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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윤소 Apr 14. 2020

건 작가의 드라마 마라드사이다 5회

<부부의 세계>  지선우의 그 럭셔리하고 냉철한 이혼 판타지에 열광한다!

 JTBC 금토 드라마 <부부의 세계> 6회 방송이 실시간 댓글 1만여 개, 시청률 18.8%(닐슨코리아)를 넘어서며 여전히 화제의 중심을 달리고 있다. 4회 이후 전개는 원작 <닥터 포스터>나 <메데이아 신화>에서 벗어나기를 바랐으나 제작진은 그럴 생각이 없나 보다. 

 그러나 원작에서 놓쳤던 주인공의 심리와 주변 인물들의 관계를 더 심도 있게 파고들어 디테일하게 녹여내고 있는 점은 높이 살만 하다. 거기에 주연 김희애를 비롯한 다른 배우들의 연기까지 더해지며 몰입감은 가히 압도적이다.


 지난주, 지선우의 완벽한 얼음 사이다 같은 복수는 짜릿한 통쾌함을 선사했지만, 입안 가득 남은 얼음은 콧잔등을 타고 이마를 거쳐 정수리를 때리는 통증으로 오래도록 지속됐다. 지선 우의 고통이 그대로 전해진다. 복수라고 하기엔 지선우가 받은 상처 또한 만만치 않았다. 10년을 넘게 산 부부의 애증이란 이런 것이겠지만 드라마인 걸 너무 잘 알면서도 ‘너무 아프단 말이다’. 이런!

 게다가 다음 주 7회는 이태오의 반격이 예고된 상태다. 아들 준영은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위태로운 존재감 뿜어내는 ‘중2’인데 그런 아들에게 아빠라는 사람이 보란 듯 새 가정을 꾸려 나타나 초대장을 보내다니 벌써부터 물 한 모금 없이 고구마 몇 개를 입 안 가득 밀어 넣은 듯 답답해진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은 왜 이 치 떨리는 애증으로 똘똘 뭉친 ‘지선우 이태오 부부의 이혼전쟁’에 이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드라마의 본질이 그렇듯 드라마 속 ‘똑똑하고 냉철한 여자 지선우’가 그려내는 ‘이혼 복수 판타지’를 실제처럼, 그것도 매력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드라마의 인기 비결을 ‘불륜’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나 속도감 있는 ‘막장’ 전개에서 찾는 이들도 많지만 그보다는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그들만의 세계’를 맛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한다. 




 이혼을 앞둔 자극적인 리얼 막장 스토리로 보자면 이미 종영된 KBS 드라마 <사랑과 전쟁>을 넘어서는 드라마만 한 것이 또 있을까. 그러나 시청자들은 그 드라마를 보며 지선우에게 빠져들 듯 매회 에피소드의 주인공에게 자신을 이입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객관적 평가자가 되려고 할 뿐, 현실보다 더한 비루한 그 드라마 속 현실에 자신을 가두고 싶어 하지 않는다. 현재 내 곁에 있는 남자와 다를 것 없는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길 가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그저 어리기만 한 ‘불륜녀’와 머리채를 잡고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나뒹구는 조강지처를 ‘동정’하기는 하지만 ‘동경’ 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영화 <장미의 전쟁>도 마찬가지다. 이혼을 앞둔 부부(미이클 더글라스, 캐서린 터너 분)는 집의 소유권을 갖기 위해 생사를 건 치열한 몸싸움을 벌인다. 코믹 스릴러 장르여서이기도 하겠지만 보고 있노라면 20년 넘게 함께 산 부부가 맞나 싶을 정도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부부도 한때는 첫눈에 반해서 사랑하고 결혼한, 토끼 같은 남매를 둔 변호사와 그의 사랑스러운 아내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혼을 앞둔 이들의 몸싸움엔 판타지란 없다. 치졸함을 넘어 살벌함만이 난무한다.     

