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늬밤 Nov 12. 2020

후각의 기억법

마르크 샤갈, 겨울 냄새를 아시나요

계절의 향기, 계절의 기억


겨울 냄새를 아시나요.


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갈 때 즈음 코 끝을 간질이는 익숙한 향기. 혹자는 냄새가 아니라 감각이라고도, 또는 계절이 코에 일으키는 오류라고도 하지만 나에게는 후각을 자극하는 아주 선명한 '향기'인 것이 바로 이 겨울 냄새다.


'아! 겨울 냄새 난다!' 이 말 한마디는 겨울이 시작됨을 알리는 예고편이기도 하고, 계절이 바뀜을 허하는 선언문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모두가 이젠 정말 겨울이 왔노라고 끄덕일만한 추위가 다가오면 이 냄새는 언제 존재한 적이라도 있었냐는 듯 사라진다. 그러고는 그 다음 해에 다시 불쑥 나타나곤 하는 것이다.


마르크 샤갈, 로미오와 줄리엣, 1964

겨울 냄새를 떠올리면 항상 함께 따라오는 기억, 장소, 사람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그땐 겨울이 되면 코와 입으로 무자비하게 내뿜어져 나오는 입김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마치 옛날 중국 신화에 나오는 용처럼 코와 입으로 뜨거운 김을 퐁퐁 발사하는 내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보일 것만 같았달까. 마스크로 살포시 얼굴을 가려준 다음에야 맘 놓고 숨을 내쉬곤 했다. 겨울 냄새를 인지하게 된 건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어릴 때를 신기하리만치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내게 이러한 유년 시절의 단편적인 기억들은 참 소중하다. 마스크를 뚫고 나오는 입김을 바라보며 어렴풋이 겨울 냄새를 맡던 기억, 학교 앞에서 나눠주는 '윌리를 찾아라' 그림이 코팅된 책받침을 장갑 낀 손으로 받던 기억, 따끈한 붕어빵 냄새로 알맞게 데워진 차가운 겨울바람에 살며시 미소 짓던 기억들까지. 내 안에 작게나마 남아있는 이러한 기억의 조각들은 아마도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근간이 된 셈일 테다.


중 중요한 기억 하나는 바로 그 겨울 냄새에서 시작된다.





두 번의 겨울, 한 번의 짝사랑


그 아이와 함께한 겨울은 딱 두 번이었다.


처음으로 겨울 냄새를 인지하기 시작했던 열두 살 남짓한 어느 해의 여름, 그 아이의 능글맞지만 다정한 미소가 퍽 맘에 들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렇게 느끼는 게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에 있었다. 서글서글한 외모와 인상 탓에 또래 여자아이들은 다 그 아이를 남몰래 흠모했었고, 예의가 바르면서도 선을 넘지 않는 농담과 입담으로 학교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꽤 인기가 있었다. 그때 당시 유행하던 가수 싸이의 춤을 즐겨 추곤 하여 ‘안-싸이’(성이 안 씨였다)라고 불리었는데 교무실에서도 툭 하면 ‘안-싸이 어디 갔냐’하며 데려 갈 정도였다.


마르크 샤갈, 도시 위에서, 1914-1918

그에 반해 나는, 수줍음이 많던 조용한 아이였다.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이 와다다 몰려들어 장난치느라 왁자지껄한 그의 무리 곁에 있기보다는 가만히 자리에서 책을 읽었고, 어쩌다 익살스럽게 농을 치는 그 애 앞에 설 때면 발그레 물든 두 볼을 숨기려 황급히 자리를 뜨곤 했다.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절절하게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그런 내가 새침한 여동생 같이 느껴졌는지 유독 챙겨주곤 하던 그 아이였다. 씨익- 웃을 때의 미소가 마치 땀이 날 정도로 두툼한 목도리 사이로 느껴지는 시원한 겨울바람 같다고 생각했다.


