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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캔줌마 Apr 15. 2024

삶의 해석

요한복음 11장

수개월 전 지인의 아이가 많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를 위로하기 위해 만났습니다. 그는 나태한 신앙생활을 해 온 자신 때문에 아이가 이렇게 아프게 된 것이 아닌지 자책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다독이고 돌아왔지요. 그로부터 며칠 후 성경을 읽다가 이런 구절(요한복음 9장 1절~3절)을 발견했습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저는 그에게 이 기쁜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당신의 자녀가 아픈 것은 당신 탓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합니다.

그때만 해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 자녀의 병이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또 다른 친구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암 투병 중이었던 친구의 동생이 병세가 악화되어 고전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친구를 위해 기도하며 성경을 읽어가던 중 요한복음(11장 4절)의 또 다른 구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려내시는 일화였는데요, 나사로의 딱한 사정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저는 또다시 기쁜 마음에 친구에게 이 구절을 알려주었습니다. 당신 동생의 그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이 영광 받으심을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가장 완벽한 때에 가장 완전한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그 영광을 받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저의 현실의 문제로 깊은 좌절감에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돈이 무섭고, 세상이 무서웠습니다. 희망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현실과 미래에 그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그러자 저의 이런 상태를 보다 못한 초신자인 남편이 어떤 목사님의 설교를 추천해 주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크리스천이라면 세상의 기준으로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고 좌절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성경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삶을 성경적으로 해석한다?
 

삶을 성경적으로 해석한다는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통해 요셉이나 다윗의 삶을 보며 '그래. 수없는 고난이 있어도 결국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복을 주시겠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버티라는 말씀인지, 욥의 고난을 보며 '그래.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의 의미를 미물인 우리 인간이 다 알 수는 없지. 선하신 하나님을 믿고 인내하면 결국에는 보상해 주시겠지.' 하며 참으라는 말씀인지.


그러던 중 작은 사건을 통하여 과거의 상처로 제가 사람까지 두려워 불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와. 3종세트. 모두 갖췄네요. 돈과 세상만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사람까지 두려워하고 있었으니 정말 살맛이라곤 1도 없기에 모든 조건을 갖췄습니다. 왜 그런 두려움에 사로잡히는지 곰곰 생각해 보니 원인은 나의 부족함, 결핍이었습니다.


재물의 결핍.

능력의 결핍.

사랑의 결핍.

여기에 나사로나 맹인처럼 건강의 결핍까지 더하면 결핍 완전체 즉, 마땅히 죽을 이유가 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중 한 가지 결핍으로도 죽음을 택하는 사람이 많지요.


그런데 생각이 여기에까지 이르니 나사로의 누이들에게 하신 저 말씀이 '죽을병에 걸린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을병'이란 인간이 가진 결핍을 대표하는 한 가지 사례에 불과한 것이지요. 특히 사람의 힘이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결핍 중에서도 최강 결핍. 그런데 이러한 결핍의 문제, 결핍으로 인한 고통의 문제에 대하여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너의 그 결핍과 고통은 네가 죽을 일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인 나 예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일이다
 

'삶을 성경적으로 본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갑자기 이해가 몰려왔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던 맹인이 맹인 된 이유. 나타내려 하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곧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심'이었습니다. 세상에서는 그것을 '죽을병' 곧 실패, 장애, 무능이라고 결론을 낼 때에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그것을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실 곳'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전서(1:18)에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라고 말했구나!깨달아졌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크리스천들은 삶에서 결핍과 그로 인한 고통에 맞닥뜨렸을 때 세상 기준의 결론에 이르러 좌절하며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기대하며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종종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니라 오늘부터 하나님의 나라. 임하시옵소서.'
우리의 소망이 죽은 후의 천국뿐이라면 지금 이 순간, 이승을 살며 하나님의 앞으로 나아가야 할 동력은 너무나 미약하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저는 ST. 잡히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 현실적이고 속물적인 인간이니까요. 그런데 비로소 천국에 가기 전 현생의 삶 또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기대할 수 있는 너무나 명확한 증거를 찾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죽은 후, 영혼을 위하여 죄로부터만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이 고통 많은  세상으로부터도 구원하고 계신 겁니다. 이제야 비로소 무감하게 지나쳤던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립보서 4:4)는 말씀의 이유 또한 찾은 듯합니다.


하나님.

저의 부족한 모든 곳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곳이라는 하나님의 선포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저의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아버지.

저의 무능, 저의 한계, 저의 약함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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