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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May 23. 2024

시작이 필요한 당신에게

내가 엄마와 함께 에세이북을 출간하게 된 이유



또 또 시작이다. 마감 전날까지 어디론가 도피하는 못된 습관. 어제는 대구살로 만든 이유식이 도피처였다. 오트밀과 쌀을 섞어 미음도 12개나 만들어냈는데, 질감이 너무 없어 중기 이유식으로는 실패였다. 여하튼 그래서 밤 11시가 넘어서야 글쓰기를 시작했다. 오늘 저녁 6시에 마감일 에세이 원고(정확히는 오늘 밤 9시까지였으나)이고, 아마도 마감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올수록 나는 도대체 나는 왜 이 모양이냐ㅠ 하며 울고 있을 거다. 



엄마와 나, 우리는 책을 쓰고 있다. 책 쓰기의 결정적인 계기를 찾자면 20대 어느 날이었다. 전날 술자리가 거나하게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술을 마시면 꼭 새벽에 깨더라. 온몸을 망치로 두들겨 맞은 것 같은 근육통과 함께. 그날도 새벽 4시에 눈을 떠서는, 매스껍고 불편한 기분으로 물을 마시려고 몸을 일으켜 방문을 열었다. 하도 게워 힘이 없어 그런지 약하게 달칵, 열었다기보다는 밀린 문으로 만들어진 좁은 틈새에 엄마가 보였다. 엄마는 식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다리 한쪽을 올리고 괸 팔에 몸을 기대서는, 책을 읽을 때만 쓰는 뿔테 안경 너머로 한 장 한 줄을 눈에 담고 있었다. 빤히 보다가, 술기운이 돌았는지 갑자기 울컥해서 엄마 앞에 나섰다. 엄마의 눈이 동그래졌다. 



“엄마, 엄마는 이렇게 열심히 사는 멋진 사람인데. 우리 키우느라 병원 관두고 집에만 있던 거 너무 불행하지 않았어?”



엄마는 놀라서 한참 보다가. 생각을 정돈하는 듯하더니.



“네가 뭔데 엄마가 살아온 삶을 불행하다 말하니.”



라 했다. 우리 엄마는 59년생, 돼지띠로 그 시절 서울대 간호학과를 나와 서울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였다. 아빠와 결혼하고 둘째가 생기면서 엄마는 병원을 그만두었다. 우리는 엄마 품에 컸고, 덕분에 외롭지 않았겠지만, 나는 꼴에 신세대(!) 여성이라고 머리가 크면 클수록 건방져져서는, 난 내가 너무 소중해서 ‘희생하는 엄마’처럼은 못 살아, 이야기하고 다녔다. 



“함부로 말하지 마.” 



우성아파트 8층 5호, 엄마가 진하게 탄 맥심 알 커피향이 가득했던, 약간은 어두운 그 식탁 곁. 엄마의 낮은 목소리만 울렸던 지금도 생생한 그날 거기. 그러니까 그 상황은, 스물 너덧의 나이보다 훨씬 경솔한 송수연이라는 철부지 인간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엄마의 인생을 그것도 엄마 앞에서 대놓고 폄하한 것으로, 우두커니 섰던 나는 얼굴이 뜨끈하게 빨개진다는 것이 뭔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엄마는 곧 웃었지만, 나는 속에 빚진 마음이 생겼다. 대학까지 보내놓은 철없는 딸내미에게 엄마가 받았을 상처에 대한 빚. 그래서 그때 결심했다. 엄마의 이야기를 세상에 꼭 내놓게 하자고. 글이든 책이든 영상이든 그림이든 좋으니까. 은퇴한 지금도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외국어 공부와 독서를 열심히 하는, 그러다 가족이 깨어난 아침부터는 집안의 ‘엄마’로 평생을 살아온, 하루도 빼먹지 않는 꾸준한 운동과 가벼운 몸을 위해 저녁을 먹지 않아 건강하게 늘씬한, 아이들 때문에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해야 했지만 ‘절대 불행하지 않았던’ 우리, 정말 멋진, 사랑하는 우리 엄마. 그런 엄마를 빚어온 그 귀한 삶을 그려내서, 존경하는 우리 엄마를 세상에 반드시 남기도록 해야겠다 했다. 



그게 벌써 십수 년 전. 마음 한쪽에 차곡히 쌓았다. 엄마에게 부담되지 않게, 내가 엄마를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써보면 어떨지 하다보니 여기까지 밀려왔다. 순전히 내 역량이 부족하다는 생각 때문이 컸다. 그러다 작년 시헌이와 함께 있는 엄마의 어깨를 보다가, 문득. 더 늦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혹시 나와 책을 써보시지 않겠냐, 툭 나왔다. 투고하기에는 큰일이 되어 부담스러워하실 것인지라, 미리 봐뒀던 ‘글ego’라는 책 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하자고 권했다. 공저의 POD 형식으로 출판되는 것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하지만 엄마와 나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함께 가져보자고 이야기했다. 



