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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shirley Jan 12. 2024

7. 사회복지, 게다가 석사는 처음이라

-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나를 먼저 알아가기

10주간의 EAP 과정을 무사히 수료하고, 1주간의 방학 후 바로 대학원 입학, 그러니까 본격적인 호주에서의 사회복지 석사과정이 시작되었다. 해외에서 대학기관에서 공부를 해보는 것도 처음, 전공 무관에 언어 역시도 모국어가 아닌 영어, 모든 것들이 새롭고 낯선 환경에서 나는 그렇게 정신없이 사회복지 대학원생이 되었다.      


 첫 학기는 신기하게도 수업이 일주일 내내 진행되었는데, residential 수업은 무조건 출석이 필수였다. 사회복지학 개론과 실습위주의 practice 수업 두 개로 일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아침 8시반부터 4시반까지 풀로 강의가 차있었다. 일주일에 한번정도 학교를 가서 수업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굉장히 타이트한 시간표를 보고 벌써부터 걱정이 되었다. 일주일내내 일을 못하는건 물론이고, 매일 왕복 2시간이 넘게 통학을 해야하는 것도 적잖이 부담이었다. 다행히 함께 공부를 시작한 한국인 친구가 있어서 의지가 되었고, 일주일을 잘 이겨내 보자고 다짐했다.


첫 사회복지학 개론 수업의 교수님은 아동복지 쪽에서 오랫동안 일하신 분이었고, 그래서 그런가 따뜻하고 온화한 아우라가 느껴지는 분이었다.

교수님은 첫 수업에서 호주가 복지가 잘 발달되어있는 선진국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부모에게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 이른바 out of home care children, 멘탈헬스,마약중독, 싱글맘, 홈리스, 이민자, 원주민 등등 사회 곳곳에서 제대로 된 케어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그래서 호주에서 소셜워커의 역할은 그만큼 중요하다고 했다.

첫 수업시간에 AASW라는 사회복지사 협회에서 정한 강령에 대해 배웠는데 소셜워커, 사회복지사의 역할은 이런 사람들의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돕고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소셜워크 강령의 제 1조였다.   


 질문과 토론이 메인을 이루는 대학원 수업, 소셜워크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데다 고급 아카데믹한 영어로 진행되는 강의를 따라가는 건 쉽지 않았다. 그동안 영어를 꾸준히 써오고 외국계 기업에서 일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따라가겠지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게다가 같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 중 현지 친구들은 소셜워크 필드에서 일하고 있는 현직들이 대다수였고 질문의 수준자체가 남달랐다. 함께 수업을 듣는 한국인 친구도 통역과 출신이라 이미 나와는 다른 레벨이었다. 하루에 흡수할 지식의 양은 잔뜩인데, 그걸 소화할 시간이 부족했다. 한국어로도 어려운 전공수업에 주변사람들과의 비교들이 겹쳐지면서 수업이 진행될수록 자신감을 잃어갔고, 내가 과연 이 석사를 할수 있는 자격이 되는걸까, 라는 마음 약한 생각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어진 두번째 수업은 social work practice, 이른바 실질적인 상담에 필요한 스킬을 배우는 수업이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고, 나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던 수업이었던 것 같다. 기본적인 상담에 대한 지식들을 배운 후 시나리오를 주고 이 클라이언트에 대해 분석한 뒤 적절한 스킬을 이용해서 상담을 이끌고 롤플레잉하는 과정을 비디오로 찍어서 제출하는게 과제였다.       


내가 맡은 시나리오는 내가 정신건강병원에서 일하는 소셜워커로서 액팅아웃(부정적인 감정이나 갈등을 분노 혹은 행동의 형태로 분출하는 것을 말함)으로 병원에 온 한 일본인 여자 유학생을 상담하는 것이었는데 시나리오를 분석하면서 이 일본인 유학생의 상황이 나의 상황과 유사한 점이 많다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 유학생이 흔히 가질 수 있는 향수병, 여자 혼자 외국에서 살면서 느낄 수 있는 안전에 대한 불안감, 모국어가 아닌 영어를 써야하는 환경에서의 떨어진 자신감, 친구와 가족과 떨어져 있기에 부족한 정서적 커넥션. 그 모든 것들이 너무나 공감되었다. 내가 이 친구라면 가장 필요한건 뭘까. 나에겐 아마도 정서적 커넥션이지 않을까 라고 생각되었고, 상담롤플레잉 내내 그 부분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상담스킬에서 중요한건 그 사람의 강점을 끌어내는 질문을 하는거였는데, 나는 유학을 결정하고 이곳에서 혼자서 공부하면서 지내고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너는 용기있는 사람이고 본인을 위해서 병원에 스스로 온 것 자체가 회복의 시작이라고. 너는 분명히 앞으로 더 나아질 거라고 얘기해주는걸로 롤플레잉을 마무리 지었다.     


사실 어쩌면 이 말은 나에게 해주는 말 같기도 했다.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한 의심과 자괴감들로 한껏 작아져 있던 나를 돌아보며 충분히 잘해오고 있다고, 앞으로의 여정들에 조금 더 자신감가지고 나아가길 바란다는 격려의 말이 오히려 나를 위로하는 느낌이었다.      


 일주일간의  사회복지 대학원 수업을 마치고 느낀 , 으레 사회복지라고 하면 누군가를 돕겠다는 이타적인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이전에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아가며 끊임없이 돌아보는 과정을 가장 중요시하는 분야라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호주에서의  석사과정은  인생에서 의미있는 과정이 될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수업 3일째 즈음, 나만 수업에 뒤처지는 거 같아 우울한 마음에 커피한잔하면서 일기를 쓰던 날, 우연히 발견한 강의실 복도 벽면에 붙어있던 글귀가 나의 마음을 잔잔히 두드렸다.      


"What you need to do is to recognize the possibilities and challenges offered by present moment, and to embrace them with courage, faith and hope."        
“당신이 해야 할 것은 현재 당신에게 주어진 가능성과 도전들을 인지하고 그것들을 용기와 믿음, 희망으로 감싸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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