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신작, <드라이브 마이 카>입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전작들을 보려고 했는데, <해피 아워>는 최근 개봉이기도 하고, 러닝타임이 어마 무시해서 <아사코>만 보았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서 기대를 조금 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좋았던 걸작입니다.
사실 러닝타임만 보면 지레 겁을 먹게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3시간은 충분히 길고, 액션 영화가 아닌 이 영화의 특성상 지루하게 다가올 가능성이 적지는 않을 테니까요. 다만 저는 이 부분에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연출력에 감탄했네요. 오늘뿐 아니라 요즘 피곤한 상태인데다 이번 주, 저번 주에 본 영화가 2시간은 물론 2시간 반에 가까운 영화들이 많아 조금 힘들지 않을까 싶었는데 정말 3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호흡도 느린 편은 아니고, 실제로 담고 있는 이야기도 많은데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님의 연출이 훌륭하기도 했고, 편집이 너무 잘 된 것 같더군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님이 베스트 드라이버였네요. 3시간 동안 이렇게 편안하게 이끌어줄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만 보면 솔직히 조금 뻔하게 다가오기도 하고, 인정할 수 없다는 사람도 생길 것 같았어요. 결국엔 살아가야 하고, 나아가야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요. 이게 어떻게 보면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라 쉽게 이야기하면 뻔하게 다가온단 말이죠. 그렇기에 3시간이란 러닝타임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이렇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꾸준하게 이야기해서 결국에는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이 탁월한 것 같아요. <아사코>에서도 그러했고요. 3시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담담하지만 깊은 대사들로 벌어진 상실의 마음을 잇고 있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대사가 너무 좋습니다. 대사가 많은데, 하나하나 다 좋아서 버릴 게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 사람이 누군인지 알고, 그 사람의 마음까지 알게 해주는 대사들. 결국 이런 영화를 보고 살아가게 되네요. 힘이 되는 영화입니다. 연말에 너무 잘 어울리는 영화라고 생각이 되고요.
영화에서는 다양한 언어들이 나옵니다. 일본어는 물론이고, 한국어, 중국어, 영어, 그리고 수화까지 나와요. 이 점이 참 흥미로웠습니다. 언어는 다르더라도 인물들이 어떤 말을 하는지 결국 알죠. 이렇듯 영화는 말하는 것과 더불어 듣는 것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소통은 말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그만큼 고요한 장면들도 많은데 평화롭고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도 들더라구요. 전체적으로 기승전결 구조를 따르지 않고 어느 정도 모호한 느낌도 들게 하는데, 이 점도 참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반복적인 장면들(카세트테이프로 대본을 계속 듣거나, 담배를 피우는 장면들)이 꽤 있는데 저는 이 부분도 특히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인상적입니다. 니시지마 히데토시의 연기는 너무나 최고입니다. 감정의 변화를 아주 잘 캐치해 내는 것 같았어요. 미우라 토코와 오카다 마사키도 훌륭했고, 키리시마 레이카의 연기도 탁월합니다. 한국인 배우들의 연기도 좋더라구요.
연말에 좋은 영화 만난 것 같아서 너무 행복합니다. 3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시간이 되신다면, 끊지 말고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