엄마는 주저하시다가, 사실 해보고 싶었다며 용기를 내어주었다. 그렇게 얼마간 꼬박 쓴 열 몇 페이지들이 엮여 곧 출간될 책에 실리게 된다. 엄마와 나를 포함해 8명이 함께 쓴 책, 공저자들의 글이 우연찮게 모두 ‘시작’과 관련되어 있다는 통찰에 <시작이 필요한 당신에게>라는 제목이 붙었다. 나는 나의 ‘좋을 나이, 마흔’을 앓으면서 드는 생각들을, 엄마는 ‘더 작은 행복을 위해’ 자신의 값진 새벽과 그 의미를 생성해 온 삶을 진솔하게 풀었다. 누구는 소설을, 어느 사람은 수필을 썼다.



책을 쓰는 기간 동안 엄마와 나는 특히 엄마의 글이 담아낸 ‘엄마’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다. 그 시절 작은 소녀 ‘오경애’란 친구가 어찌나 사랑스럽고 기특하고 안타깝고 안아주고 싶은지! 시작은 엄마의 자아실현이었고 굳이 어데 읽히지 않아도 좋겠다 했었는데, 막상 생각한 것 이상으로 흡인력 있는 엄마의 이야기를 보니 책이 나오면 여기저기 보여드려야지 싶어진다. 우리들이 아닌 다른 공저자들의 필력도 상당해서, 읽는 재미가 있을 거다. 



어쨌든 나도 한 꼭지를 맡아 쓰고 있고, 내일 제출해야 할 원고가 바로 이 글이다. 자꾸 마감이 닥쳐야 시작하는 이 모지리같은 습관에 우는소리를 하긴 했지만, 사실 요즘 이 글을 통해 글쓰기로 치유받는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느낀다. 나의 글은 마흔에 들어섰지만 마흔이 아니게 된 나를, 그리고 나의 스물, 서른, 또 오늘을 토닥여주고 있다. 에세이란 이런 힘이 있는 장르구나, 따스하고, 또 고맙다.



아무튼 오늘 아니 내가 왜 또 그랬지 울지언정, 지금의 감정을(이놈의 새벽 감성..) SNS 피드에 남기고 싶었다. ㅋㅋ 나도 사실 책이 언제 나오는 건지 모르겠지만, 꾸준히 과정을 공유할 테니 관심 있으신 분들, 서점에서 책과 마주치는 분들, 다양한 ‘시작’을 읽어보고픈 분들은 한번 보아주십사- 하는 바람도 있다. ㅎㅎ



2월 말 올렸던 피드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작업했던 에세이집이 이제 서점에 등록되어 브런치에도 글을 한번 올려본다. 


알라딘 http://aladin.kr/p/9qfdL

yes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26340763

교보문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3175153


아래는 내가 저자들을 대표해 쓴 서문이다. 저자들 에세이의 제목을 활용해서 서문을 작성했다.




저희 집에는 아직 돌이 채 안 된 토끼띠 아이가 있습니다. 그가 세상에 처음으로 나선 날 우리는 그의 시작을 함께할 수 있어 기뻐했습니다. 처음으로 소리내 웃던 날, 배밀이를 하기 시작한 날, 아마도 걷고 말을 할 또다른 시작까지, 우리는 마음을 다해 축하하고 그에게 열렬한 응원을 보냅니다.



우리 모두는 찬란하든 사소하든 ‘시작’의 경험이 있습니다. 어제의 시작이 오늘을 만들었지요. 내일을 향해 살아가다 보면 여러 번의 시작을 만나게 됩니다. 아이와 달리 어른에게는 다시, 시작하는 것에 용기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이 책은 시작할 용기가 필요한 당신과 함께 하는 글이 모였습니다.



지난 겨울엔 유독 눈이 많이 왔어요. ‘잿더미 위로 쌓인 눈’을, 소복한 눈 위를 처음으로 밟아봅니다. 뽀드득 한 소리와 깨끗한 발자국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앞으로 이 마을엔 좋은 일만 가득할 것 같습니다. 한 발 한 발 천천히 걸어가며 백지와 같은 눈밭에다 꿈을 그려봅니다. 잠시의 시련은 꿈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 필요했던 약간의 ‘간격’입니다. 혼자서 쉽지 않다면, 청춘을 함께할 동료의 도움을 받으며 걸어가면 됩니다. 푸릇한 꿈을 함께 꾸며 걷다 보면, 따스한 음악이 귓가에 들려옵니다. ‘Our dream’. 맑은 우리를 감싸는 선율에 미소가 떠오릅니다.



물론 삶이 늘 안온한 것은 아닙니다. 걷다 보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합니다. 그럴 때엔 무릎에 묻은 흙먼지를 털고 일어나다 보면 길가에 놓인 민들레가 봄을 이야기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가끔씩 ‘훈련소의 시련’과 같은 자갈돌에 발머리를 다칠 수 있습니다. 어느 날에는 이전과는 다른 나로 태어나고 싶기도 합니다. 애벌레가 나비로 ‘변태’하듯 말이지요. 시련을 넘어서면, 한 뼘 커버린 나와 마주하며 해사하게 웃곤 합니다. 사랑받아 마땅한 나에게는, 원하는 나로 변화시킬 힘이있음을 믿으며 앞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살아온, 살아갈 모든 시간대에서 ‘좋을 나이’를 만난 내가 있음을 압니다. 영감을 통해 ‘나를 만나기로 회귀’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평행우주에서 내려다보듯, ‘더 작은 행복을 위해’ 삶의 순간 순간을 꾸려가는 나를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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