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지방도시에서 쓰는 방콕일기 38
4월 27일(격리 43일째) 월요일 맑음 한때 비
두 달 만에 학교 가는 날이다. 마지막으로 학교에 갔던 게 언제인지 세어보지 않았는데 아침식사를 하는 동안 아빠가 그렇게 말을 했다. 아빠는 두 달이면 여름방학 기간과 같다고도 했다. 여름방학이었으면 외갓집에도 가고 바닷가에도 갔을 텐데 집에만 계속 있었던 게 가장 다른 점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마튜와 만나게 되는 게 제일 기대된다. 엄마는 우리보다 30분 일찍 일하러 갔다. 아빠는 책가방에 도시락을 챙겨줬다. 샌드위치는 지겹지만, 디저트인 초콜릿 쿠키가 나를 자극했다. 코로나 때문에 급식을 하지 않고 교실에서 먹는다고 했다.
차에 올라타는데 아빠가 다시 한번 마스크 챙겼냐고 물었다. 한국의 고모가 보내준 하늘색 천 마스크와 그 안에 넣는 하얀 필터도 챙겼다. 전에 아빠랑 슈퍼마켓에 갔을 때 마스크를 쓰고 다닌 적이 있는데 너무 답답해서 싫었던 기억이 난다. 이걸 쓰고 하루 종일 있으라는 말은 아니겠지. 학교 가는 길에 본 거리의 사람들 중에 마스크를 쓴 사람이 더 많았다. 엄마나 아빠 손을 잡고 걸어서 학교 가는 아이들도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아빠는 차를 세우고 나와 걸어서 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 평소처럼 학교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거기서 내게 작별 인사를 했다. 아빠와 나는 둘 다 마스크를 쓰고 볼에 뽀뽀를 했다. 이상했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학생들과 다른 아빠 엄마들도 우리와 똑같이 마스크를 쓰고 학교 정문 앞에서 볼뽀뽀를 했다. 정문이 평소보다 더 붐벼서 그 사이를 뚫고 뛰어가느라 요리조리 피해야 했다. 마튜가 운동장에 먼저 와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못 알아볼 뻔했다. 신발을 보고 마튜인지 확실히 알아봤다. 그런데 평소보다 아이들이 훨씬 적어 보였다.
선생님은 교실로 들어오는 우리의 열을 체크했다. 교실에서 마스크를 벗은 뒤 친구들 얼굴을 다 볼 수 있었다. 숫자를 세어보니 12명밖에 안 됐다. 원래 25명인데 절반도 안 되는 숫자다. 책상은 띄엄띄엄 놓여 있었다. 어른들은 우리가 붙어 있는 걸 가만 놔두지 않았다. 교실로 들어오기 전 운동장에서도 붙어서 이야기하는 나와 마튜를 옆 반 선생님이 떼어 놓았다. 이 모든 게 코로나 때문이라고 했다. 선생님은 수시로 손을 씻었는지 확인했다. 우리는 교실 뒤에 있는 세면대에서 비누를 잔뜩 묻히고 30초 동안 손을 문질렀다.
불어 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왔다. 마스크를 쓰고 운동장에 나가보니 우리 4학년 아이들밖에 없었다. 세 개 반 다 합쳐도 40명이 넘지 않았다. 넓은 운동장을 마음대로 뛰어다닐 수 있어 좋았는데, 자꾸만 선생님들이 붙어 있지 말라고 하는 게 좀 듣기 싫었다. 우리가 쉬는 시간을 끝내고 들어갈 때 5학년들이 마스크를 쓰고 교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화장실에는 일하시는 아주머니가 거의 항상 지키고 서서 우리가 우르르 나가기만 하면 뭔가를 뿌리고 있었다. 소독하는 거라고 선생님이 알려줬다.
점심시간에는 교실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학교 안에서 도시락을 먹는 것은 처음이다. 그런데 멀찍이 떨어진 책상에 앉아서 먹는 바람에 친구들과 이야기도 못 나누는 게 아쉬웠다. 그냥 혼자 먹는 것과 같았다. 옆자리 친구와 이야기를 하려고 조금이라도 붙을라치면 선생님이 야단을 쳤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다시 마스크를 쓰고 운동장에 나갔다. 감독하는 어른들은 우리를 향해 쉴 새 없이 “거기 너희들 떨어져! 마스크 써!”라고 소리를 질렀다. 엄마 아빠한테 학교 가고 싶다고 했던 말이 후회된다. 재미없다. 그냥 집에 있는 게 더 나을 뻔했다.
5월 11일 이후에 아이들의 학교에서 벌어질 일상을 둘째의 관점에서, 나 혼자 상상해봤다. 개학을 맞은 아내는 오늘 동료 교사들과 화상회의를 했는데, 교사들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고 했다. 격리 해제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교육부나 교육청 수준의 대책들이 나오겠지만 현장을 잘 아는 아내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답이 나오질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학생들도, 교사들도 학교에 다시 가는 게 기본적으로 의무가 아니다. 아내는 어쩌면 한 반에 두세 명 밖에 학교에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에서 결선투표에까지 오른 극우 정당 대표인 마린 르펜도 아이들을 학교에 이번 5월에 보내지 않고, 9월 개학 때 보내겠다고 밝혔다.
넷째가 다니고 있는 보육원에서 전화가 왔다. 5월 11일 이후 보육 수요를 조사하는 차원이었다. 보육원에서 넷째를 수용할 수 있을지는 추후에 알려주겠다고 했다. 급한 처지에 놓인 가정의 아이들부터 선별적으로 받을 계획이라고 한다. 넷째는 원래 일주일에 4번 갔는데, 일주일에 2번이나 1번만 가는 것으로 조정이 될 수도 있다고 귀띔을 했다. 물론 보내지 않아도 된다. 넷째를 보육원에 며칠 보내고, 나머지 세 아이들과 집에서 계속 학교놀이를 하는 것도 격리 해제 이후를 맞이하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보육원이 바이러스의 온상이라는 걸 떠올리면 썩 좋은 해법은 아닐 수도 있겠다. 아, 어렵다. 사회당 소속의 정치인은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지 여부를 부모가 결정하도록 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강력하게 동의한다. 다 보내든, 다 보내지 않든 국가가 책임을 지는 게 맞다. 아무리 생각해도 프랑스 정부의 결정은 비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