다가도 생경한. 무려 역사를 빚고 바꿔온 드라마의 복합체라고요. 온갖 감정이 착종된 이 “연애”란 얼마나 대단한가요! 나불대고 싶습니다. 다들 그러지 않습니까? 그러니 다들 '나는 솔로'보고 '환승연애'에 과몰입하고 솔로지옥에 빠지는 거 아녔어요?
그리하여,
저는 임금님 당나귀 귀 심정으로다가, 이곳에 연애 이야기를 좀 쏟아보고자 합니다. 다루는 연애들은 근현대 역사 속에서부터 오늘 내 주변에 이르기까지 광범하게 건드려질 것 같아요. 말그대로 제가 늘어놓고 싶어서 하는거라서요. 아, 여기서 말하는 연애는 ‘사랑’과는 다를 것 같습니다. 개념 범주를 굳이 한정하자면 근대 이후로 생성된 戀愛를 대상으로 합니다. 콘셉트는 “남편에게 들키면 좋을 것 없는” “나의 자녀에게는 영 보여주고 싶지 않은” “굳이 엄마와는 딱히 하지 않는” 우리네 연애썰로 하려고요. ㅎㅎ
그리하여 제목은 [조선의 연애談] 이려나 봅니다. 잘 한번 정리해서 가져와볼게요. 앞으로 함구 잘 부탁드립니다. 가족이 알면 조금 곤란하거든요. ㅋㅋ 하고픈 이야기가 생길 때마다 뵙겠습니다. 연애!
아아, 사람의 영혼과 신체에 혁명을 부여하는 연애여!
취미와 상상의 새 경지를 개척하는 연애여!
영웅을 만들고 호걸을 만드는 연애여!
가정을 꾸리게 하고 나라를 굳건하게 하는 연애여!
나는 위대한 시인이 나와 그대들을 폄하한 수많은 소인배들의 눈을 번쩍 뜨게 해 주길 바라노라.
- 愛山生, 연애의 철학, 《女學雜誌》 1890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