사단이 난 건 그 다음 해였다. 운이 좋았던 건지(혹은 나빴던 건지) 그 아이와 또 같은 반이 되었고, 겨울 냄새가 나기 시작하던 어느 추운 날 우린 멀어졌다. 일일 주번이라 하교 후 쓰레기통을 비우고 교실로 돌아오는데 각 반에 한 명씩은 늘 있었던 무서운 여자애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들리는 ‘너, 좋겠다?’라는 한 마디. 영문을 모른 채 얼어 있던 나는 무슨 일인지 파악하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여자애의 무리들 가운데 말그름한 얼굴로 말없이 나를 쳐다보는 그 애가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소위 잘 노는(?) 아이들끼리 교실에 남아 진실게임이란 걸 했던 모양이었다. ‘안-싸이’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그 여자애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고, 그는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를 지목했었던 게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실 아직까지도 이해가 가진 않는다. 그 녀석, 왜 그런 대답을 했던 걸까.





코 끝 시리게, 후각의 기억법


좋은 감정을 가졌던 그와는 그 뒤로 서먹한 눈맞춤을 하며 조금씩 멀어져 갔고, 중학교를 서로 다른 곳으로 진학한 후엔 소식마저 듣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는 겨울 냄새가 나는 계절이 되어서야 가끔씩 꺼내보는 소싯적 이야기로만 남아있다. 그렇다고 겨울 냄새를 맡으면 무작정 그 아이가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얘기했던, 겨울 냄새가 안겨주는 유년 시절에 대한 무수한 기억 속 파편들.. 그 사이에서 날 바라보던 어느 호동그란 눈동자의 깜빡임을 어쩌다 한번 보게 될 뿐.


마르크 샤갈, 비테프스크 위에서, 1915-1920

아마도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그 시절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고향을 그리워했던 화가 샤갈이 자신의 그림들에서 그가 나고 자란  비테프스크에 대한 애정과 향수를 드러낸 것처럼 말이다. 되돌아가고 싶은 거창한 어떤 순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보다 세상의 때가 덜 묻은 눈으로 순수하게 바라보던 동화 같은 시절이, 아주 가끔은 그립다. 그러니까 겨울 냄새는 내게 일종의 ‘노스탤지어’인 셈이다. 코 끝이 시린 계절이 오면, 진짜 향기인지 기억인지 모를 그 냄새는 오롯이 자신만의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며 아직까지 나와 함께 하고 있다.


후각은 사람이 가진 그 어떤 감각기관보다도 적응이 빠른 기관이라고 들었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진한 향의 꽃다발을 탁자 위에 두어도 이내 그 아름다움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쉽게 잊고 익숙해지는 것은 바로 그런 후각의 성질 덕택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무뎌지지 않고 생생하게 남아있는 겨울 냄새와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은, 역설적이게도 ‘후각의 기억법’이라는 말을 믿고 싶게 만든다.


마르크 샤갈, 나와 마을, 1911

코 끝 시린 계절이 성큼 다가왔다. 아침에 밖으로 나설 때의 뜨끈한 입김과 서늘하고 알싸한 겨울 냄새가 무척이나 그리웠다. 이번에 돌아올 추운 계절에는 한번 찾아가 보려 한다. 지금은 세월의 흔적을 한 겹 덧입었을 어린 시절의 동네, 그때 그 시절 추억의 공간들. 한 바퀴 돌아보며 겨울 냄새를 크-게 한숨 들이마시면, 샤갈의 <나와 마을>과 결이 비슷한 푸르스름한 추억의 한 줄기에 잠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겨울 냄새에 실려 올 기억 속 향수(鄕愁)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괜스레 창문을 활짝 열어본다.



글. 아트소믈리에 지니



*p.s.

날이 많이 차네요. 요즘은 출근길 아침마다 겨울 냄새를 맡으려 킁킁- 거리는 제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혹시 저와 같은 분들이 계시려나요.^^


입동도 지나고 이제 진짜 겨울이 온 듯합니다. 따뜻하게 잘 챙겨 입으셔요. 오늘도 모두 예술적인 하루 보내시구요-!


*잔나비-가을밤에 든 생각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가 사랑한 얼굴을 찾아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