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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shirley Apr 16. 2024

10. 나의 구세주가 드디어 호주로

- 동생과 꿈만같이 행복했던 시드니 여행


 그렇게 힘들던 나를 버티고 지탱하게 해주었던 건 한국에서 막 퇴사하고 자유의 몸이 된 동생이 호주로 여행을 온다는 사실이었다. 3주간의 장기 여행을 야무지게 계획한 파워 J 인 동생은 비자를 비롯해 비행기,숙소까지 잘 예약하고 무사히 시드니에 도착했다. 알려준 대로 휴대폰 유심도 잘 구매한 모양인지 호주 번호로 전화가 오자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너무 오랜만인 해외여행에다 호주는 처음인 동생은 모든 게 신기한지 한껏 상기된 목소리였다.비록 나는 골드코스트, 동생은 시드니에 있지만 같은 호주 땅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한 느낌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시드니로 날아가고 싶었지만, 학업과 일을 병행하고 있는 나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겨우 일요일 오프를 빼고, 새벽까지 과제를 제출하고 나서야 겨우 시드니로 가는 비행기를 탈수 있었다. 비몽사몽 아침 7시 비행기를 타고 시드니에 도착해서 동생과 만나기로 한 숙소 로비에서 두근대는 마음으로 동생을 기다렸다. 그리고 저 멀리서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오는, 나 퇴사했다고 동네방네 소문내려고 작정한 탈색한 금발머리의 동생을 보자 괜스레 울컥했다. 꼬박 1년만에 보는 얼굴이었지만 어제 만난것처럼 익숙한 건 역시 우리는 피를 나눈 자매인게 분명했다.        


감격적인 상봉후 숙소 체크인을 한 뒤 헤이마켓쪽으로 브런치를 먹으러 나섰다. 함께 맛있는 브런치를 먹고 커피한잔하면서 그동안 밀려온 수다를 떠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둘 다 여행 스타일도 워낙 비슷한데다 취향도 비슷하다보니 함께 여행 하는 건 스무스했다. 타이트하게 관광지를 돌아보는 것 보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역시 동일했다. 첫날은 시드니 대학교와 천문대를 가보자고 계획하고 이동하면서 그동안 밀린 수다를 떠는데 문득 동생이 호주에서 같이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드니 대학교는 해리포터에 나오는 호그와트 같은 굉장히 고전적인 느낌의 건물이었다. 공항옆에 우두커니 빌딩 3개만 지어놓은 우리 학교와는 너무나 상반되는 느낌. 졸업시즌이었던지 학사모를 쓰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여럿 보이자 문득 나는 내가 무사히 졸업 할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자 한숨이 나왔다. 그러자 석사 졸업을 먼저 한 선배님인 동생이 내게 말했다. 언니 내가 대학원다닐 때 논문쓰면서 죽고 싶을 만큼 힘들다고 할 때 나한테 한말 기억나냐고, ‘너가 힘들다면 언제든 관둬도 돼,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미래의 네가 널 과연 용서할수 있겠니?‘ 라고. 내가 그런 새삼 말도 안되는 속 편한 훈수를 뒀냐고 웃음이 나왔다. 그걸 나한테 대입시키는 상황이 오다니, 그 당시에 나는 내가 석사를 그것도 해외에서 할 거라는 생각도 못했었으니까.

아무튼 과거의 낭창했던 나의 조언은 지금의 내게도 적용되는 말이었다. 그리고 동생은 나도 했으니 언니도 할 수 있다고, 조금만 더 힘을 내라며 응원해주었다.      

두 번째로 간 곳은 시드니 천문대, 사실 이곳은 예전에 투어로 한번 와본적이 있는 곳이었지만 동생에게 그 예뻤던 풍경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 한참을 돌아돌아 겨우 도착하자 역시나 한국인들에게 알려진 곳이라 한국인 관광객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겨우 돗자리를 펴고 앉아서 풍경을 감상하는데 마침 일몰즈음이라 풍경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그러다 나보다 훨씬 내향적이라고 생각한 동생이 명당에 자리잡은 한국인 여자애들에게 선뜻 혹시 자리 좀 빌려도 되냐고 말을 걸더니 넉살좋게 사진까지 찍어달라는 부탁을 하는데 내가 모르던 동생의 모습이라 너무나 신기했다. 여행지에 나오면 숨겨왔던 외향성이 나오는건가, 덕분에 둘이서 나온 사진까지 건질 수 있었으니 아무렴 좋았다.      

