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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화 Jan 25. 2023

[소설] 고양이띠

  저장하는 것과 비우지 못하는 것은 동치가 아니다. 저장하는 것은 사랑으로 하는 것이지만 비우지 못하는 건 미련으로 하는 것이니까. 아직도 지우지 못하는 편지가 있다. 너에게 받은 편지다. ‘고양이는 원래 이상해’로 시작하는 편지. 네 편지 속 고양이만큼이나 이상한 너였다.

  “고양이띠 알아? 한국의 토끼띠는 베트남에서 고양이띠래.”

  99년생 고양이띠. 한국의 십이지신 자리에 낄 수 없어 화난 고양이가 한국의 고양이띠에게 저주를 내린 것이 분명했다. 도 바다도, 심지어는 공기마저도 우리를 괴롭혔다.


경쟁에 점철되어 친구라는 개념도 희미해지는 고등학생 때에도, 우리는 편지를 주고받았다.

  우리 평생 이렇게 친구로 지내면 좋겠다. 그치?

  그러게.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받은 게 선한 일이었다.

  안녕? 주말 잘 보냈어?

  …수민아 아까 뭐랬지?

  너는 내가 아닌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내 인사를 무시했다. 편지를 건네려던 손이 민망해졌다. 처음에는 못 들은 줄 알았다.

  안녕?

  장난스럽게 인사하며 이 상황을 모면하려고 하니 너는 인상을 찌푸리며 내 앞을 지나갔다. 너에게 주려던 편지는 갈 곳을 잃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이사하기 위해 짐을 싸다 편지함을 발견했다. 비우지 못한 편지함이었다. 고양이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있던 편지함. 오랜만에 자리에 앉아 편지함에 쌓여있는 네 편지를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가끔 네가 부러워. 너는 하고 싶은 게 분명하잖아.’

  그 문장이 순간 내 머릿속에 꽂힌 건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하고 싶은 게 분명해도 집안을 잘못 타고 나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너는 무엇이든 지원해줄 수 있는 집안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고 싶은 게 없었다. 아니, 네 집은 네가 하고 싶은 게 없도록 만들었다.


  너는 99년생 고양이띠였고, 나는 빠른 연생 용띠였다. 십이지신이 되지 못한 고양이. 너는 하고 싶은 게 많고, 할 수 있는 것도 많았지만 집안에서 요구하는 것이 많았다. 대개 네가 하고 싶은 것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었다.

  내가 너와 헤어질 즈음의 일을 떠올려본다. 집안에서 나는 내가 피아노 하는 것을 반대했지만 나는 꾸준히 하고 싶어 했고, 음악실을 빌려 꾸준히 연습하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집안에서 내가 피아노를 배울 수 있게 도와줬다. 딱 그즈음의 일이었다. 만약 내가 레슨 받게 되었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메일함도 다시 열어 찾아봤는데 너는 이미 탈퇴하고 사라졌더라. 나는 이제 너를 찾을 수 없다. 영영 자리를 빼앗긴 고양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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