 



 반면 <부부의 세계> 고산시 가정사랑병원 부원장 지선우 선생을 보자. 찌질이 남편 이태오가 어머니 사고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바람에 잠시 감정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역공에 성공해 아들 준영의 양육권도 챙기고 처음 계획대로 이태오만을 도려내는 데 성공한다. 그 과정에서 생긴 몸싸움(일방적으로 맞는) 역시 아들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고도의 계산된 행위였으니 다른 작품의 몸싸움과는 차원이 다르다. 고도의 두뇌싸움이다.

 게다가 그림 같은 타운 하우스에서 씬마다 바꿔 입고 나타나는 우아한 자태의 의사 지선우의 럭셔리한 쓸쓸함이라니... 보고 있노라면 그깟 이태오 같은 남편 따위 없어도 더 좋은 남자가 곧 올 것 같은 비주얼이다. 게다가 불륜녀에게 뒤통수를 얻어맞고 쌍욕을 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꼿꼿함은 지켜보는 수많은 아내들에게 왠지 그날이 그날 같은 응어리진 현실에서 이혼만이 내 살 길일지도 모르겠다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면 너무 간 것이겠지만, 아무튼 ‘럭셔리한 이혼 복수 판타지’를 자극하기에는 충분하다 하겠다.     

 문득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라는 아주 오래전 읽은 양귀자 소설 제목이 떠오른다. 이 제목처럼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내가 갖지 못한 것, 내가 하지 못한 것,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소망하고 동경하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TV는 본능적으로 그 틈새를 파고든다. 특히 드라마는 더더욱 그렇다. 고산 가정사랑병원의 부원장 지선우와 비록 바람은 났지만 스윗가이 영화감독 남편 이태오, 지방 유력인사의 남부러울 것 없는 미모의 외동딸 다경. 이 세 사람의 악연과 그들을 둘러싼 럭셔리한 배경을 가진 이웃들의 관계에서 쏟아지는 에피소드는 이 드라마를 보는 또 다른 즐거움이 아닐까?     




 ‘결혼한 지 10년이 넘어도 남편을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한다면 그것도 심각한 질병’이라는 우스갯소리처럼 처음 만난 순간의 사랑하는 마음 그대로 변함없이 살아가는 부부보다는 함께한 세월만큼 풀지 못한 감정의 응어리를 안고도 남의 눈 무서워 또는 자식을 생각해 그대로 봉합한 채 살아가는 부부들이 아마도 더 많을 것이다. 그런 현실부부들에게 드라마 속 지선우와 이태오 부부는 할 말 대신해주며 속 시원하게 소리치고 싸워주는 아바타일지도 모를 일이다. 싸움의 이유가 외도는 아닐지라도, 모두에게 완벽한 아바타는 아닐지라도 말이다. 


 우리가 이혼을 말할 때 ‘이혼’이라는 것이 ‘별것’ 아니라고는 하지만  ‘이혼’이라는 것이 막상 내 앞에 닥치면 ‘별것’ 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결코 ‘남들이 하듯 그렇게 간단하고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부부의 세계> 똑똑하고 냉철한 여자 지선우의 이혼 복수 판타지에 열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청자들은 이혼으로 상처 받는 지선우와 이태오, 그의 아들 준영을 보며 아파하고 분노하기도 하면서 또 그렇게 카타르시스를 느끼면서 ‘아직은 안전한 자신들의 가정’에 조금은 위로받기도 하는 것은 아닐까? 이 또한 이 드라마가 주는 또 다른 위로는 아닐까?     

 



 다음 회부터는 지선우와 이태오의 아들 준영을 건, 숨 막히게 치열한 2차전이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이 있다면 지선우 이태오의 애증이 보여주는 한국판 <부부의 세계>는 원작과는 좀 다른 결말이었으면 좋겠다. 가능하다면 지선우의 냉철한 두뇌싸움이 돋보이는 ‘행복한 파국(?)’이었으면 한다. 

 지선우, 그녀의 결혼은 비록 어리석은 선택이었을지라도 그녀의 이혼은 현명한 선택이 되기를!     


“아프냐? 보는 나도 아프다, 진짜루!”

“7회부턴 너만 아프면 안 되겠니, 이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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