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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로 Apr 12. 2022

Cross-cutting, Beyond the TIME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1999)

    1996년 음반 프로듀서이자 기타리스트인 라이 쿠더는 영국 음반사 사장 닉 골드와 함께 자신의 오랜 꿈이었던 쿠바 음악의 과거를 찾기 위해 아바나로 향한다. 그곳에서 라이더 쿠더는 혁명 이전에 활동했던 고령의 뮤지션을 한 사람씩 찾아내 단 6일 만에 음반을 만든다. 앨범명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혁명 이전 1930~40년대 흥행했던 재즈클럽의 이름을 붙인 이 앨범은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키며, 600만 장이 팔려나가기에 이른다. 첫 앨범이 발매된 이후 라이 쿠더는 자신의 친구인 빔 벤더스 감독에게 쿠바 음악에 대한 다큐멘터리 제작을 제안한다.(라이 쿠더와 빔 벤더스는 이전에 이미 <파리 텍사스>(1987)와 <폭력의 종말>(1997)을 같이 작업한 바 있다.) 


  이렇게 시작된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빔 벤더스, 1999)는 쿠바의 음악가들이 낡은 스튜디오에 모여 녹음하는 장면과 노년이 된 멤버(콤파이 세군도, 이브라임 페레르, 루벤 곤잘레스, 오마라 포르투온도, 엘리데스 오초아)들의 인터뷰, 쿠바의 수도 아바나의 풍경, 그리고 암스테르담과 뉴욕 공연 장면을 교차 편집하며 이야기를 구성해 나간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이야기다. 과거의 영광이 무색할 만큼 고령이 되어 버린 음악가들이 다시 모여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한다! 일반적인 음악영화라면, ‘서칭 포’의 방식으로 음악가들을 하나씩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거나, 그들의 앨범 작업 현장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담아 마지막 공연을 향해 달려가는 구조를 취했을 것이다. 그런데 빔 벤더스는 왜 ‘교차편집’을 선택했을까?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의 교차편집은 3개의 현장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뉴욕 공연 모습, 두 번째는 아바나의 풍경과 음반 녹음 장면, 세 번째는 음악가들이 들려주는 과거 회상 인터뷰다. 각각의 현장들을 시간순으로 살펴보면 뉴욕 공연은 ‘미래’에, 아바나의 풍경은 ‘현재’에, 인터뷰는 ‘과거’에 해당한다. 빔 벤더스는 선형적으로 펼쳐져 있는 인물들의 시간을 교차편집을 통해 새로운 흐름으로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뉴욕 공연은 이야기 순서상 미래에 해당하지만, 흑백에 가깝게 표현하면서 마치 과거와 같은 느낌을 낸다. 마치 “미래의 사건들이 이미 존재하는 것처럼”, ‘오래된 미래’, ‘봉쇄된 미래’를 보고 있는 듯 말이다.(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저화질 DV로 촬영된 영화는 공연장면을 원하는 대로 담을 수 없었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후보정을 진행했다고 한다.) 음악가들의 인터뷰 내용이 현재가 아닌 오래된 과거에 맞춰져 있는 것 또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라이 쿠더가 쿠바의 ‘냇킹 콜’이라 칭했지만, 구두닦이를 하며 살고 있던 가수 이브라힘 페어. 그는 “내가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려주고 싶다”며, 산티아고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형제도 없이 어머니와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후에 다른 인물들 또한 같은 방식으로 자신들의 과거를 회상(기억)한다. 아빠가 유명한 야구선수였다는 소셜클럽의 유일한 여자 보컬 오마라 포르투온도. 낮에는 이발사로 밤에는 클럽 가수로 살고 있던 꼼바이 세군다는 1907년 태어나 85년간 담배를 피웠다며 너스레를 떤다. 사창가를 돌아다니며 기타 연주로 돈을 벌어 생활했다는 기타리스트의 이야기는 화려한 음악 뒤에 숨겨져 있던 세월의 실제를 보게 한다. 과거에 대한 인터뷰가 끝난 후 각 멤버들이 현재 아바나 거리를 걷는 장면-공연 연습 장면으로 이어지며 자연스레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킨다.


