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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아 정씨 May 11. 2020

일기장을 닫으며

프랑스 지방도시에서 쓰는 방콕일기 51

5월 10일(격리 56일째) 일요일 비


디데이를 하루 앞둔 오늘, 너무 설레는 마음에 어쩔 줄 모를 것만 같았는데 막상 내일부터 원래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다고 생각하니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내일부터 단계적으로 돌아가는 것이어서 당장 크게 바뀌는 것은 별로 없을지 모르지만 나갈 때마다 증명서 따위를 지참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즐거울 줄 알았다. 시원한 마음은 당연한데 이 섭섭함은 도대체 뭔가. 약간 당황스럽다. 


격리 생활에 너무 길들여져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잘 만들어진, 3시간에 가까운 꽤 긴 영화 한 편을 보고 극장 밖에 서둘러 나가고 싶지 않은 기분이랄까. 영화의 여운이 쉽게 깨지는 게 못내 아쉬워 의자에 푹 눌러앉은 채로 화면 속의 수많은 이름들을 흘려보내고 있는 그 기분 말이다. 버티다 버티다, 청소하는 직원이 등장하면 마지못해 상영관을 나서고, 이윽고 극장을 벗어나 뜨거운 햇살 아래 서는 순간 현실의 나로 돌아온다. 3시간이 아니라 56일 간이나 지속된 영화가 끝나게 됐는데, 극장에서 나오는 일이 간단할 리 없다. 


웰 메이드 영화가 될지 어떨지 알 수 없으나 새로운 경험인 것만은 확실하다. 두 달 동안 온전히 우리 가족끼리만 지내는 일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체험해보기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여름방학을 해서 처가에 가더라도 장인 장모를 비롯한 다른 식구들과 함께 지냈고, 반대로 한국에 갔을 때 역시 마찬가지이다. 넷째가 아직 태어나기 전인 2년 전쯤 여름방학이 끝나기 직전 브르타뉴 지역으로 4박 5일 동안 우리끼리만 바캉스를 떠난 적이 있다. 몽생미셸과 생말로의 중간쯤에 위치한 바닷가 마을에 있는 집을 렌트해서 다섯 이서 시간을 보냈다. 여행이 끝나고도 한동안 우리는 그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하루 일과를 떠올려봐야 특별한 건 없었다. 그저 함께 새로운 곳을 구경하고, 함께 걷고, 함께 먹는 일이 전부였다. 평소 우리 가족만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기 때문인지 짧았던 그 여행이 아주 좋은 느낌으로 기억에 오래 남아있다. 


격리 조치가 의도하지 않게 우리에게 그런 시간을 만들어준 것이다. 아이들에게 갇혀서 지내는 동안 어땠는지 물었더니, 다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고 입을 모았다. 첫째가 둘째, 셋째와 함께 노는 모습은 점점 보기 힘들어지던 차였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더욱 그랬다. 주중에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숙제하고 씻고 저녁 먹고 자러 가면, 함께 놀기는커녕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많지 않다. 주말에는 테니스나 스카우트로 각자 바쁘고, 그것도 없으면 친구 집에 초대받아 가기 일쑤다. 두 달 가깝게 집에서 지내는 동안 아이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놓은 것들을 모아놓으면 전시관의 방 하나는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격리가 길어졌어도 계속해서 뭔가 할 거리를 찾아내 분주했을 게 분명하다. 


당장 내일부터 일상으로 가장 먼저 복귀하는 건 아내이다. 학생들은 아직 등교를 하지 않지만 교사들을 대상으로 코로나 수칙 관련 교육을 한다고 한다. 아내는 교수법 관련해서는 강의도 한 번 안 하더니, 오후 4시간 동안 바이러스, 바이러스, 하게 생겼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전에 아내의 동료들과 문자로 주고받았던 장문의 우스개 소리는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통찰력이 돋보이는 블랙 코미디였다. 기침 한 번만 해도 손을 씻어야 하고, 화장실에 한 명만 다녀와도 손잡이와 화장실 내부의 소독을 해야 하고, 운동장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어야 한다. 다행인 것은 전교생 80여 명 중에 등교하는 학생 수가 10명이 채 안 된다는 사실이다. 집에 머무는 학생들을 위한 원격수업 준비는 그것대로 해야 하고 학교에 오는 학생들을 위한 수업도 진행해야 해서 이중고가 될 수도 있다. 아내의 반 아이들은 기껏해야 3~4명 정도라고 한다. 


첫째 역시 내일부터 일상으로 복귀다. 학교에 가지는 않아도 당장 절친의 집에 초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샤를롯의 집에서 콩스탕스와 함께 셋이 모이게 됐다. 그 사실을 엄마들끼리 결정하고 첫째에게 통보한 오후부터 표정이 계속해서 상기돼 있다. 첫째가 격리 해제를 기다렸던 이유 중 하나는 갇혀 있느라 지나쳤던 생일 파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통은 친구 여럿을 초대해서 한 나절을 놀고, 그중 몇몇은 집에 남아 파자마파티까지 이어간다. 올해는 1차를 생략하고 몇몇을 초대해서 놀고 계속 파자마파티로 여세를 몰아간다는 계획이다. 친구 셋을 초대하기로 했다. 


