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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shirley May 01. 2023

3. 첫날부터 인종차별, 호된 골드코스트 신고식

- 인류애를 잃었던 백팩커스의 악몽

호주 석사 유학을 결심한 후, 처음으로 접해보는 아이엘츠 목표점수를 달성하는데까지 4개월이 걸렸다. 지금까지 쳐본 토익이나 오픽과는 다르게 리스닝/리딩/스피킹/라이팅을 모두 공부해야 하는 아이엘츠는 쉽지 않은 관문이었고, 겨우 목표했던 아이엘츠 점수를 달성해 제출, 학교에서 입학허가가 드디어 나왔다. 파운데이션 과정으로 3개월 어학과정을 포함해 8월부터 학교 수업이 시작되는 일정. 드디어 나는 골드코스트로 가는 비행기를 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최종 입학허가가 나온건 어학과정 개강 3주가 남은 시점이었고, 부랴부랴 3주만에 출국준비를 마치고 2022년 7월 24일, 골드코스트로 가는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전 직장이었던 인천공항에 도착하고 출국수속을 하는내내 출국을 한다는 사실도, 국제선을 타는것도, 믿기지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해 멈춰진 시간이 이제서야 다시 흐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싱가폴을 경유하면서 승무원시절 동기를 싱가폴 공항에서 짧게나마 만나자 감회가 새로웠다. 이제는 싱가폴 베이스인 항공사에서 다시금 승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그녀는 내게 앞으로의 유학을 응원한다는 카드와 선물을 건네주었고, 그 따뜻한 응원에 힘입어서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정말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비행기에서 꼬박 새우잠을 자고 밤을 지나 아침 7시경, 끝없이 펼쳐진 해안이 상공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2년 만에 밟는 호주땅. 코로나로 인해 2월 골드코스트 비행을 마지막으로 오지 못했으니 정확하게 2년 반만이었다.      


입국심사는 생각보다 간결했고, 짐을 찾고, 우버를 불러 공항 바로 옆의 백팩커스로 이동했다. 도착하자 가장 큰 문제는 체크인을 하는거였는데 설마 엘리베이터도 없을거라 생각도 못했던 백팩커스, 30키로에 육박하는 캐리어를 도저히 혼자 옮길수 없어 망연자실하고 있던 그때, 유럽출신으로 보이는 남자애가 도와줄까? 라고 흔쾌히 도와줬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로비에서 잠을 잘 뻔했다. 그렇게 들어선 6인 1실 도미토리는 정말 낡았고 콘센트 위치조차 락커 안에 있어서 제대로 핸드폰 충전조차 하기 힘들었다.  

생각보다 열악한 시설에 실망도 잠시, 피곤이 밀려와 짐을 풀어놓고 잠을 청하려던 그때, 마스크를 겹겹이 쓴 나이가 지긋한 아주머니가 방으로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나에게 ‘don't steal my things ok?'라고 굉장히 공격적인 어투로 쏘아붙였다. 어쩌면 이렇게 초면에 인사도 없이 무례하기 짝이없을까. 게다가 누굴 도둑으로 아나, 어이가 없어서 내가 당신 물건을 왜 훔치냐고, 당신 물건 만질 일 없다고 얘기하고 나서 다른 사람들과 얘기하는 대화를 듣다가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알고 보니 이 아주머니는 중국인에 대한 굉장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일본인이었고, 내가 중국인이라고 자기 맘대로 판단해 버리고 중국인은 물건 훔치는 족속이니 내 물건 훔치지 말라니. 아무리 해도 이건 아니다 싶어 한마디를 해야겠다 싶었다. 당신 나한테 사과하라고. 나 중국인 아니고 한국인이고, 설사 내가 중국인이라 하더라도 그거 엄청 무례한 말이라고. 그러자 손사래를 치며 어눌한 영어로 중국인이건 한국인이건 똑같다고, 너네 한국인도 일본인 싫어하는거 아니냐고 나도 너네 싫다고 말섞기 싫다면서 차단을 하는데 이런 말도 안되는 인종차별주의자를 봤나, 너무 어이가 없던 나는 당신이야말로 나한테 말걸지 말라고 당신같은 인간 제일 싫어한다고 소리를 지르다시피하고 방을 나와버렸다. 모욕감에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분노가 주체가 되지를 않았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일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예의바르고 좋은 사람들이었기에 충격이 컸다. 말로만 듣던 일본 혐한주의자를 하필이면 호주에서 만나다니.

