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미상 Jun 18. 2023

마음이 힘들 때, 반드시 하는 것.

   마음이 답답할 때, 청소기를 돌리고, 먼지를 닦고, 부지런히 청소를 한다. 눈앞의 쓰레기들이 하나둘씩 사라질 때, 어질러진 옷들을 정리할 때, 아무렇게나 놓인 물건들이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갈 때, 꼭 내 마음도 하나둘씩 정리되는 듯했다. 요즘도 삶이 지치는 날에는 어김없이 청소를 한다. 부디 온갖 잡다한 이 마음들이 비워지길 바라며 말이다.


   한창 임용 고시를 준비할 때 여러 생각들로 공부에 집중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런 날에는 집과 거리가 꽤 있는 산책로를 혼자 걸었었다. 그 길에서 때론 선생님이 된 교단에서의 모습을 상상했고, 또 어떤 날은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이후의 삶을 떠올렸다. 종종 울기도 했다. 시원하게 울고 나면 다음 날 공부할 용기가 생겼다. 그래서 공부가 조금이라도 안 되는 날에는 일찌감치 책을 덮고, 산책을 나섰다.


   막상 시험에 붙으니, 세상이 내 것일 줄 알았는데 또 그렇지도 않았다. 나는 겨우 이제 막 하나의 관문을 연 것이었고, 직장에서 집에 돌아오면 연신 멍을 때리기 일쑤였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임용 공부를 하느라 못 읽었던 책들을 하나둘씩 읽어 나갔다. 햇빛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침대 위에서, 삶의 부표가 될만한 문장들을 많이 만났다. 이후로도 일이 잘 안 풀릴 때, 내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은 날에는 책을 여유로이 읽는 순간만을 기다렸다. 특히 차를 산 이후로는 마음에 꼭 드는 카페를 발견해서, 차를 끌고 카페에서 책을 읽었다.


   물론 책을 읽기 싫은 날도 있었다. 잡다한 업무로 인해 글을 읽는 것 자체가 진절머리 날 때도 많았으니까. 그럴 때는 영화를 봤다. 드라마를 보자니 긴 호흡을 따라가기가 벅찼고, 영화가 딱 적당했다. 영화를 고를 때는 세상 신중해진다. 맥주 한 캔과 안주는 일찍이 준비됐고, 좋은 영화만 보면 완벽하다. 하지만 좋은 영화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또 무조건 별점 5점의 영화를 보자니 내 안의 숨어있는 반골 기질이 튀어나온다. 나의 안목을 믿고, 영화의 제목과 한 줄 감상평으로 영화를 고른다. 덕분에 낮은 별점의 영화여도 적어도 내게는 5점인 영화들도 꽤 만났다. 그럴 때면 역시,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용기 있게 영화를 선택한 내 자신이 좋아진다. 그리고 기분 좋게 잠에 든다.


   그리고 그 끝에는 글쓰기가 있었다. 유난히도 마음에 청소가 필요한 날에는 폭발적으로 글을 썼다. 내게 고단한 감정들을 해소하는 마지막 배출구는 글쓰기였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감정들을 여러 단어들로 이름을 붙여가며 글을 쓸 때, 어지러운 마음들이 정리된 듯했다. 그렇게 쓴 글이 결국에는 마음의 그릇을 넓힌 듯했다.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찾아와도 결코 쉽게 어지럽혀지지 않을 만큼 넓게 말이다.


   살아 보니, 어떤 이유로든 마음이 지치는 때가 오는 것 같다. 사람, 일, 돈, 마음, 삶. 무엇하나 쉽게 풀리는 것이 없으니 말이다. 오래전에 나는 마음이 불편한 것 자체를 직면하기를 어려워했다. 다행히도 어느 순간부터 지친 내 마음을 어떻게 달래야 하는지 알게 됐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산책에 나서고, 책을 읽고, 청소를 하고, 영화를 보고, 글을 썼던 이유는 오롯이 내 마음을 달래기 위함이었다.


   여전히 나는 삶이 미워질 때마다 내 마음을 달래기 위한 것들을 온전히 행한다. 걱정되고 두려운 것들 투성인 세상에서, 잠시나마 그런 것들에서 달아나 내 마음을 달래는 것이 참 좋다. 결국 그런 행위들이 상황 자체를 해결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렇게 잠시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는 게 위안이 된다. 물론 그렇게 도망치다 보면 언젠가 다시 돌아와야 한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잔뜩 얻고 오기에, 씩씩한 걸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삶과 유한함은 같은 빛깔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