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면 찾아오는 그날.
매해 수많은 번역 필모가 쌓이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나지만 언제 어디서 만나든 가슴 아픈 주제가 있다. 911 테러다. 단순히 미국이라는 나라의 일로만 치부하기에는 중차대한 일임에도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그 높고도 넓은 건물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단 20여 명뿐이었다는 사실과, 건물 붕괴뿐 아니라 충돌로 인한 화마 속에서 타 죽어간 사람이 아주 많았다는 사실, 이를 견디지 못해 수십 층 건물 밖으로 몸을 던져 땅에 떨어져 죽었다는 점퍼(Jumper)들의 존재는 초보 번역가 시절 9/11 다큐멘터리를 처음 번역하던 날 알게 된 사실들이다.
모든 9/11 다큐멘터리에서 시작부터 끝까지 나오는 장면이 있다. 바로 비행기가 세계 무역 센터 건물로 충돌하는 장면인데 이 장면이 화면에 나올 때면 매번 눈을 질끈 감는다. 2001년 9월 11일 바로 저 순간 저 건물과 비행기 안에서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갔을 사람들의 최후가 피부로 다가와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비참하고 끔찍하기 때문에.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20년도 더 된 그 영상을 보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국민은 맨해튼 거리에서, 혹은 집에서 TV를 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울음을 터뜨렸다. 이런 아프고 슬픈 장면에는 면역도 생기지 않아 무려 11,000km 떨어진 여기 대한민국에 사는 나도 매번 눈물을 훔친다.
역사 면에서도 보통 사건이 아니다 보니 미국 방송에서 911 테러는 다큐멘터리를 비롯해 영화와 드라마, 심지어 시트콤에도 곧잘 등장하는 소재다.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영상물은 십중팔구 그렇다. 그래서 여러 장르를 번역하는 나에게도 1년에 한두 번씩 어김없이 찾아오는 9/11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것도 같은 달에 연달아 두 번이나.
간단히 추리자면 테러 발생으로 소방관들이 건물에 투입된 후 갑자기 건물이 붕괴되고, 잔해에 깔린 두 소방대원이 수십 시간 대화를 나누며 정신력으로 버티는 내용이다. 실제로 그런 끔찍한 고통과 슬픈 죽음이 얼마나 많았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턱 내려앉는다.
역시 번역가라면 책이나 영상이 큰 도움이 된다. 잘 모르는 주제라면 번역의 질이 달라질 정도로. 대충 하는 번역에는 정신이 담기지 않는데 나는 번역 자막에도 정신이 있다고 굳게 믿는다. 특히 이런 막중한 주제라면 가슴이 뭉클할 정도의 사명감까지 생긴다. 번역가가 진심을 쏟으면 번역물에는 그만한 생명이 덧입혀진다. 뛰고 나는 대사는 그때 탄생한다.
몇 년 전 911 다큐멘터리에서는 생존자 한 명의 인터뷰를 번역했다. 그 사람은 그날도 여느 날처럼 출근해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렸다. 지극히 평범한 아침. 갑자기 창밖에 불꽃이 튀고 수많은 종잇장이 흩날리는 환상 같은 모습이 펼쳐졌고 그는 어떤 이끌림을 따라 비상계단으로 향했다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굉음이 들리며 건물이 흔들렸고 천장이며 모든 게 무너지기 시작해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잔해가 날렸다. 여러 선택의 갈림길에서 필사적으로 빠져나와 보니 자신이 그 잔혹한 날의 생존자 20명 중 하나였다고. 기적 같은 생환이 감사하지만 왜 자신이 살아남았는지 늘 의문이었고 그날로 인해 신을 믿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듯 인생은 찰나와 같다. 먼지 같은 것이 인생이다. 당장 내일 일도 알 수 없는 게 인간인데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100년, 천 년 살 것처럼 자신 있게 삶을 계획하거나 정반대로 아등바등 괴롭게 산다. 올해 다시 만난 9/11은 또 이렇게 내게 교훈을 남긴다. 어려운 상황이 주어져도 결국엔 해결되어 이렇게 한 해 한 해 잘 살고 있음에, 모두 내 곁에 있음에, 일할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어긋난 종교 신념에는 죗값이 따른다. 희생자들과 한시에 목숨을 잃은 테러범과 주동자들은 생명이 끊어졌음에도 편히 쉬지 못하고 있음을 확신한다. 차라리 죽여달라는 말이 나오는, 하지만 이승과는 달리 끝이 없는 세상에서 끔찍한 생을 살고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