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지방도시에서 쓰는 방콕일기 50
5월 9일(격리 55일째) 토요일 맑음
뭐든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듯, 격리된 뒤 나가고 싶은 욕구가 더 커진 것은 나뿐 아니라 코로나 바이러스로 격리를 당해본 전 세계 수억 명의 마음일 것이다. 나에게 초점을 맞추자면, 그냥 밖에 나가고 싶은 것을 넘어, 요즘처럼 한국에 가고 싶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프랑스에서는 코로나 19에 대해 별 반응을 보이지 않던 지난 2월, 올여름은 첫째와 둘째만 데리고 한국에 다녀오기로 결정을 한 뒤 큰 마음먹고 항공권을 구입한 적이 있다. 파리-로마-서울로 이어지는 이태리 국적기였는데, 구입한 지 2주쯤 후에 항공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비행이 취소됐으니 환불해줄 것이라고 했다. 당시 이태리의 상황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었지만, 7월이면 시간이 있으니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렇게 한국행이 한 번 좌절돼서 더욱 간절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구글에서 항공권을 검색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건, 격리가 곧 해제된다고 하니 또 엉덩이가 들썩거린 탓일 게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올해는 어려울 것 같다.
고향에 대한 향수는 국제결혼을 한 커플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둘 중 한 명은 겪을 수밖에 없다. 어디에서 사느냐를 선택하는 것은 둘 중 누가 향수를 갖고 살 것인지를 결정하는 문제인 것이다. 우리 부부의 경우 프랑스에 살 때 내가 느끼는 향수와 한국에 살 때 아내가 느끼는 향수 중 전자의 무게가 가벼울 것이라고 본 것이다. 아내가 한국과 친한 정도와 내가 프랑스와 친한 정도를 굳이 따진다 해도 우리 가족은 프랑스에 사는 게 합리적이다. 결혼을 하기 전에 프랑스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고, 또 워낙 어려서부터 집을 떠나 살았기 때문에 향수 같은 감정은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1~2년 사이, 혹시 이런 게 향수인가, 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자꾸 한국 음악에 손이 간다. 분명 전에 없던 현상이다.
연애시절 아내와 나의 첫 공감대는 미국의 재즈그룹 핑크 마르티니였다. 내가 파리에서 유학하던 시절 이들의 1집 앨범에 수록된 노래가 프랑스에서 빅히트를 친 적이 있다. 노래의 가사는 1913년에 작성된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 ‘호텔’에서 차용했다.
Je ne veux pas travailler 일하고 싶지 않아
Je ne veux pas déjeuner 점심도 먹고 싶지 않아
Je veux seulement l’oublier 그냥 잊고 싶어
Et puis je fume. 그리고 담배를 피우지.
그룹의 메인 가수 차이나 포브스가 미국 억양이 섞인 프랑스어로 부른 ‘sympathique’의 후렴구는 중독성이 강해서 2000년 전후로 거의 모든 프랑스 젊은이들이 흥얼거리는 노래가 됐다. 자료를 찾아보니 1997년에 나온 이 앨범은 프랑스에서 65만 장이나 팔렸다고 한다. 에펠탑을 배경으로 아이들이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장면이 담긴 노란색 1집 앨범 표지 사진은 이들의 데뷔 20주년 콘서트의 포스터로 쓰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만난 아내가 내게 한 첫 선물은 2007년에 나온 핑크 마르티니의 3집 앨범이었고, 나는 지난 2017년 아내의 생일에 핑크 마르티니의 20주년 프랑스 투어 콘서트 티켓을 선물했다. 우리는 이들이 낸 정규앨범 10장 중 9장의 CD를 갖고 있다. 1집 앨범이 없는데 그것은 오래전에 내가 분실했다.
티타임이나 아뻬로를 위해 배경음악이 필요한 순간 아내와 나는 주로 이들의 음악을 들었다. 그것도 CD 플레이어를 통해서. 둘 다 아날로그 감성이 남아 있었나 보다. 우리가 가진 수십 장의 CD를 듣고 또 듣고, 했다. 불법 다운로드를 한다든가, 멜론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에 매월 돈을 낼 열정도 없었던 것이다. 변화는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 CD 플레이어가 생을 마감한 것이다. 그리 오래된 제품은 아니었는데, 브랜드는 유명해도 한국에서 산 제품이어서인지 고치는 데 갔더니 부품을 찾을 수 없다며 두 손을 들었다.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음악은 아내의 아이폰에 들어 있는 노래 십수 곡이 전부였다. CD 플레이어를 고칠 수 없다는 최종 선고가 나자 우리는 뭔가 대책을 세워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집에 TV도 없는데 음악까지 없으면 너무 삭막하니까. 결국 우리는 애플 뮤직에 가입해 가족 옵션을 선택하고 장인 장모, 처제 가족과 공유하기로 했다. CD 플레이어는 블루투스 스피커
로 대체됐다.
이런 신세계가 있을 줄이야. 월 15유로에 세상의 거의 모든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감탄했다. 남들은 10년 전부터 사용하고 있는 서비스에 이제야 감동하고 있는 나 자신이 처량했다. 아날로그 감성이라 믿었던 것 역시 그냥 귀찮음의 다른 표현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세상의 모든 음악에 대한 접근이 가능해지자 내 플레이리스트에 핑크 마르티니 음악이 아닌, 잔나비의 노래들이 실리기 시작했다. 잔나비가 내 어린 시절의 향수를 상징하는 가수는 절대 아니지만, 오래 들으니 흥얼거리게 됐다. 옛 시절에 대한 향수라기보다는 한국어로 된 무언가, 그러니까 한국적인 느낌이 목말랐던 거다. 이런 걸 단어로 표현하면 향수라고 하는 게 아닐까, 넘겨 짚어본다. 나의 향수를 보듬어줄 목소리의 주인공은 잔나비에서 아이유로, 아이유에서 버스커 버스커로, 또 델리 스파이스로, 루시드 폴로 무한 확장을 하게 됐다.
내 덕에 아이들도, 심지어 아내까지도 한국 노래를 흥얼거리게 됐다. 그러나 아내와 아이들은 내가 요즘 부쩍 한국 노래를 자주 듣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나 할까. 격리 해제를 이틀 앞두고 아내와 함께 정원 벤치에 앉아 아뻬로를 즐기며 애플뮤직을 통해 흘러나오는 잔나비의 노래를 감상하자니, 한국 시골집의 앞마당에서 이런 여유를 즐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하게 된다. 아무리 기분 좋은 상상이어도 이런 게 잦아지면 그냥 향수에서 ‘향수병’이 되는 거다. 아직 나는 그 단계는 아니다. 병으로 발전하려면 고독이라는 MSG가 첨가돼야 하는데 그러기엔 내 주변이 너무 시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