둘째와 셋째는 일주일 동안 격리 중에 하던 스케줄을 그대로 하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 학교에 가게 된다. 셋째는 오는 화요일부터 등교인데, 형제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경우 등교일을 맞춰준다는 방침에 따라 둘째와 같이 5월 18일 첫 등교를 하게 된다. 벌써 다음 주에 해야 할 교과 공부가 담긴 메일들이 도착해 있다. 둘째는 격리 기간 동안 두꺼운 소설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전에는 주로 만화를 읽고 기껏해야 20~30쪽짜리 어린이 소설을 읽었는데 300쪽이 넘는 청소년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잊을 만하면 와서 오늘 11장까지 읽었어요, 하며 진도를 자랑한다. 첫째는 지난해 해리포터 시리즈를 7권까지 다 읽었는데, 조만간 둘째도 도전할 것 같다. 셋째는 글씨를 전보다 잘 읽고 잘 쓰게 됐다. 필기체 연습도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것들보다 나를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손가락 빨기를 끊었다는 사실이다. 


넷째는 화요일부터 보육원에 가게 된다. 원장의 말에 따르면 넷째를 보육원의 교실까지 데려다주는 과정이 전과 달라지게 된다. 우선 정문을 우리가 직접 열어서도 안 된다. 직원이 문을 열어 우리를 맞이한 뒤 아이를 직접 데리고 간다고 한다. 부모는 정문에서 아이와 작별인사를 하는 셈이다. 우리 여섯 중 격리 기간 동안 가장 많은 변화를 겪은 것이 넷째이다. 갇혀 있는 동안 인생의 6분의 1이 지나갔으니 당연하다. 겨우 몸을 뒤집는 수준이었는데 이제 혼자 일어설 수 있게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걸을 기세다. 보육원 교사들이 놀랄 모습을 상상하니 벌써 즐겁다. 돌을 지나면서 분유를 일반 우유로 바꿨고, 이유식도 거의 끝나가고 있다. 최근에 한국식 식사를 할 때 쌀밥을 줬는데 왜 이걸 이제야 주는 거야, 라고 말하는 듯 잘 먹는 걸 보면서 이유식 만드는 스팀기도 이제 정리할 때가 됐구나, 했다. 


이제 내 차례다. 나의 경우는 다른 가족들과 달리 좀 복잡하다. 격리 이전의 일상을 다시 지속할 수 있을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투르에 가서 우버 일을 하는데, 집에서 한 시간 걸리는 거기까지 가서 하루 종일 버텨봐야 한두 명 태울 거면 그냥 안 가는 게 남는 것일 수도 있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유동인구가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내게 도착한 최근의 희소식 중 하나는 코로나 연대기금을 수령했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위해 지난해 같은 달과 매출을 비교해 최대 1500 유로까지 지원을 해주는 것인데, 3월은 기준이 안 돼서 신청을 못했고, 4월 한 달은 매출이 제로여서 나에게도 해당사항이 있게 됐다. 나의 ‘포스트 코로나’에 대해서는 더 고민이 필요하다. 


56일 동안 51번의 일기를 썼다. 신문사를 그만둔 뒤 오랫동안 꾸준하게 글을 생산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신문사를 포함하더라도 ‘나’가 주어인 글을 이렇게 많이 쓴 것은 처음이다. 국민학교 때 썼던 방학숙제용 그림일기를 빼면. 일기를 쓰기 위해 가족들을 더 유심히 살피고 대화를 깊이 나누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들과 부딪히며 보였던 나의 일상적 짜증과 간헐적 분노가 일기에 크게 드러나지 않은 것은 내가 아직 성숙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짜증과 분노가 일었던 것도, 그걸 드러내지 않았던 것도 마찬가지다. 세심한 독자라면 행간에서 읽었을 수 있다. 다만 나의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가족들과 보낸 시간만큼 우리 모두 단단해졌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제 일기장을 닫고 극장 밖으로 나설 때다. 


추신. 오늘 현재 프랑스의 사망자는 2만 6천380명이다. 한때 600명을 넘었던 일일 사망자 수는 70명으로, 어제부터 두 자릿수를 유지하고 있다. 월요일이 되면 수치가 살짝 오를 수는 있지만 2차 대감염이 아닌 바에야 전처럼 급격하게 오르진 않을 것이다. 중증 환자의 수도 2천776명으로 계속해서 줄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격리 해제를 하루 앞둔 오늘 프랑스인들을 향해 "여러분 덕분에 바이러스는 한 발 물러섰습니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여전히 여기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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