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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shirley Jun 29. 2022

3. 서울자취방 구하기 잔혹사

내 한 몸 누일 곳이 3평짜리 원룸이라니


 나는 항상 집은 직장과 가까워야 한다는 나만의 철칙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30분 안팎으로 출퇴근을 할 수 있는 곳에 집을 구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직장이 역삼역 주변이라 2호선 라인에서 집을 구해야 그나마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는 게 가능했다. 버스로 출퇴근을 하는 건 사실상 도박에 가까웠다. 일단 출퇴근시간의 강남 대로변은 언제든 정체될 가능성이 있는 곳이었다. 게다가 버스가 내려주는 강남역에서 회사까지는 걸어서 족히 15분은 걸리는 거리였고 그마저도 도로가 막히면 거의 지각을 하지 않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리기를 해야했다. 특히나 더운 여름땡볕에서 회사에 도착하면 거의 땀으로 샤워를 하다시피 해야했다.      


 서울대 입구와 건대 입구를 고민하다, 결국 서울대 입구쪽에 집을 알아보러 다니기로 결정했다. 부동산 업자를 소개받기도 했고, 부동산 어플을 알아보고 직접 연락해서 집을 보러다니기도 했다. 처음 보러간 집은 4평도 채 나오지 않을 원룸이었다. 그럼에도 월세나 전세가격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지하철역까지도 걸어서 15분이 걸린다는데 역세권이라니. 두 번째로 본 방은 산 꼭대기에 있는 집이었다. 눈이라도 오는 날이면 길이 얼어서 이동이나 할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가파른 언덕에 위치한 집은 1.5룸이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로 보게 된 집은 반지하. 가격은 저렴했지만 햇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반지하에서 도저히 살 자신은 없었다. 그렇게 몇 주간의 주말을 집을 보는데 투자했고, 결국 발품을 많이 팔아야만 좋은 집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평일 퇴근 후에도 집을 보러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에 들면서 예산에 맞는 집을 찾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고, 내 체력 역시도 슬슬 바닥이 나기 시작했다.

 몇 번을 집을 보러다니며 이렇게 서울바닥에 집이 많은데 왜 내 집은 없는걸까, 문득 서글퍼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 조건에 100% 딱 맞는 집은 없을 것이며, 뭐 하나는 포기해야 집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수많은 집들을 둘러보다가 마지막으로 본 집은 지하철역에서도 가까웠고, 편의시설도 가까운데다 신축건물이었다. 엘리베이터도 있었고 4층이라 나름 고층이기도 했다. 하지만 실평수가 겨우 3평 남짓 나올 크기의 방이었다. 고시원보다 조금 넓을 정도의 크기. 화장실 역시 샤워할 공간조차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싱크대와 주방, 가구는 냉장고, 옷장이 다였다. 지금까지 타지생활을 하며 집을 많이 옮겨봤지만 이렇게 작은방, 가구가 없는 방은 처음이었다. 침대와 책상이 들어갈 공간이 나오기는 할까, 걱정될 정도의 크기였다. 하지만 공간이 좁다는 거 외에는 내가 원하는 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집이었고, 계약을 결심했다. 그러나 계약을 하려고 하자 근린생활시설이라는 명목으로 45만원이나 되는 중개비를 요구했다. 원래 원룸계약은 중개비가 20만원대로 알고있었는데 지방에서 왔다고 이렇게 사람을 벗겨먹다니, 정말 기가 찰 노릇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방을 보러다닐 힘도 없었고 어딜가나 내 돈을 노리는 사람들 밖에 없다는 생각에 울며 겨자먹기로 계약을 하기로 했다. 서울에서 잠깐 눈을 감으면 코베어간다는 사실을 이렇게 생생하게 경험하게 될 줄이야.     


그래도 내 공간이 생긴다는 설레임에 예쁜 가구를 사고 싶었던 내 욕심의 결과는 터무니 없이 큰 흰색 테이블을 구매하기에 이르렀다. 그 예쁜 흰색 테이블은 옷장문을 열때도, 냉장고 문을 열때도 공간이 없어서 늘 이리저리 밀어내느라 흠집이 하루에도 몇 번씩 생겼다. 추가로 필요한 전자렌지 선반과 조그만 의자, 그리고 침대 머리맡의 테이블 베드를 넣고나니 집안이 꽉 찼다. 이사를 마치고 나는 그저 헛웃음이 나왔다. 이 3평짜리 집이 보증금 3천에 45만원의 월세라니, 말레이시아에서는 30만원정도의 월세에 이 집의 3배가 되는 집에서 혼자 살았었는데. 절대 그리워질거 같지 않던 말레이시아가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집 앞의 24시간 빨래방의 간판이 너무 밝아 도저히 불을 꺼도 어두워지지 않던 3평 남짓의 자그마한 내 자취방. 미래에 대한 그 어떤것도 장담할수 없었지만, 부디 내 미래는 3평짜리 방에 갇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던 서울에서의 하루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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