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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밝음 Jun 12. 2024

나에게 남기는 낙서

고생했다는 한마디 건네고 잠들 수 있다면

거창하게 써야 할 것 같은 마음을 고이 접어두고 낙서하듯 글을 써본다. 이 페이지가 그냥 너덜거리는 빈 종이라면 어떤 낙서를 하게 될까? 상상을 해보려 노력하지만 역시 백지는 어렵다. 청정한 곳에 획을 긋는 행위는 대단한 용기다. 배경이 나에게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오로지 무언가를 휘갈기려는 마음만 생생할 때 가능하다. 


갑자기 가게가 떠오른다. 벽면 곳곳에 낙서가 되어 있는 가게. 특히 오래된 맛집에 이런 낙서가 많았다. 


"OO이 다녀감"

"OO아 사랑해"

"OO ♡ OO"


이 유명하고 괜찮은 곳에 내가 다녀갔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은 욕구. 자기 존재의 각인 욕구도 삶이 언젠가 끝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증거다. 사라질 것을 알고 사라지기 전에 사라지지 않을 방법을 강구하는 본능. 원초적 두려움과 사랑에서 기인한 행동이다.


맛집 벽면의 낙서를 떠올리며 이 페이지가 그 벽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미 이런저런 글들이 쓰여있는 곳 귀퉁이에 남기는 낙서라면 조금 쉽게 적을 수 있겠다. 오늘 이곳에 남기고 싶은 한마디. 


"고생했다."


내가 나에게 듣고 싶은 말이었는데 오래 해주지 못했다. 부모님께 듣고 싶었던 말이라는 변명을 하며 서운해하고 미워하기만 했다. 내 진짜 마음을 찾아 그 속으로 들어가 보니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 내가 살고 있었다. 결국 서운했던 마음은 내가 나에게 가진 마음이었다. 내가 나를 바라봐주지 않아서 생긴 미움이었다. 나를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나의 수고를 알아봐 주지 않고, 지금의 나를 인정해 주지 않아서 생긴 비뚤어진 마음.


요즘 매일 칭찬 일기를 쓰고 있다. 

"잘했어", "훌륭해", "애썼어", 고마워" 


내가 오늘 하루 어떤 일들을 했는지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나다. 그러니 나를 칭찬해 줄 수 있는 것도 나뿐이다. 시선이 외부에 있으면 나는 늘 부족한 사람이 된다. 그런데 시선을 내부로 돌리면 나는 충분히 많은 일들을 해낸 사람이 된다. 내가 하는 크고 작은 일들을 하찮게 여기지 않는 내가 되고 싶다. 하루를 열렬히 보내고 잠들기 전에 나에게 수고했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다면 열심히 사는 것도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절대 절대 잊지 말아야지.


'나는 나를 위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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