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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로 Apr 12. 2022

영원히 끝나지 않을 마지막 수업

<마지막 수업>(2003)

    다큐멘터리 <마지막 수업>(니콜라 필리베르, 2003)은 프랑스 시골 마을에 있는 ‘하나의 학급’으로 이루어진 학교에 관한 이야기다. 전교생이 10명 남짓한 이 학교는 아주 저학년 아이들부터 중학교 진학을 앞둔 고학년 아이들이 한 교실에서 공부하고 생활하고 있다. 물론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도 단 한 명이다. 


  거세게 눈발이 몰아치는 창밖 풍경과 사뭇 다르게 아주 평온해 보이는 교실, 그 모습을 뒤로하고 차 한 대가 달려간다. 통학버스로 보이는 차에 아이들이 한 명씩 오르고, 아이들은 학교로 향한다. 이 영화의 대부분은 교실 수업 장면으로 채워지는데, 영화가 관심 있게 살피는 것은 학교나 교육과 관련한 사회적 문제가 아닌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귀여움, 그리고 조르주 선생님과 아이들의 ‘관계성’이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선생님에게 “지금이 밤이에요? 낮이에요?” 묻거나 친구들에게 “넌 내 친구니?”라고 묻는 엉뚱한 아이들의 모습은 보는 사람의 얼굴에 자연스레 미소를 띠게 한다. 또한 영화는 학급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소한 에피소드들을 차분히 담아낸다. 같이 음식을 하거나 산에서 눈썰매를 타는 모습, 학교 마당에서 아이들끼리 다툼하는 모습, 복사기로 장난치는 아이들, 나들이를 갔다가 친구를 잃어버릴 뻔한 일들-언젠가 누구나 한 번쯤 겪어 보았을 만한 다양한 이야기들은 보는 이들을 추억에 빠지게 한다.


  아이들의 귀여움만큼이나 주목하게 되는 것은 아이들을 대하는 조르주 선생님의 태도다. 영화 내내 같은 톤의 목소리로 아이들의 질문에 꼼꼼히 답하고, 세심히 질문하는 모습은 강한 인상을 남긴다. 특히 롱테이크로 촬영된 장면 중 싸움한 두 아이를 앞에 두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둘 사이를 천천히 조율해가는 모습은 묘한 긴장감 속에서도 끝내 감동적이다. 특이한 점은 영화가 조르주 선생님의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영화는 전반 내내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모습을 단독샷으로 비추지만, 조르주 선생님의 모습은 적극적으로 화면에 드러내지 않는다. 영화 시작 30분 후 교실을 벗어나 아이들이 집에서 생활하는 모습이 이어진다.(아이가 푸는 수학 문제를 온 가족이 나서서 함께 하는 모습은 마치 아이를 키우는 것이 모두가 함께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듯하다.) 이후 학부모와 선생님이 면담하는 장면이 연결되는데, 이때 조르주 선생님의 단독샷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영화의 또 한 명의 주인공이 선생님이라는 점을 강조하듯 카메라는 줌인하며, 그동안 외화면에 배치됐던 인물을 극과 화면의 정중앙에 배치한다. (이와 유사하게 영화 초반에는 이 어떤 학급인지 알 수 없도록 아이들의 클로즈업 샷 위주로 편집한다. 그리고 17분경부터 마스터 숏을 사용하여 학생들이 교실로 입장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다양한 연령의 학생들이 한 학급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우리는 흔히 관찰 방식으로 촬영된 다큐멘터리들을 ‘다이렉트 시네마’(Direct Cinema)라고 부른다. <마지막 수업>은 현실의 흐름을 따라 촬영되었고 편집 또한 그 흐름에 따라 만들어진, 차분한 톤앤매너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와 유사하게 <허니랜드>에서도 수백 시간의 촬영을 통해 내레이션과 인터뷰 없이 현실에서 촬영된 이미지만으로 이야기를 구성한다. 그러나 편집과정에서 연출(인위적인)된 구성들이 실행되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다이렉트 시네마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허니랜드>와 <마지막 수업>은 상당히 유사한 촬영방식을 가지고 있지만, 전혀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허니랜드>가 ‘컷팅’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었다면, <마지막 수업>은 ‘롱테이크’를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마지막 수업>에서 유일하게 다이렉트 시네마의 규칙을 벗어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건 바로 조르주 선생님의 인터뷰다. 이 인터뷰의 등장은 갑작스럽지만, 조르주 선생님을 이해하는데 아주 큰 역할을 한다. “농부였던 아버지가 아들에게 농사일을 시키고 싶지 않아 하셨다”, “나는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에 선생님이 됐다”와 같은 이야기들은 감독이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면, 관찰적 촬영 방식으로는 담아내기 어려운 부분이었을 것이다. (조르주 선생님의 인터뷰를 기점으로 그가 보이는 방식도 변화한다.)


  조르주 선생님은 아이들과 함께 아이들이 다음 해부터 다니게 될 새로운 학교를 방문한다. 선생님과의 이별을 아는지 모르는지, 새로운 공간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에는 설렘이 묻어난다. 어느새 계절이 바뀌어 작은 교실에 새로운 친구들이 들어오고, 또 어떤 친구는 교실을 떠나게 된다. 조르주 선생님은 헤어짐을 받아들이지 못해 눈물 흘리는 아이들의 마음을 끝까지 보듬어준다. 퇴임을 앞둔 상태에서 방학을 맞이하는 조르주 선생님의 표정은 다양한 감정의 결을 느끼게 한다. 


  2시간 가까이 특별할 것 없는 아이들을 일상을 끝까지 지켜보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행동들과 질문들을 지켜보다 보면 우리는 자연스레 각자 자신의 어린 날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이 영화는 프랑스에서 170만 가까운 스코어를 기록하며 오랫동안 ‘대중적인 다큐멘터리’로 사랑받고 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다. 영화는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 더 큰 범주로 보자면 ‘아이들이 자란다는 것’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성장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그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영화 속에서 조르주 선생님의 수업은 마지막으로 끝났지만, 영화가 살아있는 한 그가 우리에게 준 가르침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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