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경희 Oct 04. 2020

나는 실수 중입니다


라디오 녹음이 있는 날이다. 

생애 첫 라디오 녹음이라 긴장되고 설레었다. 

어떤 말을 할까? 잘할 수 있을까? 

걱정되는 마음 때문인지 아침 일찍 일어났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아침에 울리는 전화는 반갑지 않다. 

아래층 전화였다. 

주차시켜둔 내 차를 박았다고 한다. 

아침부터 뭔 일이람.... 이때 징크스 생각이 떠올랐다.

갑자기 안절부절이다.





1시까지 방송국에 가야 해서 점심도 대충 먹고 택시를 탔다.

뭔가 싸한 기분이 들어 가방을 본 순간 으~~ 악!!! 절대 안 하던 실수를 했다. 

지갑! 지갑! 을 안 갖고 온 것이다.

출발하려는 택시에서 내려 집으로 숨 가쁘게 뛰었다. 

정말 이때는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말로만 듣던 방송사고가 이런 건가?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머피의 법칙'이 생각났다. 



12시 30분 JIBS 방송국 도착! 

그래도 30분 여유가 있었다.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제 편안하게 경비실에서 출입증을 받고 가면 되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경비실에 도착하니 뜨악!!! 경비 아저씨가 없다. 

엉엉엉 경비아저씨 어디 갔어요. 

제발 나와요. 

기다리길 5분, 10분, 초조해졌다. 

담당자분에게 톡을 드려도 답은 오지 않고 

시간은 계속 흐르고... 물어볼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오지 않는 경비아저씨를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내가 직접 찾아야 했다. 


그런데 저 멀리 건물이 하나 보인다. 

건물을 향해 뛰었다. 

직원 식당이었다. 

식당에 들어가서 경비아저씨를 어디 가면 만날 수 있냐고 물어보니 

"여기서 식사하고 있어요."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다. 

처음 본 경비아저씨인데도 몇 년 만에 보는 사람처럼 너무 반가워서 

"어머, 아저씨" 텐션이 올라갔다.

십년감수했다. 

경비아저씨는 막 식사하려던 참이었어요.

 경비아저씨는 말을 안 해도 상황을 아셨는지.


 나를 보자마자 뛰었다. 

나도 뛰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열 체크하고 이름 적고 할 건 다 했다. 

아저씨가 녹음실 장소를 아냐고 물어보길래 모른다 하니 친절하게 녹음실까지 데려다주셨다. 

녹음실 앞에 도착하니 10분이 남았다. 

녹음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제 아나운서를 기다리면 된다. 

그래도 10분 여유가 생겨 숨을 쉴 수 있었다.





방송 시작.. 

너무 정신없는 하루였는지. 긴장을 했는지.

목소리가 딱딱하게 나왔다.

내 목소리를 들은 아나운서님은 편하게 하라는 듯이

말투를 평상시 말하듯이 바꾸셨다.

순간 긴장이 조금 풀렸다. 

서로 이야기를 맞추지 않았는데 재미있게 얘기했다.

아나운서님은 자연스러운 방송이 좋다고 하셨다.

그래서 미리 질문을 안 주셨다고... 

역시 베테랑 아나운서님이라 그런지 잘 이끌어주신 덕에 방송을 무사히 끝냈다. 


방송을 하고 나니 아쉬운 점이 왜 이리 많은지... 

그래도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하고 싶다. 

라디오 방송이 너무 재미있다.


난 요즘 처음 하는 일들이 많아 실수를 자주 한다. 

얼마 전에는 줌 강의도 처음 해서 실수했다.

실수하면서 알게 된 것은 나의 모습이다. 

전에는 몰랐던 나의 부족한 모습들이 하나씩 보인다. 

사람은 평생 배워야 한다는 데 배울 것이 엄청 많다. 

실수하면서 배운다고 하지만 나는 실수를 하고 싶지 않다.

실수를 할수록 두려움이 생긴다.

이번에도 안될까?

이번에도 실수할까?

점점 작아지는 것 같고 나를 힘들게 한다. 

실수, 두려움, 힘듬의 부정적인 생각은 나를 점점 작아지게 했다.


점처럼 작아지는 나를 느낀 순간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힘든 시기를 이겨낸 상황들을 생각해봤다.

무엇이 나를 살게 했는지...

그건 긍정적인 생각이었다.


긍정적인 생각의 첫 단추는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나에게 처음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처음 하는 일들로 나의 부족함을 배우면 되는 것이다.

내가 이런 기회가 없었다면 부족함을 몰랐을 건데...

요즘은 소크라테스가 말한 '무지의 지'를 많이 생각하게 된다.

'무지의 지'는 내가 '모르는 것을 아는 것'.

나는 '실수를 아는 것'으로 바꿔 나를 키워가려고 한다.


어쩌면 '실수를 통해 배운다'는 것이 진부한 표현이지만 

진리이기 때문에 항상 하는 말일 수 있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자라고 마음 먹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 두려움이 고개를 삐죽 내민다. 

나 여기 있다 라고 하면서... 

두려움 때문에 하지 않은 일들도 있었다. 

처음 하는 일들을 사람들이 어느 정도 이해해줄까? 이런 생각도 든다. 

모든 사람에게 흑역사는 존재한다는 말로 위안을 삼고 싶다.

가끔 유명인들의 흑역사가 방송에 나오면 위안이 된다.



작가의 이전글 본전 생각 안해도 되는 직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