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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아 정씨 May 08. 2020

격리 해제와 운전 습관

프랑스 지방도시에서 쓰는 방콕일기 48

5월 7일(격리 53일째) 목요일 맑음


격리가 해제되는 다음 주 월요일부터 적용되는 자세한 정보들이 오늘도 나왔다. 대부분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이지만 각 항목의 디테일이 추가됐다. 에두아르 필립 총리가 오늘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5월 11일 격리 해제의 세부대책을 발표했다. 그는 “다음 주 월요일은 우리 각자가 수칙을 준수하고 각자에게 책임감이 요구되는 새로운 단계의 첫날이다. 완벽하게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계적 격리 해제가 경계를 소홀히 해도 된다는 의미가 돼선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전국을 초록과 빨강으로 나눈 지도가 공개됐다. 이전까지 주황색까지 세 가지 색으로 구분했었는데 오늘 발표에서는 주황색이 빠졌다. 우리 지역은 주황색에서 녹색으로 바뀌었다. 파리가 포함된 수도권과 북동쪽의 4개 레지옹(광역단체)이 빨간색으로 분류됐다. 이 분류는 6월 7일까지 유효하다. 빨강 지역에서는 공원과 공공장소, 중학교 폐쇄가 지속되는데, 그 외에 눈에 띄게 다른 점은 없다. 이렇게 지정한 이유는 징벌적 의미가 아니라 해당 지역에 살거나, 해당 지역에 가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가 크다. 우리나라에서 확진자 동선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경계했듯, 빨간색인 레지옹은 감염자가 많은 지역이니 코로나 수칙을 더 잘 지키라는 것이다.


87~90% 시군구의 80~85%에 달하는 초등학교가 예정대로 5월 12일 문을 연다. 예상보다 수가 많다. 수도권 지자체 300여 곳이 최근에 정부에게 공개 편지를 통해 학교 문을 열지 않도록 하겠다고 쓴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학하는 학교가 많아진 것은 정부가 지자체장이 거부할 여지를 없애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부의 협박에도 끝내 문을 열지 않은 학교의 지자체는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한다. 우리 데파르트망에도 학생수 364명짜리 조그만 시골 초등학교가 폐쇄조치를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며칠 전 총리가 밝혔던 것처럼 이동은 100 킬로미터 이내에서 자유롭게 허용되고, 그 밖을 벗어날 때는 증명서를 지참해야 한다. 어길 시 135유로의 벌금이 부과된다. 대도시가 아닌 곳은 상관이 없지만, 정부에서 가장 골머리를 앓는 사항이 출퇴근 시간 대중교통에서 어떻게 개인 간 거리를 유지하느냐, 이다. 그래서 출퇴근 시간에는 격리 중인 지금의 우리가 외출할 때 예외사항으로 인정받는 것과 동등한 이유가 있어야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친구 집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역시 벌금은 135유로. 대중교통 안에서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고, 어기면 135유로의 벌금이 부과된다.


한국과 프랑스 두 나라에서 운전을 해 본 내 입장에서 운전자의 준법의식은 확실히 프랑스가 뛰어나다. 반면 보행자는 한국 사람들이 훨씬 신호를 잘 지킨다. 프랑스 운전자들이 법규를 잘 지키는 이유가 뭘까. 그것은 생각할 것도 없이 어겼을 때 부과되는 벌칙이 겁나기 때문이다. 면허증을 따면 12점이 주어지는데 위반을 할 때마다 점수가 줄어들고, 일정 기간 동안 법규 위반을 하지 않으면 다시 채워진다. 속도(10킬로미터 이상) 위반은 1점, 운전 중 전화 3점, 정지선을 포함한 신호 위반 4점 등. 물론 위반할 때마다 벌금도 함께 내야 한다. 벌금보다는 점수가 은근히 성가시게 한다. 단 1점만 부족하더라도 최소한 6개월은 절대 위반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11점 상황에서 또 1점이 사라지면 가중처벌로 2년을 기다려야 한다. 2년 내에 신호위반이라도 하게 되면 6점. 재수 없어 전화하다 걸리면 3점밖에 안 남는다. 점수가 6점 미만인 경우 이틀 교육을 받고 4점을 충전시킬 수 있다. 돈과 시간을 내고 점수를 사는 것이다. 이런 귀찮고 스트레스받는 과정을 겪지 않으려면 위반하지 않으면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프랑스 운전자들이 교통법규를 잘 지키는 것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남의 통제를 받기 싫어하고 자유분방한 프랑스인들이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항하기 위해 꼭 필요한 위생 규칙을 잘 지키게 하는 방법은 자율성에 호소하는 게 아니라, 그냥 벌금을 때리는 것이다. 이 방법을 쓸 때 가장 중요한 전제는 제대로 집행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즉, “한 번만 봐주세요.”나 “싼 걸로 끊어주세요.”라는 말이 절대로 통해선 안 된다. 한국의 운전자들이 준법의식이 낮아서 법규 위반이 잦은 게 아니라 벌칙이 효과적으로 적용되지 않은 것이다. 여기서 생기는 한 가지 질문은, 위기의 순간 빛을 발하는 한국인의 공동체 의식이 코로나 사태에서 드러났듯, 정부의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순응도가 꽤 높은 편인데 왜 한국 운전자들의 준법의식은 낮게 느껴질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한국에서 운전할 때 새벽에도 신호를 지키는 편인데, 그렇지 않은 차들이 훨씬 많다. 또 정지선에서 브레이크를 끝까지 밟아 ‘일단정지’ 하지 않고 차가 안 오면 슬그머니 정지선을 통과해버리는 차들이 대부분이다. 


그건 그렇고, 아이들 학교에서도 4쪽짜리 통신문이 왔다. 5월 12일 개학에 맞춰 아주 세부적인 사항까지 총정리를 했다. 전에 없던 것 중 추가된 내용이라면, 학교와 집을 오가는 물건을 최소화하기 위해 책가방은 학교에 두게 된다는 것, 옷을 매일 갈아입어야 한다는 것 등이었다. 학교가 운영하는 SNS를 보니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지내게 될 운동장에서 1미터 간격을 맞출 수 있게 바닥에 테이핑을 하고, 교실 책상 역시 1미터가 유지되도록 배치하는 등 교직원들은 벌써 학생들 맞을 준비에 분주했다. 


엊그제 안니와 자키 집에서 크레페를 간식으로 먹던 날, 나는 허락을 구하고 식탁에 있던 지방신문을 들춰봤다. 자키는 “너 기자였었다고 했지. 우린 뭐 낱말 맞추기나 하려고 보는 거야.”라고 말했다. 다음날 우편함을 보니 신문이 들어 있었다. 이웃이 놓고 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건, 누군가 낱말 맞추기 페이지의 문제들을 성실하게 연필로 푼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놓고 간 지방신문 덕분에 지난 5일 기준으로 블루아가 속한 데파르트망의 총사망자는 87명이고, 입원환자는 전날보다 4명 많은 142명, 중증환자는 3명 적은 9명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오늘 테라스에 있을 때, 쓰레기통을 집안으로 들여놓는 자키가 멀리 보이자 “신문, 고마워!”라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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