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답답할 때, 청소기를 돌리고, 먼지를 닦고, 부지런히 청소를 한다. 눈앞의 쓰레기들이 하나둘씩 사라질 때, 어질러진 옷들을 정리할 때, 아무렇게나 놓인 물건들이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갈 때, 꼭 내 마음도 하나둘씩 정리되는 듯했다. 요즘도 삶이 지치는 날에는 어김없이 청소를 한다. 부디 온갖 잡다한 이 마음들이 비워지길 바라며 말이다.
한창 임용 고시를 준비할 때 여러 생각들로 공부에 집중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런 날에는 집과 거리가 꽤 있는 산책로를 혼자 걸었었다. 그 길에서 때론 선생님이 된 교단에서의 모습을 상상했고, 또 어떤 날은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이후의 삶을 떠올렸다. 종종 울기도 했다. 시원하게 울고 나면 다음 날 공부할 용기가 생겼다. 그래서 공부가 조금이라도 안 되는 날에는 일찌감치 책을 덮고, 산책을 나섰다.
막상 시험에 붙으니, 세상이 내 것일 줄 알았는데 또 그렇지도 않았다. 나는 겨우 이제 막 하나의 관문을 연 것이었고, 직장에서 집에 돌아오면 연신 멍을 때리기 일쑤였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임용 공부를 하느라 못 읽었던 책들을 하나둘씩 읽어 나갔다. 햇빛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침대 위에서, 삶의 부표가 될만한 문장들을 많이 만났다. 이후로도 일이 잘 안 풀릴 때, 내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은 날에는 책을 여유로이 읽는 순간만을 기다렸다. 특히 차를 산 이후로는 마음에 꼭 드는 카페를 발견해서, 차를 끌고 카페에서 책을 읽었다.
물론 책을 읽기 싫은 날도 있었다. 잡다한 업무로 인해 글을 읽는 것 자체가 진절머리 날 때도 많았으니까. 그럴 때는 영화를 봤다. 드라마를 보자니 긴 호흡을 따라가기가 벅찼고, 영화가 딱 적당했다. 영화를 고를 때는 세상 신중해진다. 맥주 한 캔과 안주는 일찍이 준비됐고, 좋은 영화만 보면 완벽하다. 하지만 좋은 영화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또 무조건 별점 5점의 영화를 보자니 내 안의 숨어있는 반골 기질이 튀어나온다. 나의 안목을 믿고, 영화의 제목과 한 줄 감상평으로 영화를 고른다. 덕분에 낮은 별점의 영화여도 적어도 내게는 5점인 영화들도 꽤 만났다. 그럴 때면 역시,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용기 있게 영화를 선택한 내 자신이 좋아진다. 그리고 기분 좋게 잠에 든다.
그리고 그 끝에는 글쓰기가 있었다. 유난히도 마음에 청소가 필요한 날에는 폭발적으로 글을 썼다. 내게 고단한 감정들을 해소하는 마지막 배출구는 글쓰기였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감정들을 여러 단어들로 이름을 붙여가며 글을 쓸 때, 어지러운 마음들이 정리된 듯했다. 그렇게 쓴 글이 결국에는 마음의 그릇을 넓힌 듯했다.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찾아와도 결코 쉽게 어지럽혀지지 않을 만큼 넓게 말이다.
살아 보니, 어떤 이유로든 마음이 지치는 때가 오는 것 같다. 사람, 일, 돈, 마음, 삶. 무엇하나 쉽게 풀리는 것이 없으니 말이다. 오래전에 나는 마음이 불편한 것 자체를 직면하기를 어려워했다. 다행히도 어느 순간부터 지친 내 마음을 어떻게 달래야 하는지 알게 됐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산책에 나서고, 책을 읽고, 청소를 하고, 영화를 보고, 글을 썼던 이유는 오롯이 내 마음을 달래기 위함이었다.
여전히 나는 삶이 미워질 때마다 내 마음을 달래기 위한 것들을 온전히 행한다. 걱정되고 두려운 것들 투성인 세상에서, 잠시나마 그런 것들에서 달아나 내 마음을 달래는 것이 참 좋다. 결국 그런 행위들이 상황 자체를 해결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렇게 잠시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는 게 위안이 된다. 물론 그렇게 도망치다 보면 언젠가 다시 돌아와야 한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잔뜩 얻고 오기에, 씩씩한 걸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