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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지 Jan 10. 2021

삐끼들에게 배운 것

『더 해빙』을 읽고

삐끼의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 하는지 모르지만, 삐끼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미지가 있다. 인도의 삐끼들. 돈을 사이에 두고 불편한 기색 하나 없이 쉴 틈 없이 밀당하는 이들. 그들을 만나면 한 번쯤은 듣는 말이 있다.


You happy? Me happy,
We ALL happy!


거래가 성사되었을 때 그들은 누구보다 기뻐한다. 나의 happy까지 멋대로 정의해버리며 들뜬 그들을 보고 있자면 여지없이 내가 손해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난 정당한 소비자 가격을 치르는 것이 거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라 배웠기 때문이다. 제값 대신 웃돈을 얹은 값에 거래하는 것은 사기를 당하는 것이고, 사기당할 뻔했던 그 돈을 아껴야 내 삶이 윤택해지는 것이라 배웠다. 그래서 그들과 거래할 때, 그들이 외치는 happy 속에 나의 happiness는 종종 없었다. 제값을 준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은 잠에 들 때까지 내 머리 한구석을 들쑤셨고, 날 얼마나 멍청하게 보았을지 한국인을 ATM 기계처럼 보는 것은 아닐지 내 돈 주고 산 소중한 물건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때가 많았다. 그렇게 날마다 다짐했다. 호구 잡히지 말자. 호구 잡히더라도 잡혔음을 인지하자.


하지만 밤새워 고민한 나의 다짐이 무색하게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제값보다 비싸게 물건을 산 적이 있다. 그때의 난 너에게 속은 것이 아니라 그저 이 물건이 빨리 필요한 것이라는 티를 팍팍 내며 썩 좋지 않은 표정으로 돈을 건넸다. 돈을 받은 상인은 표정이 좋지 않았다.

... 분명 제값보다 많이 받았는데, 기분이 좋아야 하는 거 아니야?


제값인지 아닌지 모를 물건을 산 적도 있다. 난 값을 셈하기 전에 그 물건을 소유하게 됨에 그저 행복했다. 내 돈으로 그 물건을 살 수 있음이 기쁠 뿐이었다. 상인의 표정은 빛났고, (절대로 나를 등쳐먹음에 뿌듯한 얼굴이 아니었다) 기념품 팔찌 한 개를 내 손목에 채워주었다.

... 뭐야, 이렇게 장사해도 돼? 남는 게 없는 거 아니야?



매일 마주치는 그들을 이해해보려 하기 시작했다. 물론 높은 가격에 물건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지만, 일반적인 사기꾼들과는 느낌이 달랐다. 부르는 게 값이 되는 갑질도 아니었으며, 날 돈으로 보는 속물도 아니었다. 그들은 나를 속여 돈을 더 받았다는 것이 기분 좋은 것이 아니라, 마땅히 받아야 할 돈인 노동의 대가를 받아내고야 만 것이 더 기쁜 것 같았다. 그들의 순수한 기쁨을 일부 나눌 수는 없는 건가. 아, 돈이란 대체 뭐길래 친구가 될 수도 있었던 우리를 마주치지 말았어야 하는 앙숙으로 만드는가.


돌이켜보면 돈을 쓸 때 늘 비슷한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다. '비싸다, 돈이 아깝다, 이걸 사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다, 과연 사도 될까? 살 만한 돈이 없다' p.51

이전에는 월급이 들어온 것을 봐도 늘 부족한 느낌이었어요. 돈을 쓸 때는 늘 죄를 짓는 것 같았고요. 그런데 이제 작은 것을 사도 기분이 너무 좋아요. 돈이 이렇게 즐거움을 준다는 걸 예전에는 왜 미처 몰랐던 걸까요? p.147

되돌아보니 제가 느끼는 즐거움보다 돈에 대한 긴장이 우선이었네요. p.190


더 해빙에서는 물질인 돈보다 에너지의 감정에 주목하며 돈을 쓰는 순간 가지고 '있음'을 충만하게 느끼는 것이 부자가 되는 가장 간단하고 효율적인 방법이라 소개한다. '돈'에 대해 생각할 때에 '부정'의 연결고리를 끊고 '긍정'과 연결해 감정이라는 에너지로 돈이라는 물질을 끌어올 수 있다고 말한다.


난해한 말일 수 있지만 언제부터인가 거래 앞에서 물건, 돈만이 집중대상이고 관계, 기분과 같은 형체 없는 것들은 뒷전이 되어버린 것은 확실하다. 물건과 돈만을 생각하면 앞서 소개한 삐끼들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반응들뿐이다. 하지만 관계와 기분까지 인식대상에 포함한다면 그들의 반응은 달리 보인다.


진짜 부자에게 돈이란 오늘을 마음껏 누리게 해주는 '수단'이자 '하인'이에요. 반대로 가짜 부자에게 돈은 '목표'이자 '주인'이죠. p.102


You happy? Me happy, We ALL happy!

나의 happiness도 그들에겐 중요한 것이었다. 너와 내가 행복하면 우리의 거래는 성공적인 것이다. 또 단순히 You and me, 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너와 나, 그리고 너의 편을 들어주던 삐끼, 나를 너에게 데려간 또 다른 삐끼, 우리를 구경하는 주변의 수많은 삐끼들까지 그 공간의 모든 에너지, ALL, 모두가 행복해진다는 뜻이었다.


그들은 돈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나 보다. 나에게 알려주려 했으나 본래 알고 있던 것들의 벽을 미처 다 깨지 못한 나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깔깔 웃으며 거래하는 나와 돈방석에 앉아있는 네가 되어있기를, 그렇게 거래가 인연이 되어 서로의 행복을 꾸준히 빌어주고 상생의 길을 걷는 우리가 되어 있기를 빌어본다.


개인들은 무의식 속에 자신이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은 능력과 자원을 가지고 있다. 불행하게도 이것을 알지 못해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지 못한다. -밀턴 에릭슨- p.268


더 해빙, 344p, 이서윤•홍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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