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인 프로젝트란 무엇일까?
이 액션에 대한 피드백이 어마어마할 줄 그때는 예상하지 못했다.
2014년 8월 마켓플레이스에 프리랜서 등록을 하고 지원을 했던 총 3 개의 프로젝트.
첫 번째는 앞서 하나의 에피소드로 풀어냈던 "키보드 앱 무빙키 앱 프로모션 영상"이었고 다른 두 가지의 프로젝트는 공공기관의 캠페인 홍보영상과 "Send Anywhere"라는 한 스타트업(이스트몹)의 파일 전송 프로그램 앱 프로모션 영상이었다.
무빙키의 제작자로 선정이 된 게 8월 14일.
Send Anywhere의 제작자로 선정이 된 날은 8월 18일.
공공기관의 제작자로 선정된 날은 8월 19일.
3개 프로젝트의 제작자로 선정이 되기까지 채 약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너무 흥분되고 설레었다. 일단 저 3개를 다 해냈을 때 벌 수 있는 돈과 쌓일 포트폴리오를 생각했다.
그리고 지원한 3개의 프로젝트 전부 다 제작자로 선정이 되었다.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나의 포트폴리오가 인정을 받았다는 생각에 날아갈 듯 기뻤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마감 시한인데 세 개의 프로젝트 마감 전부 8월 말 또는 중순으로 되어있어서 거의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다. 이 문제에 대해서 마켓 플레이스 담당자에게 문의해보니 이 중에서 한 업체 정도는 마감 시한을 조금 늦출 수 있을 것 같다는 답변이 왔다.
그렇게 해서 정리된 결론은...
무빙키를 9월 초, 공공기관 영상을 9월 중순, 센드애니웨어 영상을 9월 말까지 각각 마감기한으로 잡아서 하나가 끝나감과 동시에 다른 하나를 맞물려서 시작하는 살인적인 프로젝트 스케줄이 잡혀버렸다.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다 마시고 얼음이 녹아버린 아이스커피의 연한 카페인처럼 거의 남아있지 않던 20대 말의 패기에 에스프레소 투샷과 얼음을 더 들이붓듯이 어거지로 프로젝트를 맡아버렸다.
우선 약 한 달 반 동안 프로젝트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이끌어나갈지 일단 스케줄부터 정리했다.
빼곡하게 차있는 약 한 달 반 동안의 정리된 캘린더를 보니 걱정부터 앞섰지만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이상한 자신감도 함께 생겨났다. 그동안 주말 반납은 물론 쉬는 날 없이 일 할 생각에 벌써 피곤해졌다.
그런데.... 하나 잊고 있던 게 있었다.
아뿔싸
9월 중 친구들과 함께 제주도 3박 4일 여행 스케줄이 잡혀있던 걸 잊고 있었다.
그걸 까먹고 일을 다 받아버린 것이다. 이제 와서 일도 여행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뭘 어쩌겠어? 다 해내면 그만이야.
프로젝트 스케줄을 여행 일정과 겹치지 않도록 한번 더 수정해보니 어떻게 진행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여러 업체들의 일을 받아오면서 경험한 바로는...
국가기관, 한마디로 정부, 그리고 공공기관과 같은 곳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가 사실상 제일 힘든 순위 탑 3 안에 들어간다. 지금이야 경험이 쌓여서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우위를 선점할 수 있도록 대화하는 스킬이 늘거나 아니다 싶으면 아예 일을 받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이 때는 이제 막 사회 첫 발을 내디딘 햇병아리 시절이었다. 당연히 아무것도 몰랐고 그저 클라이언트가 시키는 대로 네네 하면서 작업하던 시절이었다.
지금까지 공공기관과 일하면서 배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 일단 잔 수정이 많다.
정책홍보영상을 만들고 있는 와중에 그 정책의 내용이나 홍보문구 등이 수시로 변경되거나 바뀐다. 그러다 보니 만들면서도 일반적인 수정 외에도 자잘한 수정이 많이 생긴다.
두 번째. 견적 후려치기가 꽤 있는 편이다.
세 번째. 하대가 기본적으로 깔려있거나 기본적인 업무 매너가 없는 담당자들이 때때로 있는 편이다.
네 번째. 프로젝트가 끝나고도 한 두 달을 더 귀찮게 하는 경우가 있다.
한창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여행을 떠났으니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는 충분히 상상이 될 것이다.
