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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shirley May 02. 2023

4. 미친 호주집세, 내 집은 어디에

-쉐어하우스가 월세 100만원이라니


 브리즈번 친구집에서 일주일 동안 머무는 동안 어떻게 해서든 골드코스트에 집을 구해야만 했다. 어학과정이 시작하는 8/1일 이전에는 집을 정해서 이사를 해야하는데, 아무리 한국인 커뮤니티, 외국인 쉐어사이트를 뒤져봐도 괜찮은 가격의 집을 찾을수가 없었다. 5-6년 전 이야기 이지만 주에 2인1실 기준 150-160불 정도로 집을 금방 구할 수 있었던 멜버른 워홀시절과는 달리 2인1실은 찾아볼 수 없었고, 싱글룸도 주 250불은 기본으로 지불해야 했다. 가장 비싼 곳은 주 380불까지도 부르는 곳도 있었다. 한국돈으로 환산하자면 한달에 100-130만원이 집세로만 나간다는 셈이다. 게다가 쉐어생들과 거실, 주방은 쉐어해야 하는걸 생각하면 말도안되게 비싼 가격이었다. 사실 이 돈이면 렌트를 할수있는 돈과 맞먹는 금액이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핸드폰을 붙잡고 집을 찾던 와중에 몇 군데 가격대가 괜찮은 집을 물색했다. 하지만 브리즈번에서 골드코스트까지 왕복 3시간을 왔다갔다하며 인스펙션을 다녀와야 했다.(인스펙션이란 집을 보러가서 집 컨디션을 확인하는 것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처음으로 본 집은 2인1실 주 150이라는 저렴한 가격의 서퍼스 파라다이스에 있는 외국인 쉐어 플랏이었다. 사진에서 봤을때는 나쁘지 않던 시설이 직접 눈으로 보자마자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좁고 더러운 방안에는 옷가지들과 물건들이 나뒹굴고 있었고, 침대시트는 몇 년을 세탁하지 않은 듯 했다. 말로만 듣던 베드버그가 득실댈 것만 같았다. 키친 역시도 녹슨 싱크대와 설거지하지 않은 접시들, 집 어디서든 벌레가 출몰할 것 같은 시설이었다. 이곳에 살면 돈은 아낄 수 있을지 몰라도 삶의 질은 곤두박질 칠 것만 같았다.


실망한 마음을 안고 오후에는 한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사우스포트 쪽에 작은 싱글 스터디룸 인스펙션에 기대를 걸수밖에 없었다. 단기로 1달만 구하는 곳이라 다시 집을 구해야 하고 스터디룸이기 때문에 창문과 옷장이 없는것이 단점이었지만 가격대가 나쁘지 않은 가격 주 220불이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인스펙션을 보고난후 큰 하자가 없는한 바로 계약을 할 생각이었다. 인스펙션 문의를 하자 집주인분은 일 때문에 저녁 6시 이후밖에 시간이 안된다고 해서 첫번째 인스펙션이 끝난 후 6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했다. 들고 온 돈으로 보증금도 내야하고, 숙소비에 식비를 지불해야하니 최대한 돈을 아껴야 했고, 그래서 생각한건 서퍼스 파라다이스 해변에서 시간을 때우는 것이었다. 서퍼스 파라다이스는 분명 내가 여행으로 왔을 때는 참 매력적이고 멋진 곳이었는데, 집이 정해지지 않은, 이대로 가다가는 노숙자가 될지도 모르는 나에게 전혀 감흥이 없었다. 오히려 즐겁게 휴가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과 대조되어 더욱더 나를 서럽게 했다.

      

그렇게 밖에서 겨우겨우 기다리다가 약속시간에 맞춰 집 앞에 도착해서 연락을 하자 퇴근이 늦어질 거 같다며 8시 이후도 괜찮냐고 답장이 왔다. 나는 이미 6시간 이상의 긴 기다림에 지쳐있었고, 돈을 아끼느라 제대로 밥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그리고 8시 이후면 브리즈번에 도착하면 10시가 훨씬 넘을 시간이었다. 다시 브리즈번까지 기차를 타고 돌아가야 해서 오늘은 무리일거 같다고 내일 다시 오겠다고 연락을 하고 다시 트램역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리고 도착한 트램역에서 결국 참고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흐르던 눈물이 걷잡을 수 없었고 결국 길을 잃은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고 말았다.

첫날 인종차별을 당해 도망치다시피 백팩커스를 나온것도 모자라 겨우 친구집에서 신세를 지면서,  하나 구하는데만 해도 왕복 3시간을 왔다갔다하면서 반나절을 기다렸는데  계약은 커녕 집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지치고 닳힌 마음이 버티고 버티던 나를 기어코 무너뜨렸다. 대체 나는   호주땅에서 집을  찾아서  고생을 하고 있는걸까. 진짜 내가 있을 집은 어디에 있는걸까. 내가 여길 잘못 온건 아닐까, 이대로 한국으로 돌아가버리고 싶다는 극단적인 마음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시작조차 하지 못한채 그저 낙오자만 될뿐이겠지. 이럴수록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하는걸 알고 있지만 그럴만한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게 힘든 마음을 부여잡고 기차를 타고 다시 친구네 집으로 돌아오자 모두들 외출한 모양인지 집안이  비어있었다. 친구가 키우는 강아지가 귀여운 얼굴로 나를 반겨줄 뿐이었고 나는 강아지를 품에 안고 넋두리를 해대며 그렇게 멍하니, 반짝이는 브리즈번 야경을 바라봤다. 애초에 영주권 때문에 지역점수를 받기위해 골드코스트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원망스러웠다. 영주권 생각없이 차라리 가고 싶던 멜버른으로 갈걸, 후회해봤자 이미 늦었다.

춥고 외로웠던 긴, 아주 긴 겨울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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