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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밝음 Oct 07. 2024

따스한 그림

나의 그림 취향에 대하여

"저는 그림 잘 몰라요."


 지인이 운영하는 예술독서 모임에서 내가 내뱉은 첫 말이다. 예술의 '예'자도 모르는 사람인 내가, 푸른 바다의 표지와 『화가가 사랑한 바다』라는 제목에 끌려 덜컥 신청해 버렸다. 대신 밑밥을 먼저 깔았다. 모른다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을 걸 알지만, "당신들과의 대화에 성실히 끼어들 수 없는 것이 내 마음의 문제는 아니에요."를 전하고 싶었다.  


 모임 기간 자유롭게 책을 읽고 카톡방에서 내용과 그림에 대한 감상을 나누었다. 잘 알지 못하는 미술 역사와 시대에 관한 이야기, 이름 모를 외국 작가명과 화풍에 관한 대화가 오갔다. 아무리 눈을 비비고 쳐다봐도 내 눈엔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대체 어떤 심미안을 가진 건지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그림해석 능력에 감탄하기에 바빴다. 그렇지 않아도 '나는 잘 모른다.'의 밧줄에 묶여 있는데 사람들이 주고받는 박식한 대화에 나는 그만 쪼그라들어 사라질 것만 같았다.


 내 삶의 행보와 연결고리가 없는 그림이라는 영역에 관심 두게 된 것은 어느 한 명의 화가 때문이었다. 마흔 넘어 처음으로 나를 찾겠다며 온갖 심리학, 영성 책들을 뒤적거리고 수업까지 들으러 다녔다. 그렇게 '나 찾기'라는 또 하나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던 어느 날 '자기분석'이라는 단어에 꽂혀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검색했다. 그중 안경을 쓰고 수염을 기른 한 남자가 한 손에 인형을 들고 있는 자화상이 눈에 띄었다. 그의 이름은 '칼 라르손'. 스웨덴 화가로 오늘날 이케아 디자인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


 우연히 알게 된 그의 작품들을 보며 그림이라는 세계에 마음을 가까이 두게 되었다. 그의 그림은 달콤했다. 늘 가슴 속으로 꿈꾸던 장면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림 속에는 사랑스러운 가족들과 아름다운 가정생활이 환상처럼 펼쳐져 있었다. 내가 추구한 유일이면서 전부이기도 한 장면들. 때로는 갖지 못해 집착과 괴로움이 되기도 했던 삶. 칼 라르손이 초대한 그림 세계는 내가 그토록 갈구했던 에덴이기도 했다. 평화롭고 단정한 가족들과의 일상, 자기답게 성장하는 아이들의 생생한 모습들, 함께 집안 곳곳을 정성스럽게 여기는 마음까지 모두 그림에 담겨 있었다. 그런 행복의 공간으로 초대받는 일은 누구에게도 알려주고 싶지 않은 나만의 사치였다.


 그림 세계의 내 첫사랑이 되어버린 칼 라르손의 작품을 계기로 다른 그림들에 대한 관심도 생겨났다. 세상에 경이로운 작품이 넘치고 수많은 화가가 있지만 내 마음속에는 아직 세 명의 작가만이 살아 숨 쉰다. '칼 라르손',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세 명의 화가가 가진 공통점은 그림에서 온화하고 따스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의 빛, 사람과 사랑을 화풍에 옮겨 담아준 사람들. 그들 덕분에 내가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는 평범한 일상의 장면과 순간들을 한껏 누릴 수 있다. 안온한 것들이 좋다. 가끔은 힘 있고 강인한 것들이 부럽기도 하지만, 약하고 부서지더라도 품을 수 있고 열릴 수 있는 따스한 것들이 좋다. 그림을 안다고 하기에는 지독히 편협한 나의 취향이지만, 예술이란 다량의 정보와 지식이 아니라 내 안과 만날 수 있는 살아 있는 행위라고 일컫는다면 나는 당당히 예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저는 그림 잘 몰라요."

"그런데 그림을 좋아해요."


칼 라르손 - Holiday Reading/1916
클로드 오스카 모네 - 절벽위의 산책/1882
오귀스트 르누아르 - 피아노 치는 소녀들/1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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