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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MIN May 21. 2020

재난 상황의 '반려동물'과 애완동물



  방학까지 얼마 남지 않아서 본가에 아라를 잠시 맡겨두고 올라와 대학원 학기를 마무리하는 데에 전념하고 있을 때였다. 아직 노리를 데려오기 전이라서 외동묘였던 아라는 엄마와 둘이서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아빠 직장 문제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도시로 가게 되어 우울해하던 엄마는 집에서 까꿍놀이나 술래잡기를 하면서 아라와 유대감을 쌓아가고 있었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데 강의실 한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본가가 있는 지역에 지진이 크게 났다는 재난 알림 문자가 왔다는 것이었다. 한국으로서는 꽤 큰 규모의 지진이어서 한동안 뉴스에서도 지진 대비 수칙이나 여진의 위험성을 보도하곤 했었다. 급하게 엄마에게 별 일 없냐고 카톡을 보냈더니 ‘ㅇㅇ 차에 있어’라는 엄마 특유의 무미건조한 카톡만 왔다. 저 짧은 글자 나열만으로는 도무지 상황을 파악할 수가 없어서 수업이 끝나자마자 불안한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당시 우리 집은 21층이었다. 밥을 먹고 쉬고 있는데 굉음이 나더니 주방 천장에 달린 조명이 흔들리고 벽에 걸린 액자가 떨어져 깨질 정도의 진동이 있었다고 한다. 이미 며칠 전에 한 번 지진을 겪은 터라 이럴 경우 안전한 공터 같은 곳으로 나가 있는 것이 좋다는 말을 떠올린 엄마는 아라를 데리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전화로 이 부분까지 듣고 지진이 났을 때 엘리베이터를 타면 안에 갇히거나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거 모르냐며 잔소리를 잔뜩 했다. 다만 만약 나였더라도 21층에서 7킬로 정도 나가는 아라를 케이지에 넣고 걸어서 내려가려면 눈앞이 좀 깜깜했을 것 같기는 하다.


  고층 아파트여서 그런지 지진 대비 수칙도 무시한 채 엘리베이터에 꽤 많은 사람이 탔다고 한다. 아라를 보고 “고양아~”하면서 천진하게 좋아하는 아이부터 산책 갈 때 종종 마주치곤 했던 주민들까지. 다들 저마다 중요한 것들을 한가득 들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엄마가 고양이만 데리고 탄 것이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한 아저씨가 엄마에게 “고양이만 챙기면 돼요?”하고 물었다고 한다. 사실 엄마로서는 차 키와 지갑을 챙긴 시점에서 어지간히 중요한 건 다 챙긴 셈이었지만, 금품을 한 보따리 지고 있는 그 아저씨로서는 납득이 가지 않았던 것 같다.


  대화 아닌 대화는 적당한 웃음으로 마무리됐고 엄마는 무사히 아라를 차에 태워 주변 공터까지 간 후에 나와 통화를 하는 것이었다. 겁 많은 아라는 갑작스러운 외출에 놀라서 차 구석에 웅크리고 있다고 했다. 그 후 별다른 위험이 없을 것 같아져서 엄마는 아라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고 여느 때와 같은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학기를 끝내고 집으로 내려가서 아라와 극적인 상봉을 하고 느긋하게 방학을 보내다가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엄마에게 말을 걸었던 그 아저씨가 집에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단순한 호기심의 발로 정도로 여겼던 그 질문이 그 아저씨로서는 집에 두고 온 강아지를 떠올리며 복잡 미묘한 심경으로 내뱉은 말이었던 것 같다.






  최근 ‘이 시국’ 소리를 입에 달고 살게 만든 주범이 유행하기 시작하던 시기에 외국의 한 도시의 영상을 본 기억이 난다. 원래라면 사람으로 북적거릴 길거리가 소름 돋을 정도로 텅 비어 있고 한 구석에서 버려진 강아지가 영상 찍는 사람에게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심지어 그때는 바이러스가 강아지나 고양이 등의 동물에게 전파된다는 사실이 확실시되지도 않았던 시기였다.


  지진이 있고 나서 한동안 커뮤니티에 고양이를 태우는 냥모차나 어깨에 맬 수 있는 배낭형 케이지가 화제가 되었다. 가끔 화재나 수해 같은 재난 상황을 뉴스에서 접하면 만약의 상황을 가정해 보게 된다. 앞으로 내가 아라, 노리와 함께하며 겪게 될 재난 상황이 있을지, 그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미래의 내가 어떤 순서대로 뭘 챙기든 간에 이전에 비해 키가 훌쩍 커서 8킬로가 된 아라와 키에 비해 살이 쪄서 비만 선고를 받은 7킬로 노리를 들고 움직이려면 일단 좀 무겁긴 할 것 같다.



  이제는 어느 정도 알려진 ‘애완동물'과 ‘반려동물'이라는 표현의 차이를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엄마는 아마 두 단어의 뉘앙스 차이에는 크게 관심이 없을 것이다. 다만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목숨이 위협받는 위기 상황에서 쌀 포대 무게의 아라를 ‘반려동물’로서 챙겨 나간 엄마가 자랑스럽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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