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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밝음 May 11. 2024

비 오는 날의 선물

받는 것, 가진 것, 감사한 것이 많은 생

아파트 단지의 가장 구석진 101동 주차장 뒤편으로 가면 작은 샛길이 있다. 가도 되는 길이 맞나 싶을 만큼 좁다란 그 길의 정체는 동네 뒷산으로 연결된 길이다. 이사 올 당시에는 없었는데 3년 전쯤에 아파트 관리실에서 만들었다. 산과 막혀 있던 철조망을 뜯고 출발 지점에는 계단까지 조금 만들어 주민들이 편리하게 산으로 올라갈 수 있게 해 주셨다.


산이라고 하기에는 높이가 낮은 120M 정도의 동산이다. 하지만 이 동산이 동네 주민들에게 꽤 인기가 많다. 어르신들이 운동할 수 있는 생활체육 운동시설이 마련되어 있고, 배드민턴장도 있어서 동호회 하시는 분들의 기합 소리가 끊기지 않는다.  우리 집은 산의 중간쯤에 자리 잡고 있는데 산길을 올라가서 오른쪽으로 걸으면 소박한 절이 하나 있고 그 너머엔 박물관이 있다. 반대편인 왼쪽으로 걸으면 대학교 캠퍼스로 이어진다. 별것 아닌 뒷동산이지만 이용할 게 많고 동네 이곳저곳과 요긴하게 이어져 있다. 어떤 목적이 없더라도 쉽게 산에 올라 자연의 공기와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는 게 좋다. 이 산이 있어서 코로나 시기에도 아이들과 답답하지 않게 산책하러 다니며 살아낼 수 있었다. 고마운 산이다.


뒷산에 갈 때마다 기분이 좋다. 답답하고 정신없는 도시인의 삶에서 잠깐의 노력으로 금방 고요와 평화의 삶으로 이동시켜 준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분 좋은 날은 비가 오고 난 다음 날에 산에 갈 때이다. 비가 내린 후의 산은 생명력이 몇 배나 깊어져 있는 느낌을 받는다. 걸을 만한 정도로 땅이 적당히 말라 있지만 아직 그 속은 촉촉한 비를 머금은 상태다. 숲 전체에 진동하는 나무 냄새, 흙냄새를 맡으면 행복감이 절로 피어난다. 자연의 원초적인 향기는 늘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기분이 좋아지게 한다. 지친 몸과 마음이 저절로 치유되는 기분이 든다.


사실 비가 내린 후 진해지는 흙냄새는 페트리코어라 불리는 것 때문이다. 페트리코어의 주성분은 토양에 있는 박테리아에 의해 만들어지는 지오스민이라는 화학물질이다. 지오스민에 5분만 노출되어도 행복 호르몬인 혈중 세로토닌 수치가 높아지고 염증 지표가 감소한다고 한다. 대지의 향기에 이미 우리에게 도움 되는 것들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 참 신기하다. 세상은 이미 인간이 필요한 모든 걸 주었는데 우리가 몰라서 그걸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미 존재하는 보물들은 찾지 못하고 자꾸 인공적인 것들을 만들어 가지려는 습성은 편리와 이익을 위한 것일 테다.


학생 땐 비 오는 게 그렇게 싫었는데 이제는 비 오는 날이면 일부러 우산을 쓰고 밖으로 나간다. 천연 치료제가 온 세상에 뿌려지고 있으니 주어진 선물을 한껏 만끽하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다. 일방통행 사랑이 지겹지도 않을까. 꽃과 나무, 바람과 흙, 태양과 공기. 자연은 여전히 아무런 대가도 없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고 있다. 가진 것도, 받는 것도, 감사할 것도 너무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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