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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늬밤 Nov 06. 2022

모임 시작 전 받은 낯선 메일

함께 쓰는 글동무가 되어 드려요

  글쓰기 모임 멤버 모집 기간에 어떤 메일을 하나 받았다.

안녕하세요. 글쓰기 모임 문의차 메일 드립니다.
참가 이유는 책을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제 글에 대해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싶기 때문입니다. 제가 써둔 글을 모임에서 공유할 시간이 있을까요? 제 원고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볼 수 있나요?


  요지는, 현재 자신은 출간을 목표로 글을 쓰고 있고 그 글에 대한 평가를 받고 싶은데 그게 가능한 모임 환경인지를 묻고자 함이었다. 어려웠다. 우선 현재 모임의 취지와는 맞지 않아 보였다. 우리 모임은 그림과 관련 주제에 대해 대화 나누고 이를 각자 글로 풀어쓰는 식으로 진행될 예정인데, 기존에 썼던 다른 글을 가져와서 공유한다? 난감했다. 애초에 모임 의도와 맞지 않을 가능성이 살짝 점쳐졌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한편으론, 호기심이 생겼다. 당시 침체기에 빠져있던 나는 글을 쓰고 싶다가도 쓰고 싶지 않았고, 어떤 글을 써야 하며 왜 글을 써야 하는지 목표를 상실한 상태였다. 나와는 달리, 이토록 당당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글에 대한 포부를 내비치는 사람은 어떤 글을 쓸지, 혹여나 내가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진 않을지 궁금했다. 그리고 조율만 잘한다면 기존의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게 활동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무작정 '저희 모임과는 맞지 않는 것 같아요'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답장을 써서 메일로 보냈다.


안녕하세요? 글쓰기 모임 관련하여 문의 주셨군요. 반갑습니다.

저희 글쓰기 모임은 커리큘럼에서 보셨다시피 예술에서 받은 영감 또는 일상을 스치는 생각들을 붙잡아 글로 써내는 모임입니다. 모임 전, 매 회차의 주제와 곁들일 예술 작품이 제시됩니다. 그러면 그 주제에 맞게 각자 글을 준비합니다. 모임에 와서는 주제에 대해 함께 대화한 뒤, 간단하게 작성해온 자신만의 초고를 바탕으로 글 한 편을 완성합니다. 쓴 글은 돌아가며 낭독하고 서로 감상을 나누는 순서로 진행됩니다.

간단한 피드백 정도는 주고받을 수 있겠지만 글 창작을 위한 날카로운 비평이나, 주제와 무관한 글에 대한 평가를 제공하기란 힘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물론 여기서 인사이트를 얻으시거나 모임에서 쓰신 글들을 추후 출간하실 책에 넣으실 수는 있겠지요. 참고하셔서 참석 여부를 결정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정성스런 답변 감사하다며 모임을 신청했음을 알리는 회신 메일이 왔다. 다시 고민에 빠졌다. 잘 된 건지 아닌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어쨌든 이렇게 한 명 더 신청자가 생겼고, 모임은 정원 8명을 꽉 채워 시작하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열혈 참여 멤버가 되어 활발한 모임 진행에 큰 도움을 주었다.)