  각 인물들의 인터뷰가 조금 반복적으로 진행될 무렵 자연스레 질문이 떠오른다. 이 ‘교차방식’은 그야말로 ‘영화적’이지만, 영화 전체를 끌고 가기에는 무리지 않을까? 만약 그랬다면 이 영화의 교차편집은 기교에 머물고 말았을 것이다. 영화는 정확하게 절반을 지난 시점부터 ‘현재’로 돌아온다. 지난 10년간 잊혔던 그들이 어떻게 다시 모이게 됐고, 그것이 얼마나 큰 사건인지 설명하기 시작한다. 선형적인 방식이라면 가장 서두에 배치됐을 이야기를 중반에 배치한 것이다. 영화는 이 시점부터 인터뷰 내용에 변화를 준다. 멤버들의 가벼운 소개에 가까웠던 인터뷰는 (그들이 실제로 생활하는 공간에서 촬영되며) 그들이 세상에서 잊힌 긴 세월 동안 어떤 공간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교차편집’은 각기 다른 장소에서 동시에 발생한 사건을 교대로 병치시켜 보여주거나, 별개의 두 장면을 연결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갖는다. 빔 벤더스는 이를 넘어 아주 단순한 교차편집(cutting)만으로 인터뷰에 등장한 인물들이 마치 그동안 다른 시공간에 존재했던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1998년 7월,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은 뉴욕 카네기홀에 서며 대미를 장식한다. 영화 전반부에 ‘미래’이자, ‘과거’로 존재했던 뉴욕 공연 장면은 칼라(color)로 변화하며 ‘현재화’된다. 드디어 ‘현재’에 당도한 소셜클럽의 멤버들은 아바나의 풍경과 대비되는 화려함 가득한 뉴욕 거리를 누빈다. 쿠바에서 평생을 보내온 멤버들의 ‘현재’가 뉴욕에서 펼쳐지는 것은 상징적이다. 혁명 이후 미국 정부는 쿠바에 강한 경제 봉쇄 정책을 펼쳤고, 이로 인해 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은 하나씩 무너지면서 쿠바의 경제는 점점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뉴욕 거리를 구경하며 거리에 장식된 대통령 인형을 보며 누구인지 묻는 장면이나, 자유의 여신상을 찾는 모습은 이 때문에 당연히 낯설고,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뒤로하고, 카네기홀에서 마지막 노래가 끝나고 환호성과 기립박수가 터져 나오자 뭉클함이 밀려온다. 평생 카네기홀에서 공연하는 것이 소원이었다는 이브라힘의 표정이 슬로되며, 환희로 가득 찬 노장 음악가의 순간은 영원히 ‘역사화’된다. 


  영화는 세련된 방식으로 중요한 3가지 지점, ‘쿠바 음악의 아름다움’, ‘노인이 된 음악가의 시간’, ‘쿠바의 역사와 상징성’을 잡아낸다. 크로스 된 컷들은 인물들의 시간을 4차원화 하고, 풍부한 시간의 결을 만들어낸다. 아쉬운 점도 있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골프를 치는 사진을 보여준 것은 이 영화가 쿠바의 역사와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선언한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혁명은 영원하다”, “칼 마르크스”, “우린 꿈을 믿는다” 아포리즘 같은 여러 표지판과 바다와 거리 풍경을 비추며 ‘쿠바’라는 나라에 대한 통속적인 이미지를 강조한 것은 너무 낭만적인 접근이 아닐까. 아름다운 쿠바 음악의 배경처럼 등장한 아바나의 풍경은 너무도 쇠퇴해 있다. 2019년에도 미국 제재의 여파 속에서 극심한 연료난을 겪고 있는 쿠바의 소식을 접하고 있노라면, 빛바랜 혁명의 기억은 그 풍경만큼이나 흐릿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이 난 영화의 엔딩을 다시 앞으로 돌려 환희에 찬 이브라힘의 표정을 바라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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