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에는 곰팡이가 있다
나는 어쩌다 글을 쓰게 되었나
곰팡이는 전체 중에 1~10% 정도가 알려져 있다고 한다. 알려지지 않은 종이나 현상을 인류는 발견해내고 이름을 붙인다.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추상적인 게 되므로. 이 얘기를 왜 하냐면, 어쩌면 우리가 이름을 붙인다는 행위는 어쩐지 문학이 하는 일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어릴 때, 나는 말을 참 못 했다고 한다. 뭔가 표현하려고 하면 우! 우! 하는 소리밖에 못 냈다고. 그러던 언제는 심하게 아팠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몸살감기였던 거 같은데, 그걸 “개미가 종이를 드는데 그게 코끼리만큼 무거운 거 같아”라고 말했다. 그 개미와 코끼리는 늪에 있었고, 어린 나는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 감각을 나만의 언어로 말한다는 게. 물론 그 표현을 알아듣는 어른들은 없었지만, 나는 개운했다. 그리고 몸살감기라는 단어를 모르는 상태에서 그것만큼 이 감각을 잘 표현해낸 문장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7살 때인가, 엄마 손에 이끌려 문화센터에서 시에 대해 써보기도 하고, 읽고 감상을 나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는 논술학원에 다니면서 신문과 문학작품을 접하기도 했는데, 그때부터 시는 쉬운 것이었다. 미술학원 선생님은 나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민하는 꼭 어울리지 않는 색을 조화롭게 쓰는 재주가 있어요.” 그 재주가 아주 그릇된 건 아니었는지, 나는 학교에서도, 도 대회에서도 상을 종종 타오곤 했다. 상을 탔기 때문일까, 나는 미술과 문학의 형태로 창작하는 것이 꽤 쉽다고 느꼈다. 어쩌면 내 창작욕의 시초는 여기서부터였겠다는 생각을 한다.
본격적으로 미술과 문학에서 작품을 만들어본 건 피아노를 전공하기로 결심한 중학교 2학년 때부터였다. 예술은 추구하는 진리가 있고, 그 진리를 잘 표현하기 위해 형식에 따라 갈래가 나누어졌다는 생각이었다. 연주는 재연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당시에는 음대 입학시험을 준비하고 있었고, 입학시험에 자주 쓰이는 곡이 밝다 보니 내 심연과 우울감을 얘기해낼 수 없었다. 이러한 걸 표현하기 위해서는 창작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쉽게 창작할 수 있다고 믿었던 미술과 문학에 먼저 손을 댔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내 그림이나 시에서 감동해본 적은 없었다. 이제 와 그 이유를 조금 알 거 같다. 남들이 이미 쓴 표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그건 어떻게 보면 단순한 따라 쓰기였다. 창작해보고 싶어서 창작에 손댔던 것인데, 난 결국 재현 아닌 재연을 하고 있었다. 재현하려면 나만의 작품관이 있거나 작풍이 있어야 했을 텐데, 그런 게 없어서 결국 재연만 하고 있었다. 그렇게 미술과 문학에 대한 꿈은 접어두고 다시 피아노에 집중했다.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다른 곳에 눈 돌릴 시간이 없었다. 그럴 시간에 손을 더 놀려야 했다. 하고 싶은 일들은 대학 가면 할 수 있다고 했으니까.
대학에는 평소에 생각하던 예술을 넘어서 수학에도 관심이 가 전공수업을 조금씩 얻어서 들었다. 수학에서는 좋은 성적을 받아 복수전공을 권유받기도 했다. 작품을 더 이상 쓰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쩌다가 글 쓰는 친구들을 만나 에세이를 꾸준히 쓰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소설을 쓰자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해서 쓴 첫 소설이 SF 로맨스였고, 그때 SF로 나갈 만한 공모전이 포항공대에서 주관한 것뿐이어서 나가려고 부단히도 준비했다. 이리저리 대회에 대해 알아보니, 이공계열 학부생 혹은 대학원생이어야 한다는 말에 일순간 마음이 철렁했다. 전화해서 복수전공도 인정해주냐 물어보니 그렇다는 말에 안심하고 작품에 매진했다. 그러곤 공모전에 붙었다. 이렇게 말하면 낙선한 다른 이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정말 운이 좋아서 그 공모전에 붙었다. 그래, 실력이 아니라서 당선이 아니라 가작이었을 테다. 실력이었다면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질 못했다. 가작을 받은 건 자랑이었지만 자랑은 얼마 가지 못하고 밑천이 드러나는 순간 부끄러움이 됐다. 등단은 순간이고 집필은 평생이란 말을 우스갯소리로 하는 작가님이 있었다. 그때는 그 말의 의미를 잘 몰랐다. 그러나 지금은 뼈저리게 느껴진다. 앞으로 상에만 목을 맬 수도 없는 노릇인데도 나는 자꾸 상에 목을 매게 되었다. 자기 확신이 없어서.
그러다 요즘은 또 엉뚱하게 시를 쓰고 있다. SF소설로 등단해놓고 시를 쓴다는 게 꽤 웃긴 말일 수 있겠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에 말했던 ‘개미가 드는 코끼리만큼 무거운 종이’에 대해 상상하다 보면 꼭 시를 쓰고 싶어진다. 단어 하나가 가리키는 게 사람마다 다르지 않을까?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우울함’이라는 단어를 보고 짙은 남색을 떠올릴 수 있겠고, 어떤 사람은 깁깁하게 젖은 옷을 입은 누군가를 말하면서 ‘깁깁하다’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낼 수도 있겠다. ‘깁깁하다’는 건 없는 단어이므로 그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답을 하긴 어렵겠지만 나는 그 단어가 습하고, 답답한 느낌이라고 상상한다. 내게 시를 쓴다는 건 이런 느낌이다. 모두가 어떤 의미로 쓰기로 약속한 어떤 단어를 보면서 그 단어의 느낌을 내 문장으로 전달하는 것. 한 친구는 내게 어떤 작가가 되고 싶냐고 물었는데, 오늘은 이렇게 답했다. 내 문장이 세상에 없던 문장이었으면 좋겠고, 어떤 문장은 독자의 마음 안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그제야 뭔가 길을 찾은 느낌이었다.
길을 영영 잃은 줄만 알았다. 그래서 늘 공모전과 신인상을 전전했다. 그러면서도 응모하지는 못했다. 아직 자신이 없어서. 누군가에게 인정받아야만 잘 쓴 글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아직 누구한테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 작품을 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멀리도 돌아온 긴 여정이었다. 이 여정을 통해 한 가지 안 게 있다면,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내 목적지가 어딘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서 나는 내 목적지를 찾았다. 과학자들이 곰팡이에게 이름을 붙이듯, 만져지지 않는 게 만져지게끔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작가가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