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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아 정씨 May 04. 2020

성당 가는 길

프랑스 지방도시에서 쓰는 방콕일기 44

5월 3일(격리 49일째) 일요일 흐림


평소보다 약간 늦은 아침을 먹으며 여유를 부리고 있는 내게, 첫째가 물었다. 


"오늘 미사 해요?" (한국어로는 ‘미사’와 함께 보다, 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불어로는 하다(faire) 동사가 쓰인다. 그래서 딸은 한국어로 할 때도 "미사 하다"라고 말한다.)

"해야지." 

"몇 시요?" 

"10시 반."


시간이 다시 흘러 10시 30분에 가까워지자 성당에 갈 준비를 마친 우리 모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나 둘 거실로 모여들었다. 나는 노트북을 열고 유튜브의 생중계 채널을 접속했다. 오늘은 블루아 대성당이 진행하는 페이스북이 아니라 블루아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조그만 마을 성당의 유튜브 채널로 들어갔다. 우리 부부와 친분이 있는 피에르 신부님이 있는 곳이다. 격리 이전에는 없던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피에르 신부님의 모습이 유튜브 화면에 보였다. 미사에는 총 4명의 신부님이 등장했다. 우리에게 친근한 신부님을 화면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이 평소 가톨릭 TV 채널에서 하는 미사와 다른 점이다. 사람도, 공간도 익숙해서 실제 미사에 다녀온 착각을 준다. 


일요일이면 미사 시간에 맞춰 소파에 앉는 게 이제 어색하지 않은 일이 돼버렸다. 아니, 매우 자연스러운 일요일 오전의 일상이다. 처음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마음이 있던 것도 사실이지만 인터넷으로 대체하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었다. 한두 주 만에 끝날 일이었으면 원격 미사를 걸렀을지 모르겠는데 벌써 여덟 번째다. 오늘의 성서 구절이 양과 목자의 비유여서 더 그랬겠지만 강론을 한 신부님은 격리 중인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했다. 신자들과의 접촉을 할 수 없게 됐으니, 가족과 함께 지내지 않는 신부님들은 절대 고독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올해로 사제서품 3년 차인 피에르 신부님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였다. 엊그제 화상통화로 만난 그는 너무 빡빡한 일정을 보내고 있었는데 격리로 모든 관계가 끊어지자 몸도 마음도 재충전하는 기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부럽다, 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최근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종교행사는 6월 2일 이전에 재개되지 않는다고 한다. 교계에서는 반발이 있는 것 같다. 가톨릭에서는 주교회의가 마크롱 대통령과의 화상회의를 통해 학교의 문이 열리는 5월 11일 교회의 문도 열 수 있도록 해달라고 건의했다. 대형 마트와 모든 상업시설은 물론 학교까지 개방되는 마당에 종교시설만 폐쇄를 유지할 이유가 있냐는 것이다. 개인 수칙을 엄격하게 적용해서라도 종교행사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회의 입장에서는 조금 양보하더라도 5월 31일로 예정된 성신강림축일에는 미사를 올릴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그 기대마저 무너졌다. 정부 발표에 변화가 없는 한 가장 빨라도 6월 7일 일요일 미사가 격리 해제 후 첫 주일미사가 될 것이다. 사순절, 부활절, 성신강림축일 등 가톨릭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주요 축일들을 온라인으로 치르게 된다. 


미사 금지는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프랑스 가톨릭 교회 차원에서 신자들과의 소통을 놓지 않으려고 부단한 노력을 하는 것 같다. 단순히 헌금을 할 수 없어 생기는 경제적 이유는 아닐 것이다. 각 교구마다 헌금 사이트를 따로 운영하거나 원격 미사 채널 아래에 링크를 달아두고 있고, 프랑스 가톨릭 신자들의 성향상 정상적인 기간과는 비교하기 어렵겠지만, 헌금이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잊지 않고 인터넷 헌금을 했다. 우리 데파르트망에서도 멀지 않은 리모쥬 교구의 일부 성당에서는 고해성사를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한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다. 이쯤 되면 화상통화 앱을 통한 고해성사도 있을 법한데 아직 그 소식은 듣지 못했다. 


일요일 오전의 일과가 물 흐르듯 지나가고 나니 약간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격리된 생활에 익숙해져 버리는 건가, 라는 질문과 함께. 익숙함이 무서운 이유는 격리가 끝나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갔을 때 겪을지 모르는 심리적 저항 때문일 것이다. 거실 소파에 앉아서 원격 미사를 하는 것은 성당까지 직접 가는 것보다 확실히 간편하다. 오늘처럼, 멀다는 이유로 평소에는 가지 못했던 성당에 가는 효과를 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넷째가 오늘과 같이 미사 시간에 맞춰 자는 경우, 원격 미사를 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성당에 간다면 자는 애를 깨울까 말까 고민하는 애로사항이 있는 것이다. 또 미사 시간이 짧아서 점심 준비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적고 보니 원격 미사의 장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익숙해진 데다 장점도 많으니, 원격 미사를 그리워하게 될까?


그렇게 되진 않을 것 같다. 아이들과 나란히 성당까지 걸어가는 일, 제대 옆에 흰 옷을 입고 서 있는 첫째와 둘째를 멀리서 지켜보는 일, 그 아이들과 눈빛으로 대화를 나누는 일, 미사 동안 셋째의 색칠놀이를 도와주는 일, 일주일 만에 만나는 성당 사람들과 미사가 끝난 뒤 잠깐이지만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 성당을 나오는 길에 신부님과 인사를 하며 "즐거운 일요일!"이라고 외치는 일은 원격 미사로 채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6월 초부터 미사를 할 수 있게 된다 하더라도 사회적 거리두기 등 강력한 코로나 수칙 때문에 타인과의 접촉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성당의 미사까지는 아직도 최소한 한 달은 기다려야 한다. 번거롭더라도 성당 가는 길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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