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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sat Aug 10. 2020

 그녀의 눈동자


 “동그라미 그리려 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 마음 따라 피어나던 하얀 그때 꿈을 풀잎에 연 이슬처럼 빛나던 눈동자 동그랗게 동 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유난히도 힘들었나 보다. 맥주 한 잔 얼큰하게 걸치고 난 어느 날 엄마를 보고 싶을 때마다 부르는 노래 ‘얼굴’을 부르다 그만 눈물이 하염없이 흘리고 말았다. 짝꿍은 늦는다 하고 아이들과 간단히 차려낸 저녁상에서 울음보가 터져버렸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한 달이 훨씬 지난 어느 날, 3호가 나에게 “엄마 외할머니 눈동자는 빛이 많이 났어?” 하며 물었다. 뜬구름 없는 질문에 무슨 말이냐며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응? 뭐라고?” 하니 외할머니의 반짝이는 눈동자가 궁금  하고 보고 싶다고 했다. 도통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외할머니의 얼굴은 사진으로만 보았을 이 아이가 자꾸 외할머니의 눈동자에 대해 물어보기에 잠시 엄마의 얼굴을 떠올려 보니 정말 우리 엄마의 눈동자는 사슴처럼 빛났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3호 에게 외할머니의 눈동자는 사슴 눈처럼 깨끗하고 빛났다고 답변을 해주고 나니 또다시 눈시울이 붉어져 버렸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녀석이 또 물어보길래 한 번도 보지 못한 외할머니 눈동자가 뭐가 그리 궁금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엄마가 지난번에 맥주 마실 때 노래 부르고나서 할머니 보고 싶어서 울었지 않았냐고 되물었다. 노랫말을 기억하고 물어본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웃음도 나오고 ‘아이들의 기억은 어른이 생각하지 못한 기억으로 생각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평생을 참 아프기만 하고 살았던 우리 엄마! 지금 생각 해보면 정도 많고 착하고 인심도 좋았던 엄마는 누구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항상 몸과 마음이 아팠고 애를 태우며 살았던 것같다. 행복했을까? 행복한 날보다는 화가 나고 짜증나고 속 끓고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날들이 더 많았던 엄마였던 것 같다. 나이가 들어서도 웃는 모습보다는 한숨 쉬는 날들과 아픈 날이 더 많았으니 얼마나 불쌍한지 모른다.     

난 그런 엄마가 싫었고 매일같이 아프고 힘들어서 진통제를 먹는 엄마는 더 싫었다. 갑상선 질환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한평생을 목이 툭 튀어나와 혹처럼 부풀어 오른 상태의 모습은 너무나 창피했다. 살아 계실 때 제대로 된 밥상 한번 차려 드리지도 않았고 말투도 톡 쏘아붙이고 짜증을 내고 성질만 부렸다. 마음은 그렇지 않았는데 왜 그리도 못되게 굴었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딸 넷 중 막내딸이라고 참 많이도 예뻐했던 나는 그런 엄마를 미워하고 창피해했던 것이 가장 미안하고 죄송스럽다. 살아 계실 땐 몰랐는데 돌아가시고 나니 후회되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결국이 모든 것은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곁에 없기에 그 온기를 느낄 수 없기에 더욱 후회가 된다. 살아 계실 때 잘해야 한다는 말이 맞지만 미안하기 때문에 그리움이 더 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살면서 힘들고 외롭고 슬플 때 가장 생각나는 사람은 엄마다. 살아 계시다 하여 나에게 도움을 주거나 아프고 힘든 마음을 달래 주지도 못했을 것이고, 내가 착한 딸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어느 순간 내 모습에서 안 좋았던 기억의 엄마를 발견한다. 어쩌면 현재 내가 그녀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순간 그립고 보고 싶은 엄마이지만 엄마의 모습으로 살고 싶지도 않고 내 가족들에게 그런 모습으로 비춰 지는 것도 겁이 나고 싫다. 앞으로의 내 삶은 그녀를 대신해서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가족을 사랑하고 더 행복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를 대신한다기보다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 진정한 내 모습을 찾아 후회하지 않는 하루하루를 살아야 한다. 내가 엄마의 얼굴을 빛나는 눈동자로 기억하듯이 먼 훗날 나의 자녀들이 기억할 나의 얼굴을 위해 그렇게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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