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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아 정씨 Nov 02. 2020

구슬픈 할렐루야

2차 봉쇄령 J+3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얼마 전 하루 확진자가 5만을 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 어쩌면 다시 갇히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었다. 그러면서도 그 천문학적 액수의 지원금을 프랑스 정부가 또 부담하면서까지 두 번째 봉쇄령을 내리기야 하겠냐며 순진하게 넘기고 말았다. 지난주 화요일 저녁 TV 화면에 나타난 마크롱의 얼굴은 진짜로 슬퍼 보였다. 너무 센 상대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무기력한 장수 같았다. TV 속 마크롱은 지난번 봉쇄령 때 보았던 노련한 배우의 이미지 대신 정말로 내리고 싶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네요, 라고 애원하듯 말하고 있었다. 


어쨌든 우리는 지난 금요일부터 다시 갇히게 됐다. 지난봄의 1차 봉쇄령과 차이점이라면 학교는 폐쇄되지 않았다는 거다. 즉, 아내와 아이들은 평소와 같이 일하러, 그리고 공부하러 날마다 집에서 나간다는 사실이다. 같은 점은 슈퍼마켓과 약국 등 필수 품목을 파는 곳을 제외한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종교 집회가 금지되고 나갈 때 외출증명서를 써야 하는 것도 이전과 같다. 나의 경우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려와야 하기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증명서를 쓰게 생겼다. 첫날부터 디지털 외출증명서가 정부의 인터넷 사이트에 준비돼 있다는 건 다행스러운 점이다. 


프랑스 정부는 봉쇄령을 발표하면서 이번 주 주말을 예외적 상황으로 인정했다. 왜냐하면 2주짜리 방학이 끝나는 시점이고, 일요일이 만성절이라는 전 국가적 축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학을 맞아 휴가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주말 동안 장거리 이동을 할 수 있게 했다. 또 이번 주 일요일까지는 성당 미사가 예정대로 진행되고, 공동묘지에 가서 조상을 추모하는 행위도 제지를 받지 않게 된다. 우리는 봉쇄령이 발효된 당일인 지난 금요일 처가인 뽕도라에서 블루아로 왔다. 토요일 오후 해가 살짝 내비쳤지만 우리는 데메 공원에 가지 못했다. 2차로 내려진 봉쇄령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11월 3일부터 미사와 같은 종교 집회가 금지된다. 그래서 11월 1일, 즉 이번 일요일은 본격적인 봉쇄령 발효를 앞둔 마지막 미사였다. 게다가 모든 성인의 날로 불리는 만성절이어서였을까, 오늘 미사는 그 어느 때보다 슬픈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미사를 하러 성당에 가면서부터 낯선 광경을 목격해야 했다. 경찰차와 무장한 경찰 몇 명이 성당 앞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프랑스에서 잇따라 터지고 있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슬람 최고지도자의 풍자만화를 학생들에게 보여준 교사가 참수당하고, 성당에서 기도하던 60대 여성이 참수당했다는 소식을 접하는 건 꽤 고통스러운 일이다. 더군다나 두 가지 모두 나와 연관이 없다고 보기 어렵다. 교사인 아내는 표현의 자유를 설명하면서 샤를리 앱도에 대해 말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예전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지 않고 자유롭게 성당에 가서 기도를 올릴 수 있을까. 게다가 내가 다니는 성당은 블루아에서도 이민자가 많은 동네의 경계쯤에 위치해 있다. 주변에 이슬람 사원도 여러 곳 있다. 물론 극단주의자와 일반 신자들을 헷갈려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프랑스의 가톨릭 신자들은 그래서 요즘 이중고를 겪고 있다. 봉쇄령으로 성당에 가지 못하는 데다 테러까지 걱정해야 하니 말이다. 기분 탓이겠지만, 오늘 미사의 할렐루야는 전혀 즐거운 느낌이 나질 않았다. 만성절이라는 날이 워낙에 죽은 자들을 위한 추모미사의 성격이 있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할렐루야가 그렇게 구슬프게 들린 적은 없었다. 미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람들은 또 당분간 성당에 올 일이 없겠군, 같은 생각들을 했을 것이다. 일요일이면 만나는 성당 사람들과 나눈 오늘의 "안녕"이 유난히 무거웠던 것도, 구슬프게 들리던 할렐루야도 다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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