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전시를 다녀왔다. 작품에 담긴 주제가 다양했고, 디스플레이에도 이야기가 담긴 것 같아 좋았다. 내 맘속 1순위는...! 이따가 글을 끝내면서 이야기해야지.
기억에 남는 작품 순으로 주절주절 글을 적자면 이렇다.
옥산의 수호자들
권하윤작가의 전시실에 들어가자마자 붉은 공간의 시각적 스펙터클이 굉장하다고 생각했다. 공간이 사람을 압도한다. 작년에 국현에서 VR로 작가의 작품 <DNZ>를 보았다. 실제 지뢰제거 업무를 담당한 군인의 이야기를 듣고, 누구도 갈 수 없는 DMZ를 상상해서 디지털로 구현한 작품이다. 실재하는 가상세계가 인상적이다. 이번 <옥산의 수호자들> 이야기는 어떻게 구현되었을까 궁금했다.
20세기 초 일본이 대만을 점령한 시기, 식민지배에 저항했던 부눈족 족장과 일본인 인류학자 모리의 우정이 담긴 이야기다. 옥산의 아름다운 동식물과 모리의 해설을 따라 가상의 옥산을 체험할 수 있다.
체험하기 전의 첫인상은 실루엣 연극의 무대 같았다. VR기계를 쓰고 한 손에 전등을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손을 올렸다 내리는 관람자가 퍼포머 같기도 하고. 시각적, 맥락적으로 작품이 다양하게 해석되는 것 같기도 하다. 관람자면서 퍼포머인 절묘한 순간이 재밌었달까.
‘국가, 이념에 의한 적’ 같은 거대한 관념을 넘어서는 개인이 있을까?
작가에 의하면 있다.
흠..의식 있는 일본인 개개인은 훌륭하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죄하지 않고 역사를 지우려는 거대한 흐름을 바꾸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윤지영작가. 매체가 가장 다양했다. 가변성, 왁스, 기억, 봉헌물, 정체성, 내부와 외부를 생각해 보도록 한 것.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내장을 꺼내 그물을 짓던 때가 있었다
밧줄이 서로 손에 손을 잡고 얽혀있다. '전시 시작'을 알리는 듯 가장 처음 만나게 되는 작품이다.전시장 안쪽의 영상작품<호로피다오>를 보면 작가의 모든 작품이 새롭게 다가온다.다 보면 좋다. 나는 네 명의 친구들이 나오는 부분부터 못 봤다. 왜냐면 갑자기 저 멀리서 도슨트 시작하는 소리가 들려서 도슨트 들으러 뛰쳐나갔다.
Me, no
특히나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도형들<me, no>를 보며, '나'를 줌아웃 해서 바라봤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 또한 분명히 몇 군데 찢어져 있을 거다. 실제와 이상 사이의 간극이 아프다ㅠㅠ. 아마 나를 보고 있는 사람들은 내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고 생각할 수 도 있겠지..? 근데 안 맞으면 뭐 어떤가… 과연 알맞은 피부로 완벽히 자신을 입은 존재가 있기는 할까? 조금 안 맞는 이상을 입고 있는 그 자체로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작품일 수 도 있겠다.
그리고 작가가 설정해 놓은 ‘~였던’, ‘~일 수도 있었던’ 이런 내용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가소성 있는밀랍을사용해서 메시지를 담는다. 매체 선정이 타당하다..!
생각해 보면, 자신이 가진 목적성을 벗어나서 사용되는 것은(물리적 가소성이 없어도) 외부의 작용을 수용하고 변화하는 힘을가진 게 아닐까? 진짜 필요한 건 생각의 유연성이 아닐까?
이 즐거워 보이는 사람도 영상에 등장하는데, 전시장 곳곳에 숨어있다. 찾아보시기를.
양정욱 작가의 작품은 작가의 글과 연계된다.
국현 미술책방에서 팔고 있길래 하나 업어왔다.
넘버링을 구경하고 있는데 작가님이 오셨다.
나도 모르게 '우와 멋저요!!!!'라고 말했다.. 작품 잘 봤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대체 이게 뭐람.
그랬더니 '아, 책이 어디 있는지 확인하러 왔어요'라고 말씀하시고는 지나가셨다.
도슨트 중간에 작가님이 직접 설명하는 장면.
의자가 많아서 작품멍 때리기 좋았다! 진짜 따뜻한 키네틱이었다. 이야기는 사람을 몽글몽글하게 만든다. 의자에 위에 책이 한 권씩 올라와있다. 읽다 보면 저 반복적인 움직임이 어떤 꾸준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만일 내가 이런 형식의 작품이 된다면? 길쭉길쭉한데, 다리는 얇고 상체가 큰(이상을 추구하지만 현실성 없는) 아주 단순한 구조물일 것 같다. 반복적인 움직임인 줄 알았지만 불규칙하게 외부에 의해 흔들리는 무언가를 상상하면서 나왔더란다.
여기까지 봤는데 집중력이 떨어져서 제인 진 카이젠작가의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했다. 어릴 적 제주에서 덴마크로 입양된 작가이고, 제주의 이야기를 담아 영상 작품을 만든다. 올해가 가기 전에 한번 더 갈 예정. 지금까지는 윤지영 작가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사이의 질문’이라는 프로그램을 좀 더 활성화했으면 좋겠다.권하윤 작가 전시실에서는 큐알코드를 스캔할 정신이 있어서 한번 접속해 봤는데, 다른 작가 전시장에서는 깜빡하고 스캔하지 못했다! 작가가 관람자에게, 관람자가 작가에게 질문할 수 있는 소통공간이다. 이런 것이 작품을 훨씬 더 풍성하고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1. 이해되지 않는 작품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2. 저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업을 합니다. 혹시 제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3. 작가들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나요?
전시를 나와서 사이트를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다! 혼자 전시 보고 나와서 그런지. 다른 사람들의 감상이 조금 궁금하기도 했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 것 같다.
관람자가 마음속에 가장 마음에 드는 작가 한 명쯤은 품고 나오지 않을까! 관람객의 재미와 관심도를 높일 수 있도록 투표나 선호도를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