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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아 정씨 Apr 24. 2020

치통, 휴교령 그리고 퍼즐

프랑스 지방도시에서 쓰는 방콕일기 35

4월 23일(격리 39일째) 목요일 맑음


어제 오후부터 시작된 치통이 서서히 강도를 더하더니 새벽쯤에는 잠에서 깰 정도로 나를 괴롭혔다. 아내가 가져다준 진통제를 먹은 뒤로 다시 잠에 들긴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어제와 다르게 통증이 있는 왼쪽 하관이 부어있었다. 프랑스의 의료시스템은 한국과 많이 다르다. 특히 치과 진료의 경우는 할 말이 많다. 우리가 블루아에서 산지 3년이 다 돼가는데 치과의사를 아직도 찾지를 못했다. 우리 가족의 치과의사가 없다는 것은 이가 아프거나 관리가 필요할 때 전화를 해서 1~2주 안에 약속을 잡을 수 없다는 말이다. 한국처럼 아무 치과나 가서 한두 시간 기다린 뒤에 치료를 받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 상태가 썩 좋지 못한 내가 꼭 말썽이다. 1년에 한 번쯤은 꼭 치과에 갈 일이 생기는 것 같다. 블루아에 온 그 해였을 것이다. 치과를 가야 해서, 인터넷에 블루아, 치과의사, 를 검색하고 집에 가까운 곳부터 일일이 전화를 걸었다. 대화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가 아파서 그러는데 약속 잡을 수 있나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저희 치과에 등록된 기존 환자인가요?”

“아닌데요.”

“그럼 약속을 잡아줄 수가 없네요. 자리가 없어서요. 죄송해요.”

“…”


수십 통을 걸어도 비슷한 내용의 대화였다. 그러다 블루아에서 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시골의 한 치과와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5 킬로미터면 그리 먼 것도 아니어서 이제 이 의사를 우리 집의 주 치과의사로 삼으면 되겠구나, 하는 희망을 가졌다. 약속된 날짜에 가서 치료를 받고, 얼마 후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정기검진도 받았다. 그런데 1년쯤 후에 다시 가려고 연락을 했더니 나를 치료했던 의사가 떠나고 없었다. 원점이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렇게 폐쇄적인 치과진료 시스템의 혜택을 받은 적도 있었다. 처가가 있는 시골에서 여름방학 동안을 지내던 몇 년 전 일인데, 이가 너무 아파서 치과를 수소문하다가 장인의 치과의사에게 전화를 하게 됐다. 역시나 기존 환자냐고 묻는 질문에, 기존 환자는 아니지만 가족이라고 했더니 그날 오후에 바로 약속을 잡아줬다. 당시에도 가족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지, 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내가 딱 그 처지에 이르게 될지 당시에는 상상하지 못했다.  


가족이라곤 없는 블루아에서 새롭게 치과의사를 찾아 헤매다가, 그나마 어쩌다 신규 고객(?)을 받는 치과의사는 주로 동유럽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나중에 언론 기사 등을 통해 본 바로는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치과의사 3명 중 1명이 외국인이라고 한다. 특히 지방은 치과의료의 사각지대여서 외국인 의사들을 더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얼마 안 되는 기간이지만 우리 가족의 이를 돌봐줬던 5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그 치과의사도 루마니아 출신이었다. 치과의사 면허가 인정되는 루마니아와 헝가리에서 주로 온다고 한다. 블루아에도 전형적인 프랑스인 성이 아닌 동유럽의 분위기가 나는 치과의사 이름들이 꽤 있었다. 


가장 최근에는 4개월쯤 전인데, 역시 블루아 인근에서는 치과의사를 찾을 수 없었고, 집에서 20킬로미터 떨어진 마을의 한 치과의사가 약속을 잡아줬다. 블루아 시내에서 신규로 받아주는 곳을 찾긴 했는데 6개월 후에 오라고 해서 일단 끊었다. 20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치과의사 역시 루마니아 출신 여자 의사였다. 동유럽 출신 치과의사들의 단점은 자주 바뀐다는 점이다. 어제부터 시작된 치통이 심해져서 오늘 아침 치과에 전화를 했는데 나를 치료했던 그 루마니아 의사는 떠나고 없다고 한다. 가끔 지금 우리는 어디에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치과진료로 포커스를 맞추면 프랑스는 전혀 의료선진국이라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인구 대비 치과의사 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프랑스에 살면서 자기 가족의 치과의사가 있고, 그 의사가 무려 프랑스인이면 어깨를 으쓱해도 좋은 거다. 적어도 우리 가족의 사례만 보면 그렇다. 


결론은, 어제부터 시작된 치통을 위해 그냥 우리의 주치의 선생을 찾아가기로 했다. 항생제 정도는 처방해 줄 수 있을 테니까 그걸로 일단 급한 불을 끄고 찬찬히 다시 루마니아든, 헝가리든 뜨내기 신규 환자를 받아줄 아량 넓은 치과의사를 찾는 수밖에. 


치통은 치통이고, 우리 부부에게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오늘 오후 마크롱 대통령은 전국의 22개 지자체장들과 화상회의 가졌는데, 그 회의에서 5월 11일 격리 해제와 관련된 대화들이 오갔다. 학교의 문을 재개방하는 문제의 경우 학생들의 등교가 의무사항이 아니라고 밝혔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초중고 교육이 의무여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부모가 법적 처벌을 받게 된다. 다만 이번은 예외가 되는 것이다. 학부모의 선택에 따라 학교에 보내도 되고, 집에서 원격수업을 진행해도 된다는 이야기다. 만약 우리 부부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기로 결정을 하면 아내는 직업이 교사이므로 학교에 가게 될 것이고, 내가 아이들과 함께 이제껏 하던 대로 격리 생활을 지속해나가야 한다. 


우리뿐 아니라 많은 부모들이 고민스러울 것 같다. 선택권을 부모에게 주지 않았다면, 불평을 하더라도 그냥 보냈을 텐데 말이다. 대통령의 오늘 발표가 있기 전부터 아내 학교의 학부모 중에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고 한 사례가 있었다. 모범 방역국으로 칭찬이 자자하던 싱가포르에서는 학교 문을 다시 연 뒤 얼마 지나지 않아 2차 대감염이 시작돼 다시 학교 문을 닫았다고 한다. 하물며 모범 방역국과는 거리가 먼 프랑스에 휴교령을 푼 뒤 2차 대감염이 오는 게 전혀 이상할 리 없다. 시간이 2주 정도 있으니 고민해볼 문제다. 


치통과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까에 대한 고민 중에도 우리는 퍼즐 맞추기를 이어나갔다. 역시 500조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첫날은 눈이 아프도록 쳐다봐도 진도를 많이 빼지 못했는데, 하루 정도 쉬었다가 다시 달라붙자 전날 보이지 않았던 조각들이 막 보이기 시작했다. “내려갈때 보았네 올라갈때 보지못한 그 꽃”의 꽃처럼. 격리의 장점은 느림의 미학을 몸소 실천해볼 수 있다는 거다. 정원 관리가 그랬던 것처럼 퍼즐도 서두를 이유가 없다. 그런데 그렇게 천천히 한다고 해도 3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벌써 끝났네, 1000조각 퍼즐 도착하려면 아직 한참 남았는데 어떻게 하냐?”라는 나의 우문에, 딸은 “흐트려서 다시 하면 되죠.”라는 현답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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