여행을 다니면서 함께 길도 헤메고, 사진과 영상도 찍고, 시덥잖은 농담도 하면서 깔깔거리는 이시간이 나를 얼마나 위로했는지, 호주까지 날아온 동생이 너무나 고맙게 느껴졌다.   


저녁에 숙소로 돌아와 또 다른 과제를 해야해서 고군분투하는 나를 보더니 언니 정말 고생 많다고 새삼 언니가 호주에서 석사하는 게 실감난다는데 정말 나도 여행와서 과제하게 될줄 누가 알았을까. 그래도 무사히 끝내고 산 와인 한병을 나눠 마시면서 새벽내내 수다를 떨며 회포를 풀었던 너무나 내겐 행복한 밤이었다.      



다음날은 아침 일찍 신청한 블루마운틴 투어를 무사히 다녀오고, 저녁 즈음 시티로 도착한 우리는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쪽과 하버브릿지 야경이 보이는 곳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이게 우리의 시드니에서의 마지막 밤이라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시간이 너무 빨랐다. 한껏 예쁘게 꾸미고 트램을 타러가는데 이게 뭐라고 이렇게 신날일인가, 여행을 같이 한다는 게 이렇게 마음 편하면서도 즐거울수 있는게 새삼 누구와 여행을 한다는게 참 크다는걸 깨달았다.      


우리는 오페라하우스가 잘 보이는 한 홍콩식 다이닝 펍에 앉아서 딤섬과 맥주를 주문했다. 서늘한 밤공기에 맥주 한잔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하지만 그 희열을 온전히 만끽하기에 먹이를 호시탐탐 노리는 갈매기들의 존재는 가히 위협적이었다. 내 저녁을 사수하겠다는 나의 의지는 꽤나 집요했고 음식을 먹는 속도가 빨라지는 나를 보더니 동생이 웃음을 터트렸다. 망할 갈매기들 같으니, 왜 나의 시드니에서의 여행자로서의 낭만을 방해하는 거냐구...!     


그렇게 시드니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에는 체크아웃을 하면서 들리고 싶던 서리힐즈쪽 카페를 서둘러 갔다. 서리힐즈쪽에 예쁜 카페랑 편집숍이 많다고 해서 여유가 있었더라면 좀더 둘러보고 싶었지만 비행기 시간에 맞게 공항을 가야했기에 카페 한군데에서 아몬드 크루아상과 카푸치노 한잔을 즐기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카페는 유명한 만큼 분주했고, 바리스타들이 바쁘게 커피를 만드는 모습,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즐기는 모습, 뭔가 같은 카페인데도 시드니는 대도시라서 그런가 확실히 분위기가 다른 느낌이었다.      


짧은 2박3일의 동생과의 시드니 여행은 호주에서의 생활이 삶 그 자체라 일, 집, 공부로 늘 단조롭고 무료했던 내게 오랜만에 여행자의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여행자인 동생의 시선으로 담긴 그동안 시드니 여행을 하며 찍은 사진들과 영상들을 보면서 호주의 하늘이 이렇게 예뻤었던가, 커피가 이렇게 맛있었던가, 일상에 무뎌져서 놓치고 있던 것들을 발견했다.


그렇게 원하던 호주에서의 삶이 일상이 되니 당연해지고 무뎌졌고, 그걸 일깨워주는 자극들이 필요했는데 그게 나에겐 여행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구반대편에서 나를 만나러 호주로 와준 동생의 존재가 나에겐 무엇보다도 큰 선물이었다. 비록 호주에서의 대학원생으로서의 삶은 너무나 고달프지만, 나를 응원해주는 이들로부터의 사랑의 힘은 잔잔하지만 견고하게 나를 지탱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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