여행 내내 클라이언트의 이메일과 전화를 수시로 받아야 했다. 여행 둘째 날부터 시작된 그 연락으로 인해 이미 여행의 기분을 다 망쳐버린 것은 물론 돌아가서 해야 할 업무에 대해 생각하니 제대로 스케줄에 맞춰서 프로젝트를 끝낼 수 있을까에 대한 중압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나 조차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여행 중에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온 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땀띠인가 싶다가 몸 전체로 퍼지자 무슨 심한 병에 걸린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결론은 스트레스성 피부질환이었다.
결국 그 스트레스와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여행 마지막 날 밤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눈물샘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같이 술 먹다가 갑자기 온갖 하소연을 쏟아내며 눈물 흘린 나를 보고 친구들은 참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어쨌든 친구들의 위로와 도움으로 술을 마시며 안 좋았던 감정은 알코올과 함께 바다로 날려 보내고 다음날 좋은 기분으로 무사히 서울로 귀국했다. 결국 서울 올라와서 피부과에 가야 했지만...
여행 후 프로젝트는 무사히 잘 마무리되었을까?
여행 후 약 3주 동안 쉴 새 없이 일하며 결국 기한 내에 남은 두 개의 프로젝트는 모두 무사히 마무리지었다.
두 클라이언트 모두 결과물에 대해 만족스러워했고 결국 두 프로젝트 다 나름대로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렇다면 개인적으로는?
동시에 받았던 3개의 프로젝트 중 개인적으로 유일하게 아쉬웠던 프로젝트가 하나 있는데 아마 예상했다시피 공공기관의 프로젝트다.
아마 디자이너라면 한 번쯤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거다.
업체에 여러 개의 시안을 보내야 하는데 그 여러 개의 시안 전부 공을 들이기에는 시간도 부족하거니와 시간이 충분해도 낭비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왜냐하면 이미 답은 정해져 있으니까.
누가 봐도 이 시안이 채택될 것이라는 디자이너 스스로의 판단이 설 때가 꽤 있다.
그 이유는 공을 제일 많이 들였을 수도, 또는 결과물이 제일 잘 나와서 그럴 수도 있고 클라이언트가 요구한 사항에 제일 부합하는 시안이 이미 나왔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것 말고도 이유가 아주 많다. 그런데 만약에 만들어놓은 시안은 2가지인데 클라이언트는 무조건 3개 이상의 시안을 요구하는 상황이라면 결국 그 추가될 시안은 구색 맞추기 용으로 힘을 많이 빼고 작업할 때가 있다.
어차피 어떤 시안이 채택될지는 뻔하니까.
당연히 채택되어야 할 공들인 시안은 버려지고 가장 대충 만들었던 구색 맞추기용 시안이 최종 결정된 것이다.
당연히 최종 결과물에 대해 클라이언트는 대만족을 했지만 그와 반대로 내 입장에서는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물이 되고야 말았다. 어쨌든 돈을 받고 영상을 만들어주는 게 내 역할이니 나의 소임은 제대로 하기는 했다.
여기서 깨달은 결론은 클라이언트와 제작자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이 꽤 어려운 일이라는 것.
디자이너라면 보통 본인의 생각보다는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방향대로 작품을 만들다 보니 본인이 추구하는 색깔이나 방향성과는 다른 경우가 많아서 양 쪽 다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만들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설사 양쪽 다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왔다 하더라도 그것 또한 100프로 성공한 프로젝트라고 보기는 어렵다.
둘만 만족했다고 해서 과연 그 프로젝트가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프로젝트의 목적은 결국 대중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이다둘만 만족시켜서 될 일이 아니라 대중들이 이 영상을 보고 우리가 홍보한 서비스 또는 브랜드, 제품이 선택을 받아야 성공적인 프로젝트의 마무리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영상을 볼 수 있게 해야 하는 게 제작자로서의 첫 번째 역할일 것이다.
그다음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이 영상을 중간에 끊지 않고 끝까지 보게 만들지, 또 영상을 다 보고 난 후 서비스 또는 브랜드에 흥미를 가지게 할지는 이 일을 업으로 하고 있는 동안은 아마도 평생 가지고 가야 할 숙제일 것이다.
그래도 남은 또 하나의 프로젝트였던 “센드애니웨어” 앱 프로모션 영상은 클라이언트와 제작자, 대중까지 삼자가 만족한 꽤 성공적인 프로젝트였다고 생각한다.
그때 제작했던 영상은 20만이 넘는 유튜브 조회수라는 소기의 성과도 얻을 수 있었다.
결국 이 때문이었는지 그 다다음 해 이 회사와 다시 한번 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