 

호주는 워낙에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인걸 알고 있었고, 멜버른 워홀시절에도 철없는 10대 호주백인 여자애들에게 인종차별을 당해본 경험이 있었기에 각오를 하고 온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겨우 호주에 도착한 첫날이었다. 백인들한테 당했던 인종차별도 모욕적이었지만 같은 아시안인에게 당하는 인종차별은 너무나 기가막히고 어이가 없었다. 우울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어서 한참을 밖을 걷다가 다시 방으로 돌아오자 그 여자는 어디론가 나가고 없었다. 그러다가 같은 방을 쓰는 호주친구에게 용기를 내 겨우 인사를 했다. 그녀는 멜버른 출신이고 바이런베이에서 열리는 축제 스태프로 잠시 이곳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서로 한참 대화를 나누다가 방금 일 유감이라고, 자기가 들어도 너무 어이없었다고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는 저녁에 옆방 베트남 친구랑 같이 저녁먹으러 갈건데 같이 가지 않겠냐고 제안해주는게 너무나 고마웠다. 우리는 우버를 불러 쿨랑가타 시내로 나갔고, 조그만 오지펍에서 간단한 안주를 시키고 맥주한잔을 시켰다. 그렇게 한참 수다를 떨며 숙소까지 가는도중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바다를 걷는데 서늘한 밤바람이 호주의 겨울을 실감하게 했다. 나쁜일은 빨리 잊을수록 좋은거니까, 혼자서 서러운 밤을 보내지 않고 친구가 생긴 좋은일로 위안을 삼으려 했다.

그렇게 씻고 2층 침대로 몸을 옮겨 잠을 자다가, 열린 창문사이로 찬바람이 잔뜩 들어오는 바람에 잠을 깼다. 정면으로 바람이 들어오는데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도 너무 추워서 몸이 덜덜 떨렸다. 그러다 갑자기 그 일본인 여자와 새로 들어온 진짜 중국인 투숙객이 욕설을 오가며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대체 뭐가 모자라서 내 잠까지 방해하면서 이토록 사람을 괴롭히는건지, 지옥같은 새벽이었다. 그리고 나는 당장 이 백팩커스를 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음날 아침, 주변 곳곳의 숙소를 검색하는데 죄다 숙박비가 말도 안되게 비쌌다. 일부러 공항과 가까운 학교 주변에 있는 집을 구하려 공항 주변의 백팩커스를 예약했는데 예정된 3박 4일은커녕 1시간도 이 백팩커스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일단 짐을 챙겨놓고 아침을 먹으러 가자는 베트남 친구와 함께 다시 쿨랑카타로 나섰다. 어제는 어두워 보이지 않던 눈부신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해변을 따라 늘어선 카페와 레스토랑, 하나같이 백인들만 앉아있는 이곳은 아시아인인 우리는 눈에띄기에 충분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로컬카페에 들어가 플랫화이트와 브런치를 시켰다. 그리고 플랫화이트를 한잔 들이키는 순간 마음이 신기하게 차분해졌다. 아름다운 해변을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한잔의 여유. 여행이었더라면 이 여유를 더 만끽할수 있었을텐데, 앞으로 호주에서 생활하고 살아나가야 하는 입장이 되자 마음이 계속 조급해졌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브리즈번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해 자초지종을 얘기하게 되었고, 내 사정을 듣더니 자기 집으로 일단 오라고, 어떻게든 잘데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걱정해주는 친구가 너무나 고마웠다.


그렇게 내 몸만한 짐을 이끌고 겨우겨우 브리즈번으로 도착하자 이미 2명의 쉐어생이 다른방을 쓰고 있었고, 친구와도 방을 쉐어해야해서 따로 매트리스를 꺼내와야했다. 그렇게라도 몸을 누일 수 있는 곳이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불을 끄고 침대에 눕자 피곤하고 지쳤던 몸이 침대에 가라앉을 듯이 축 늘어졌다. 첫날부터 호되게 겪은 신고식에 호주에서 유학하게 되어 들떴던 마음이 한껏 위축되고 말았다. 과연 나는 이 호주에서 잘 살아 남을수 있을까, 그렇게 오고 싶던 호주로 온 설렘은커녕 앞으로 있을 곳에 대한 불확실함으로 불안감에 쉽게 잠들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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