  글쓰기 모임 멤버를 모집할 때면 이와 비슷한 문의를 종종 받는다. 글쓰기 코치를 해주시나요? 직접 피드백해주시는 건가요? 글 잘 쓰는 방법도 알려주시나요? 그럴 때마다 곤란한 심정이다. 내가 뭐라고 남의 글에 피드백을 주며 코치를 해주나. 고작 그들보다 몇 걸음 먼저 글쓰기를 시작한 사람일 뿐인데. 한편으론 그런 기대치에 맞추어 모임을 해야 하나 하는 갈등에 빠지기도 한다. 참가자들이 원하는 바에 부응해줘야 할 것 같은 마음과, 다른 사람의 글에 이런저런 평가를 하면서까지 무겁게 모임을 운영하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이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다 결국 이런 답변을 보낸다. <죄송하지만 이 모임은 '함께 글 쓰고, 내면을 돌아보며 스스로 단단해지는 경험을 공유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제가 누군가의 글에 피드백을 할 정도의 수준은 아닙니다. 주제나 글감과 같은 가이드라인은 제시해드리지만, 그 안에서 자기만의 글쓰기를 어떻게 펼쳐나가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멤버분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나만의 기준을 세운 뒤로는 모임 운영에 대한 부담감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실제로 글쓰기 모임을 운영해보면, 모임의 모습이나 결은 내가 아닌 멤버들에 의해 정해지는 부분이 훨씬 많다는 걸 느낀다. 물론 초기의 정체성이나 방향은 리더인 내가 어느 정도 설정하고 시작하지만, 그때그때 멤버들의 성향이나 글쓰기에 대한 친밀도에 따라 모임의 짜임새는 달라지는 게 맞다. 만약 글 쓰는 것이 처음인 멤버들이 많다면 주제에 대한 대화 시간을 풍성히 가져 쓸 거리를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돕거나, 글쓰기 팁이나 긍정적인 피드백을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여 쓰기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반대로 어느 정도 글 쓰는 습관이 잡혀 있고 자신의 실력을 향상시키고 싶어 하는 멤버들이 주를 이룬다면 실제적인 글쓰기 시간과 합평 시간을 늘려 글의 완성도를 높여가도록 진행하는 편이 나을 테고. 물론 현실 상황에선 두 성향의 멤버들이 고루 섞여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파트너로서 이를 적절히 조율해주는 게 필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모임을 진행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 쓰는 동료들에 대한 믿음'이다. 결국 우리는 글쓰기라는 모험을 잘 헤쳐나가리라는 믿음. 글쓰기 상황 앞에선 누구나 돌발상황이나 어려움에 맞닥뜨려지기 마련이다. 이때 '내가 어떻게든 해결해줘야 하지 않을까'는 마음가짐보다는 멤버들을 믿고 조금 기다려주는 것이 더 낫다는 걸, 몇 번의 경험을 통해 배웠다. 나의 역할은 교사나 코치가 아닌, '글동무 내지는 페이스 메이커' 정도일 뿐이라는 것도.


  예컨대 내가 아무리 열심히 준비하고 계획을 해가도 '주제가 어려워서 못 쓰겠다, 그림을 봐도 무얼 느끼고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와 같은 반응을 마주할 때가 있다. 처음 이런 상황에 직면했을 땐 '내가 그림과 주제를 잘못 선정했나? 어떻게 도와줄까?' 하는 초조함부터 앞섰다. 하지만 회차를 거듭하면서 "초반엔 좀 어려웠지만 어떻게든 계속 쓰다 보니 파트너님이 왜 이런 그림과 주제를 연결했는지 알 것 같다"는 고백을 하는 멤버들을 보면서 나름의 확신이 생겼다. <각자의 글쓰기 속도와 컨디션은 같을 수가 없다. 그러니 일일이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주기보다는 기다려 주는 태도와 글쓰기 동료로서의 전우애가 중요하다>는 확신. 생각해보면 나 또한 글쓰기 앞에서 막막한 순간들이 많았으니까.


  그와중에 놀라웠던 것은 멤버들끼리 서로 조언하며 나름의 글쓰기 해답을 찾아가는 모습이었다. 누군가 글쓰기 고민을 토로하면 서로 "00님, 저는 이럴 때 어떻게 하냐면요~" 하고 경험담을 나누며 척척 상황을 풀어나가고, 헤어질 때면 "열심히 준비해주신 파트너님 덕분에 오늘도 힐링하고 갑니다" 말하며 쿨하게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노라면 '아 난 정말 아무것도 하는 게 없구나' 하고 중얼거리게 된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결국 글쓰기를 통해 자기 안의 실타래를 풀어 나간다. 막히더라도 계속해서 꾸준히 쓰다 보면, 무슨 모양새든 어떤 식으로든 나름의 결론에 닿는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글쓰기는 스스로 답을 찾아가게끔 해주는 도구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글쓰기로부터 오는 고민은 글쓰기가 해결해주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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