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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려경 Jun 05. 2024

애정 어린 마음은 결국 ‘표현’ 해야 아니까.

가까운 사람일수록 마음을 표할 것

  "카드 너무 귀여워요. 안 그래도 장갑 필요했는데 선물 너무 감동이에요 진짜.
눈물 날라 그래."

덕분에 나도 기분이 좋다고, 필요하지만 은근 내 돈 주고 사려니 미루게 되는 게 장갑이라며 해질 때까지 휘뚜루마뚜루 썼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20살,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할 때 활용하고 싶어서 주 1일 한 달 과정으로 캘리그라피를 배웠다. 두꺼운 빨간색 색지와 하얀 도화지를 사서 직접 카드를 만들고, 전해주고 싶은 많은 사람들의 이름과 글귀를 적어 카드를 선물했다. 하지만 당시 좋아하는 사람보다도 덤덤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돈이 들어간 큰 선물이 아니라 그런가. 그래도 애정하는 마음을 전하고자 카드도 직접 만들고 상대를 생각하며 시간을 쓴 건데...’ 하고 복잡한 감정이 든 때가 있었다.     

   그래서 그 뒤로는 선물은 준비하지만 손글씨 카드를 점차 줄여가다가, 이 사건 이후로 편지를 더 안 쓰게 된 것 같다. 오래 만났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기 전, 서로 몇 년 간 함께한 시간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사실 정성껏 긴 글을 쓰고 얼굴 사진을 직접 오려 붙이고, 문구용 부직포로 만든 열 페이지나 되는 하늘색 눈사람 편지. 너무 고맙긴 했는데 솔직히 좀 유치했어.’

   나의 마음을 표현할 방법이라고 생각해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든 선물에, 사실은 좀 유치했다는 그 말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그 사람의 나이가 된 지금 되돌아보면, 좀 유치해 보이나? 하고 0.1초 생각하다가 여전히 나라면 이 사람의 정성과 마음을 생각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리액션과 감사함의 말을 아낌없이 퍼부었을 것이다. 

   몇몇 사건들과 직장생활로 육체적, 심적으로 에너지가 많이 없어진 이유, 상대에게 대가를 바라고 준비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나의 마음에 환한 웃음으로 기뻐해 주길 바란 건 욕심이었나 의문이 든 이유로 서서히 누군가를 위한 일, 마음을 전하는 일은 내 삶에서 흐려져 가고 있었다.     


   그러다 최근, 다시금 마음을 다 잡고 ‘내가 중심을 잡고 사는 삶’을 살게 되면서 ‘나’와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애정 어린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줘도 줘도 더 챙겨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처럼 평소에 더 챙기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더 크게 들었달까. 그래서 20대 초반 때보다 더 단단해진 친구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위해 며칠간의 고민 끝에 선물을 준비했다.      

   나를 통해 형성된 나포함 3명의 친구들에게는 크리스마스 편지와 함께 활용성이 좋은 전기방석을 선물했고, 회사 워크숍 이후 더 친해진 과장님과 신입 두 분에게는 4명 커플 장갑을 선물했다. 작년부터 신년 인사 카드 전달을 생각했지만 망설였던 대표님, 이사님, 팀장님 그리고 팀원들에게는 유산균 음료와 함께 직접 쓴 카드를 전했다.

   퇴근 후, 일정을 소화하고 씻고 앉으니 밤 11시 30분. 졸린 눈을 비비며 총 17개의 두꺼운 종이에 “해피 Merry 크리스마스”라는 문구와 빨강, 초록, 보라색의 점박이가 담긴 카드를 만들었다. 선물을 주는 이유는, ‘그냥’이었다. 다음 글 주제가 될 ‘일상을 풍요롭게 즐기는 법’의 한 맥락처럼 기념일을 즐기는 자가 삶의 따스함을 더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작지만 ‘마음’을 전해받은 사람들이 잠시나마 기뻐했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크리스마스 선물이에요. 기분이라도 내시라고요. 오늘도 파이팅입니다!"

   오히려 신입분들보다 연차가 많이 쌓인 분들의 눈빛에서 감동을 볼 수 있었고, 그렇게 모처럼 한 두 마디 건네며 기분 좋은 아침을 보냈다. 상대가 기뻤으면 좋겠고, 그걸 준비하며 설레고, 선물 받은 상대의 웃음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무언가를 준비해서 직접 건네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던 오늘. 그 용기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웃음을 줄 수 있어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이런 기억을 기록으로 남겨두는 게 선물이고, 앞으로도 간간히 나 그리고 나의 지인들에게 마음을 전할 생각이다. 애정 어린 마음은 결국 ‘표현’ 해야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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