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지방도시에서 쓰는 방콕일기 37
4월 26일(격리 42일째) 일요일 맑음
이렇게 왔는지 모르게 가버리는 방학은 처음이긴 하지만, 오늘이 부활절 방학 마지막 날이다. 평소 같았으면 2주 동안 열심히 놀았다는 걸 강조하면서 저녁식사를 마치자마자 “학교 가려면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일찍 자자”고 하면서 아이들 등을 떠밀었을 것이다. 오늘은 8시 30분 전후로 무난하게 침대로 아이들을 보낼 수 있었다. 아마도 ‘조용한 시간’ 없이 풀가동한 탓에 더 피곤했을 것이다.
우리 집 아이들이 점심 이후에 일정하게 숨죽여 지내야 하는 ‘조용한 시간’은 그렇게 조용한 제도는 아니다. 부모의 결정으로 도입이 되긴 했으나 셋째처럼 아직 이성의 나이는 안 됐고, 제 목소리는 크게 낼 줄 아는 나이의 아이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그때 아이들의 컨디션에 따라, 우리의 컨디션에 따라 상황은 다르다. 어떤 날은 아무런 저항 없이 물 흐르듯 ‘조용한 시간’이 되는가 하면,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을 억지로 조용함 속에 욱여넣는 경우도 있다. 오늘이 그랬다.
‘조용한 시간’이 되자 나와 아내는 평소처럼 커피와 트리오미노스를 가지고 정원에 나와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집에서 둘째와 셋째가 칼싸움을 하며 차고에서 뛰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시간을 보니 점심 이후로 전혀 조용하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그런데 아이들과 맞설 기운이 없었다. “오케이, 그냥 너희들 마음대로 해라. 다만 정원 저 구석, 집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서 놀아라.” 자고 있는 넷째를 깨우는 건 막아야 하니까. 오늘은 조용한 시간을 만드는 데 실패한 것이다. 우리는 다시 게임판에 집중했다. 아내는 칼과 방패를 들고 구석으로 향하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향해 “나는 좀 쉬는 게 필요하다고.”라고 말했다. “J’ai besoin de me reposer!”
나는 아내가 아이들을 향해 저 표현을 사용할 때면 주목하게 된다. 욕구나 필요를 나타내는 단어 besoin에는 결핍의 의미가 숨어 있다. 뭔가를 더 얻기 위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뭔가가 부족해서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조금 더 절실해 보인다. 특히 아이들과 실랑이를 벌일 때 저 표현이 종종 튀어나온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 밥하고, 밥 먹이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같이 놀아주고 등등등 너희들을 돌봤으니 지금은 나의 시간이다. 그러니 나에게는 내 남편과 조용히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게임을 할 여유가 필요하다, 라는 뜻이 저 문장 안에 포함된 것이다.
어쩌면 프랑스식 육아법의 정수가 들어있는 표현이다. 부모의 욕구가 육아의 한 중심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육아의 중심에 아이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물론 순전히 내 방식의 분석이다. 토종 한국인인 나로선 그런 식의 육아법이 많이 낯설었다. 처음엔 불편하기까지 했다. 나의 즐거움을 위해 아이들을 뒷전에 두는 것 같아 죄스러운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가끔은 아내보다 내가 더 나의 (결핍에 따른) 욕구를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아이가 어린 경우에 부모의 결핍은 더 두드러진다. 우리의 예를 들자면 네발로 걷기 시작한 호기심 덩어리 넷째는 잠에서 깨는 순간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존재다. 우리는 넷째가 잠을 자는 동안 또는 우리 둘 중에 한 명이 넷째를 맡아주는 동안만 자유로울 수 있다. 아주 짧지만 첫째와 둘째가 놀아주는 경우를 예외로 하면 말이다. 그래서 넷째가 자는 동안, 혼자 걷고 먹고 놀 수 있는 1~3번 아이들은 부모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도와줘야 하는 것이다. 그 아이들이 더 어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충 기저귀를 떼는 시기까지 손이 가장 많이 가는 걸로 치면, 우리는 최근 10년 중 7~8년을 결핍 속에서 살았다. 우리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결핍을 그대로 두지 않고 기회가 되는대로 채웠기 때문이다.
이 도시에 베이비시터 시장이 활성화된 이유이기도 하다. 중학교 3~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 사이의 아이들이 대상인데, 주로 지인들 사이에서 이뤄진다. 어린아이가 있는 젊은 부부들의 넘치는 사회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길은 그것뿐이다. 베이비시터는 아이들이 곧 잠자리에 드는 오후 8시쯤 와서 책을 읽어주고 재운다. 우리는 8시쯤 나가서 자정 무렵까지 사교 생활을 즐긴다. 저녁식사 초대를 받거나 정기 모임이 있을 때 베이비시터를 부른다. 저렇게까지 해서 꼭 나가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것도 결핍에서 나온 욕구라는 걸 깨닫고는 즐거운 마음으로 베이비시터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어렸을 때 직접 ‘조용한 시간’을 강요당해본 경험이 있는 아내의 말에 따르면 그 시간이 꼭 부모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저항하던 시절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습관이 되자 오히려 기다려졌다고 한다. 모든 소음에서 떨어져 조용히 혼자 있을 수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가 있어서 멍 때리기에 좋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 뒤 방에서 나와 동생을 다시 만나는 즐거움이 있고, 둘이서 뭔가를 새롭게 시작할 에너지가 생겼단다. 둘째는 종종 ‘조용한 시간’ 동안 그림을 그려서 우리에게 선물하곤 한다.
격리 해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약속한 날 5월 11일이 이제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총리는 격리 해제 이후 시행될 정부의 세부 정책을 오는 화요일 국회에서 보고하고 표결에 붙이겠다고 밝혔다. 의료(마스크와 검사 등을 포함한), 학교, 일터, 상업 행위, 교통, 집회 등 6개 분야의 주제로 나눠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보고 후 즉시 표결이라는 절차에 토론 과정이 생략됐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마크롱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격리 해제 날짜를 정했다고 생각한 정치인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야당인 우파 정당의 반발은 물론이고, 좌파에서도 독한 말들이 나오고 있다. 좌파 대선주자인 멜랑숑은 “기만”적이라고 주장했다.
<르피가로> 인터넷 사이트에서 왜 마크롱은 5월 11일을 밀어붙였을까, 를 주제로 만든 동영상을 봤다. 국립의학아카데미에서는 5월 11일 휴교령 해제에 부정적 입장이었다고 알려졌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 이유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 것이다. 전국적 이동제한령이 내려지기 며칠 전인 지난 3월 15일 1차 지방선거가 실시됐는데, 선거 강행이 당시 전문가들의 의견을 따른 결정이었다고 한다. 2주 후에 열리게 되는 2차 지방선거는 결국 연기됐고, 마크롱은 1차 선거를 왜 미루지 않았냐는 거센 비난에 휩싸이게 됐다. 이 일로 인해 전문가들의 말을 신뢰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5월 11일 휴교령 해제 결정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 사람이 수백만명인데, 라는 생각에 살짝 어이 상실이다.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취재원을 통해 나온 정보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사실이라면 마크롱의 재선은 어렵지 않을까, 예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